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완성된 누드화… 생명과 빛이 살결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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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한찬희의 디테일로 보는 미술사
36년 만에 완성된 누드화가 있다. 19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회화의 대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의 작품이다. 1820년 피렌체에서 그린 밑그림은 1856년에 비로소 완성됐다. 높은 완성도의 초상화로 이름을 알렸던 앵그르는 1829년 파리 보자르(Beaux-Arts de Paris) 회화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3년 후엔 총장에 오르게 된다. 열정적이고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알려진 이 작가의 작품에는 어떤 특별한 것들이 있을까?
고대 조각상들과 인체의 이상적인 비율에 대해 연구했던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기준 삼아 앵그르는 가장 완벽한 모방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한 작품을 그리기 전에 했던 수많은 스케치 작업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특히 경직된 인물의 자세에 자연스러움을 부여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 시대 때부터 사용됐던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를 적용시켰다.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의 자세와 유사한데, 인물의 머리부터 발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나선형으로 시선을 유도하여 자연스러우면서 역동적인 자세를 꾀하는 세르펜티나타(Serpentinata) 양식이다. 앵그르는 인물화 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그리는 것을 목표했다. 평생 아내를 뮤즈로 삼았던 그는 절제된 곡선으로 인물의 실루엣을 완성하고, 붓 자국을 최대한 지워내 대리석 조각의 매끈한 표면을 떠오르게 하는 부드러운 질감을 표현했다. 이상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독창성이 부족하다고 비판을 받기보다는, 왕족과 귀족 부인들이 초상화를 의뢰하기 위해 대기를 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고전주의 작품 특유의 고요하면서 웅장한 분위기를 더했기 때문에 그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샘>에 등장하는 여인의 발밑에 거품이 일고 있다. 이 거품은 ‘물에서 솟아났다’라는 뜻의 ‘아나디오메네(Anadyomene)’ 비너스를 상징한다. 비너스의 탄생신화의 대표적인 이 알레고리는 작품 속 인물에 신성(divinity)을 부여한다. 평범한 인간이 아닌 샘의 정령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앵그르가 그린 <아나디오메네 비너스>를 보면 <샘>에 등장하는 인물과 자세가 거의 동일하며 화면 속 차지하는 비율과 구도가 유사하다. 1807년 처음 이 작품을 시작할 때 그린 비너스의 자세를 수십 년간 연구를 이어가며 한두 차례 전반적인 수정을 거쳤다고 한다. 결국 1848년에 완성작을 선보이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이 작품과 유사한 구도와 자세로 <샘>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항아리다. 그림 속 여인이 들고 있는 항아리는 고대 그리스 시대 때 쓰였던 양식으로 바닥이 좁고 몸통 양옆에 손잡이가 달린 히드리아(Hydria) 형이다. 중간 부분이 불룩하고 목이 가늘어 주로 물을 운반할 때 사용했던 도자기였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그림 좌측 하단에 피어 있는 수선화 한 송이다. 수선화는 고대 그리스어로 ‘나르키소스’, 영어로는 ‘나르시스’라고 하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많은 여인들의 구애를 거절했던 한 청년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저주를 받는 이야기다. 외면당한 여인들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도 평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해달라’고 염원한 결과였다. 며칠 후, 나르키소스가 샘물을 마시려는 순간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사랑에 빠졌고, 닿을 수 없는 사랑을 갈구하다 그 자리에서 끝내 꽃이 되었다는 신화다.
작품 속에서 수선화는 단순히 주제가 그리스 시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피어 있는 수선화가 샘의 정령을 향해 있고 함께 조명을 받고 있는 것, 그 앞에 놓인 돌에 작가의 서명이 새겨져 있는 것은 이 꽃의 존재에 대한 중요성을 더하는 부분이다. 작품의 크기는 세로와 가로의 비율이 2 대 1로 당시 프랑스 화단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됐던 인물화의 비율보다 더 길쭉하다. 화면의 구성을 살펴보면 항아리에서 흐르는 물 줄기, 인물의 어깨와 팔을 따라 흘러내린 머리카락, 나무뿌리의 방향, 암벽 표면의 무늬까지 인물의 실루엣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그리고 화면 속을 비추는 빛과 그림자도 자연스럽게 수직 방향으로 표현되었다. 장 구종의 분수 부조 작품을 연상케 하는 캔버스 비율과 수직적 화면 구성은 회화를 생명이 깃든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표현하고자 한 앵그르의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의 첫 컬렉터였던 뒤샤텔 백작은 그림을 중심으로 수변식물과 꽃들을 함께 배치하는 등 생동감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더해 현실 속 공간처럼 연출하기도 했다. 앵그르는 작품 속에 다양한 고전주의적 요소를 삽입해 관람객들이 맥락을 파악하고 주제를 이해하는 데에 재미를 더했다. 또한, 디테일한 구성과 표현은 작품을 보는 이들의 시선을 유도하며, 그의 완벽주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비평가이자 시인이었던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는 앵그르의 <샘>을 보고 나서 ‘이토록 부드럽고 생생하며, 생명이 깃들고, 빛이 스며든 듯한 살결’이라는 비평을 남겼다.
1. 창작은 모방에서 나온다.
