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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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정권의 핵개발 몰두 속에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4명은 병원 진료 경험 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북한 주민의 70% 이상이 식량 배급을 한 번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탓에 정권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커지고 있다.

통일부는 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를 내놨다. 통일부가 전문 연구자, 리서치 기관을 통해 탈북민 6300여 명을 10년 간 1대 1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2013~2022년 약 1100여 개 문항을 누적 조사한 이번 보고서엔 가장 폭넓고 체계적인 북한 경제·사회 실태조사 결과가 축적돼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보고서는 탈북민의 탈북 시기를 2000년 이전~2020년까지 5년 단위로 구분했다. 거주 지역 역시 접경, 비접경, 평양 등으로 구분했다. 조사 대상 6300여 명의 탈북 시기를 5년 단위로 나눠 보면, 2000년 이전 683명, 2001~2005년 934명, 2006~2010년 1320명, 2011~2015년 2501명, 2016~2020년 913명 등이다.
사진=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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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배급 못 받아... 병원 진료 경험도 없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의 경제난과 민생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우선 광공업과 농업 등 국영경제 부진이 심각한 수준이다. 기업소의 실제 가동시간이 '6시간 이하'라고 응답한 비율이 37.6%였다. 식량 배급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72.2%에 달해 당국 차원의 배급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또 경영난 심화 속 공장과 기업소의 임금 지급 능력도 저하됐다. 노임·식량 배급이 '모두 없음'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

보건 체계 역시 사실상 붕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진료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39.6%에 달했다. 10명 중 7명 이상은 의사담당구역제를 인지하지도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의사담당구역제는 의사들이 일정한 주민구역을 담당하며 주민의 건강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체계적으로 돌보면서 예방치료 사업을 하는 북한의 주민건강 관리제도다.

보고서는 "평양의 대규모 건설 붐, '애민정치' 등 정권의 선전 구호 속에서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주민들의 민생고는 더욱 심화됐다"며 "특히 북한 당국의 핵·미사일 개발 과다지출로 민생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명 중 1명 "김정은 세습 불만"…탈북민 10년 면접결과 공개

"2명 중 1명은 감시 경험...정권 불신 늘었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생계 유지를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비공식 소득'이 주된 소득원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68.1%, 식량 구매 경로 1위가 종합시장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70.5% 등인 것으로 집계됐다.

보고서는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이 실패한 이후 북한 원화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면서 시장에서 외화 유통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중국 위안화의 통용이 약 5배 증가했다. 또 주택 양도·매매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46.2%로 법망을 피해 주택 매매도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비공식적 운송수단인 '써비차'나 사적 고용에 해당하는 '삯벌이' 등도 등장했다. 보고서는 "국영 부문의 어려움과는 대조적으로 민간 부문에서는 시장화가 진전돼 많은 변화가 관측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신흥 부유층인 '돈주'가 등장했고, 응답자 중 93.1%가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평양과 지방 간 공공서비스 격차도 커졌고, 간부층의 부정부패 역시 늘어났다. 보고서는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뇌물 공여 경험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정권은 주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응답자 중 51.3%는 거주지에서 감시·가택 수색을 경험했다. 월 수입의 30% 이상을 뇌물과 세외 부담 등으로 수탈당했다는 응답도 41.4%에 달했다. 교육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과목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우상화 교육이었다. 보고서는 "김정은의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는 취임 일성이 무색하게 민생 개선 없이 주민을 조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북한 주민들의 변화는 지속적으로 감지된다. 주민의식 조사 결과 '시장이 없으면 생활이 안 된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90.7%나 됐다. '개인의 일을 하는 것이 당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응답도 53.2%에 달해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풍조도 나타나고 있다.

정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경제상황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58.9%로 나타났다. 김정은의 권력 승계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56.3%였다. 거센 탄압 속에서도 외부 영상물을 시청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83.3%, 외부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7%에 달했다. 거센 단속에도 꾸준히 유통되는 외부 정보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