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두렵다"…빌라 월세 6개월째 상승
전세 사기 등의 여파로 전세의 월세화 경향이 짙어지면서 서울 빌라(연립·다세대) 월세가 갈수록 치솟고 있다. 빌라의 매매 및 전셋값과 달리 월세만 나 홀로 6개월째 상승 중이다. 대출금리가 내려 전세 비용 부담이 줄어들기 전까지 당분간 월세 강세 현상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비(非)아파트 월세 비중 63%

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빌라 월세(순수월세+준월세+준전세)는 작년 12월 0.03% 올랐다. 지난해 7월부터 6개월 연속 오름세다. 서울 아파트 월세도 7개월째 뛰고 있다. 다만 아파트는 전세도 7개월 연속 오르는 등 전·월세가 함께 강세를 보이고 있다. 빌라 시장에선 전셋값이 최근 3개월 연속 떨어지는 등 월세와 다른 흐름이다. 아파트는 빌라에 비해 전세 보증금을 떼일 우려가 덜하다.

전문가들은 수급 불균형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전세 사기 사태 이후 수요자가 전세를 기피하고,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작은 월세로 눈길을 돌리고 있어서다. 작년 5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문턱이 높아진(공시가격의 150%→126%) 이후 시장에서 보증보험에 가입한 전세 물건도 줄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비아파트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3.7%로, 최근 5년 평균(48.5%)보다 15.2%포인트 올랐다.

특히 새로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월세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비아파트 신규 임대차 계약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7.2%로, 갱신 월세 계약 비율(36.8%)보다 30.4%포인트 더 높았다.

보증금 규모가 작은 월세 계약일수록 가격 상승 폭이 커지는 현상도 눈에 띈다. 예컨대 서울 빌라의 일반 월세(보증금이 월세의 12개월치 이하)와 준월세(12∼240개월치)는 각각 11개월, 9개월째 상승하고 있다. 반면 준전세(240개월치 초과)는 전세와 마찬가지로 하락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빌라를 주로 이용하는 서민의 주거비용 부담은 늘고 있다.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한 빌라 원룸(전용면적 13㎡)은 지난달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5만원에 세입자를 들였다. 작년 10월(보증금 1000만원에 60만원)과 비교하면 월세가 5만원(8%) 올랐다. 2022년 준공된 강남구 개포동 빌라 전용 21㎡ 월세(보증금 5000만원 기준)는 작년 10월 128만원에서 12월 140만원으로 뛰었다.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서도 신축 투룸 기준 월세가 100만원을 넘는 매물이 적지 않다.

대출금리 인하 여부 주목

시장 분위기를 바꿀 변수로는 금리가 꼽힌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대출 금리가 내려 이자 부담이 줄어들면 월세 세입자 가운데 보증금 규모를 늘리거나 전세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전세보다 월세살이가 더 비싸다. 작년 11월 기준 서울 빌라의 전·월세 전환율은 4.7%다. 은행권 전세대출 평균 금리가 연 4%대 초반까지 떨어진 점을 고려하면 월세 비용이 더 높다.

하지만 전세대출 이자 비용이 더 떨어지면 전세로 갈아타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보증금 미반환 우려가 여전하지만, 최근 빌라 전셋값 하락 여파 등으로 ‘깡통전세’(경매로 넘어가 보증금을 날릴 처지) 리스크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빌라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은 2022년 12월 78.6%에서 작년 12월 68.5%로 10%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20~30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비싼 월세를 내더라도 목돈을 보증금에 묻어두지 않고,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등을 통해 굴리려는 경향이 있다”며 “빌라 월세 선호 현상이 크게 꺾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빌라 공급 자체가 줄고 있어 세입자의 주거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전국 비아파트 착공 물량이 2022년 연간 8만4382가구에서 작년 3만9237가구로 53.5% 급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