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 주식에 투자하는 가치투자로 유명한 라이프자산운용의 이채원 의장(오른쪽)과 강대권 대표. 이 의장은 “유틸리티 기업이 주주가치를 올리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나친 가격 통제를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저평가 주식에 투자하는 가치투자로 유명한 라이프자산운용의 이채원 의장(오른쪽)과 강대권 대표. 이 의장은 “유틸리티 기업이 주주가치를 올리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나친 가격 통제를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한국전력에 전기료 결정에 대한 자율성을 주고, 은행이 대출 금리를 스스로 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들 종목에 대한 주가 부양 효과가 상당할 겁니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이 최근 서울 여의도동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 의장은 국내 투자업계에서 ‘가치투자의 대부’로 꼽힌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등을 거쳐 2021년 이 회사를 설립했다. 가치투자는 저평가 종목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발굴하는 투자 방법론을 말한다. 최근 증시에서 화두로 떠오른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주당순자산)도 가치투자자들이 눈여겨보는 지표 중 하나다.

이 의장은 최근 정부가 저평가 종목의 주가를 올리려고 하는 것에 대해 “바람직한 시도”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런 움직임이 반짝 열풍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도록 하려면 유독 한국 증시에서 저평가 종목이 속출하는 이유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고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의장은 “한전이 이윤을 적극 창출할 수 있어야 이 종목 주가가 오를텐데 국내선 정치권 영향으로 전기료가 눌리니 주가가 지지부진하다”며 “선진국에서는 유틸리티주가 안전자산 대접을 받으며 우상향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진국은 ‘주주 자본주의’(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기업에 소속된 모든 종사자와 공존공영하는 것)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주주 자본주의에도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라이프자산운용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강대권 대표는 “은행주는 PBR뿐만 아니라 이익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 측면에서도 매우 저평가된 상태”라며 “정치권이 대출 금리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니 주가도 눌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일본을 벤치마킹해 증시 부양을 유도하는 데 대해 그는 “일본은 저금리와 엔저로 경기 호황의 기틀이 마련된 상황에서 도쿄증권거래소가 주가 부양을 시도하니 증시가 반응하는 것”이라며 “한국은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다른 대책 없이 ‘PBR 1배’만 외치면 상승이 지속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의장은 “기업이 주주가치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도록 각종 제도 개선책을 병행해야 꾸준히 주가가 우상향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공청회 등을 통해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야 좋은 효과를 내는 정책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기업 이사의 의무를 규정한 상법 382조 3항에 ‘주주의 이익’을 넣도록 해당 조항을 개정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필요한 정책의 사례를 들었다. 이 상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현 국회 임기 동안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코앞이어서 법안 심사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관심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의장은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이 개선되도록 세금을 감면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라며 “창업자가 주가를 억누르지 않도록 상속세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상장사는 가업 승계 때 후계자가 상속 지분 가치의 최대 60%를 세금으로 내야 하고, 이는 피상속자(선대 경영자)가 주가 상승을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증권가에서는 “유틸리티, 금융 등은 규제 산업의 특성상 어느 정도 관치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강 대표는 이런 시각에 대해 적극 반박했다. 그는 “한전의 발전 자회사는 다수의 민간 발전 기업과 경쟁하고 있고, 4대 금융지주도 서로 경쟁하느라 400조~500조원을 굴려서 1년에 겨우 1조원을 버는 상황”이라며 “이들 기업이 편하게 이윤을 챙긴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그는 “적정 수준의 이익을 얻은 뒤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을 배당하도록 해야 한국도 선진국처럼 유틸리티주, 금융주가 우상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증권가에는 정부가 주가 부양에 적극 나서는 이유와 관련해 “총선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개인 주식 투자자가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고, 주가를 올리면 총선에서 이들의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강 대표는 이에 대해 “정치권이 국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더 큰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강 대표는 “벤처캐피털, 메자닌, 인수금융 등 기업에 자본이 들어가는 1차 시장이 잘 돌아가게 하려면 2차 시장(상장주식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1차 시장의 투자자들은 향후 2차 시장에서 얼마나 높은 수익률로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할 수 있을지를 보고 투자금 집행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는 곧 2차 시장이 잘 돌아가야 기업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이 과정이 잘 되면 자본의 순환을 활성화해 국가 전체의 부를 증대시킬 수 있다”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