4년만의 새 앨범 '숨' 발매…"'살아있는 동안 빛나자'라는 메시지 담아"
소프라노 박혜상 "산티아고 순례길서 성찰한 삶과 죽음 담았죠"
"앨범을 준비하던 재작년 8월 산티아고 순례길을 하루에 20∼30㎞ 정도씩 25일간 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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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베를린 국립오페라 등 세계 무대를 누비며 '차세대 디바'로 불리는 소프라노 박혜상(36)이 새 앨범 '숨'(Breathe)을 발매했다.

박혜상은 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에 준비한 새 앨범에는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에서 시작된 삶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인 성악가 가운데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은 아티스트다.

이번 앨범은 2020년 낸 1집 앨범 '아이 엠 헤라'(I AM HERA) 이후 4년 만의 새 앨범이다.

박혜상은 "팬데믹 때 좋아하는 사람들을 잃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부정적인 마음이 가슴을 가득 채우던 시기였고, '왜 사는가',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고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며 "그곳에서 영적인 체험도 하고, 외로움도 강렬하게 느끼면서 '살면서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소프라노 박혜상 "산티아고 순례길서 성찰한 삶과 죽음 담았죠"
박혜상은 처음에는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등의 단계를 앨범의 스토리라인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죽음을 어둡고 우울한 것으로만 바라본다면 삶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세이킬로스의 비문'이었다.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비석에 새겨진 문구로 짧은 악보가 포함돼 있다.

그 내용은 '결코 슬퍼하지 말라.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이다.

"세이킬로스가 아내를 잃고 묘비명에 적은 내용이래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힐링이 됐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연하지 않게 다가오더라고요.

그 철학이 좋아서 '살아있는 동안 빛나자'라는 주제로 앨범을 만들게 됐죠."
앨범에는 현대음악 작곡가 루크 하워드의 곡 '시편'에 세이킬로스의 비문을 넣어 편곡한 작품 '당신이 살아있을 동안'(While You Live)을 첫 곡으로 넣었다.

박혜상이 직접 하워드에게 의뢰한 곡이다.

또 2차세계대전 당시 18세 소녀가 감옥에서 엄마에게 쓴 편지 내용을 담은 고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가사 없이 '아'라는 단어로만 되어 있는 비반코스의 '보컬 아이스',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의 관현악곡인 명상곡에 '아베마리아' 가사를 붙인 '마스네: 아베마리아' 등이 담겼다.

소프라노 박혜상 "산티아고 순례길서 성찰한 삶과 죽음 담았죠"
앨범 수록곡 가운데는 한국 가곡인 우효원의 '어이 가리'도 눈에 띈다.

이 곡은 아쟁 연주에 목소리를 얹은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이다.

오는 13일 롯데콘서트에서 열리는 앨범 발매 기념 리사이틀에서는 앨범에 담기지 않은 우효원의 '가시리'와 '새야새야'도 선보인다.

박혜상은 "저는 애국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가곡을 부르거나 한복을 입을 때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힘이 있는 것 같다"며 한국가곡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어제 친구와 전화하며 (곡에 쓰인) 아쟁이라는 악기에 관해 설명을 해줬다"며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알고,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궁금함을 일으키는 역할을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죽음을 각각 다르게 바라보는 작품들을 골랐어요.

한국가곡, 현대음악 등이 다양하게 담겼지만, 그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하나예요.

'사랑하자. 슬퍼할 시간에 빛나게 살자.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니'라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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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박혜상 "산티아고 순례길서 성찰한 삶과 죽음 담았죠"
박혜상은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며 신기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꿨던 꿈속에서 숨을 참아야 하는 물속에 들어가자 오히려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영적인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앨범 제목을 '숨'이라고 지은 것도 이 꿈 때문이다.

앨범의 뮤직비디오에도 수중장면을 넣으면서 프리다이빙 교육을 수료했다고 했다.

박혜상은 "이번 앨범은 저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아무도 안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며 "그만큼 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평안하게 해줄 수 있는 메시지를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며 "두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앨범"이라고 웃었다.

"저는 제가 앨범을 내는 음악가가 되거나 오페라 가수로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모든 순간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무겁게 다가오기도 해요.

앨범이 갖는 의미가 뭔지도 고민하게 됐죠. 잘 팔리는 곡으로 대중적인 앨범을 낼 수도 있었겠지만, 제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낸 앨범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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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박혜상 "산티아고 순례길서 성찰한 삶과 죽음 담았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