프랑스어 원제목 ‘La Source’는 동음이의어로 ‘샘’과 ‘근원’을 동시에 뜻한다. 의도적으로 중의적 표현을 사용했을 수도 있지만, 작품 속 여인의 특징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샘’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6세기 중반 파리 한가운데 만들어진 분수에 새겨진 부조들 중 ‘샘의 정령’을 표현한 조각이 있다. 당시 건축가이자 조각가였던 장 구종(Jean Goujon)의 이 작품은 인물의 자세, 여인이 들고 있는 항아리와 흐르는 물줄기가 앵그르가 그린 작품과 닮아 있는데, 샘의 정령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양식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앵그르는 모방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같은 위대한 화가들 중 모방 없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없으며, ‘무’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창작이란 모방의 과정 중에 일어나는 새로운 발견이다.고대 조각상들과 인체의 이상적인 비율에 대해 연구했던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기준 삼아 앵그르는 가장 완벽한 모방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한 작품을 그리기 전에 했던 수많은 스케치 작업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특히 경직된 인물의 자세에 자연스러움을 부여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 시대 때부터 사용됐던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를 적용시켰다.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의 자세와 유사한데, 인물의 머리부터 발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나선형으로 시선을 유도하여 자연스러우면서 역동적인 자세를 꾀하는 세르펜티나타(Serpentinata) 양식이다. 앵그르는 인물화 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그리는 것을 목표했다. 평생 아내를 뮤즈로 삼았던 그는 절제된 곡선으로 인물의 실루엣을 완성하고, 붓 자국을 최대한 지워내 대리석 조각의 매끈한 표면을 떠오르게 하는 부드러운 질감을 표현했다. 이상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독창성이 부족하다고 비판을 받기보다는, 왕족과 귀족 부인들이 초상화를 의뢰하기 위해 대기를 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고전주의 작품 특유의 고요하면서 웅장한 분위기를 더했기 때문에 그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샘>에 등장하는 여인의 발밑에 거품이 일고 있다. 이 거품은 ‘물에서 솟아났다’라는 뜻의 ‘아나디오메네(Anadyomene)’ 비너스를 상징한다. 비너스의 탄생신화의 대표적인 이 알레고리는 작품 속 인물에 신성(divinity)을 부여한다. 평범한 인간이 아닌 샘의 정령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앵그르가 그린 <아나디오메네 비너스>를 보면 <샘>에 등장하는 인물과 자세가 거의 동일하며 화면 속 차지하는 비율과 구도가 유사하다. 1807년 처음 이 작품을 시작할 때 그린 비너스의 자세를 수십 년간 연구를 이어가며 한두 차례 전반적인 수정을 거쳤다고 한다. 결국 1848년에 완성작을 선보이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이 작품과 유사한 구도와 자세로 <샘>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아는 만큼 보이는 디테일
고대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 삼아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앵그르가 활동했던 당시 고전주의 화가들에게는 교과서와 같았다. 단순한 모방보다는 어떻게 세련된 방식으로 신화적 모티브를 표현하여 관람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앵그르도 이 작품 속에 여인의 발아래 일고 있는 거품처럼 고대 그리스 시대를 연상케 하는 요소들을 그려 넣었다.첫 번째는 항아리다. 그림 속 여인이 들고 있는 항아리는 고대 그리스 시대 때 쓰였던 양식으로 바닥이 좁고 몸통 양옆에 손잡이가 달린 히드리아(Hydria) 형이다. 중간 부분이 불룩하고 목이 가늘어 주로 물을 운반할 때 사용했던 도자기였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그림 좌측 하단에 피어 있는 수선화 한 송이다. 수선화는 고대 그리스어로 ‘나르키소스’, 영어로는 ‘나르시스’라고 하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많은 여인들의 구애를 거절했던 한 청년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저주를 받는 이야기다. 외면당한 여인들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도 평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해달라’고 염원한 결과였다. 며칠 후, 나르키소스가 샘물을 마시려는 순간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사랑에 빠졌고, 닿을 수 없는 사랑을 갈구하다 그 자리에서 끝내 꽃이 되었다는 신화다.
작품 속에서 수선화는 단순히 주제가 그리스 시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피어 있는 수선화가 샘의 정령을 향해 있고 함께 조명을 받고 있는 것, 그 앞에 놓인 돌에 작가의 서명이 새겨져 있는 것은 이 꽃의 존재에 대한 중요성을 더하는 부분이다. 작품의 크기는 세로와 가로의 비율이 2 대 1로 당시 프랑스 화단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됐던 인물화의 비율보다 더 길쭉하다. 화면의 구성을 살펴보면 항아리에서 흐르는 물 줄기, 인물의 어깨와 팔을 따라 흘러내린 머리카락, 나무뿌리의 방향, 암벽 표면의 무늬까지 인물의 실루엣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그리고 화면 속을 비추는 빛과 그림자도 자연스럽게 수직 방향으로 표현되었다. 장 구종의 분수 부조 작품을 연상케 하는 캔버스 비율과 수직적 화면 구성은 회화를 생명이 깃든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표현하고자 한 앵그르의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의 첫 컬렉터였던 뒤샤텔 백작은 그림을 중심으로 수변식물과 꽃들을 함께 배치하는 등 생동감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더해 현실 속 공간처럼 연출하기도 했다. 앵그르는 작품 속에 다양한 고전주의적 요소를 삽입해 관람객들이 맥락을 파악하고 주제를 이해하는 데에 재미를 더했다. 또한, 디테일한 구성과 표현은 작품을 보는 이들의 시선을 유도하며, 그의 완벽주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비평가이자 시인이었던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는 앵그르의 <샘>을 보고 나서 ‘이토록 부드럽고 생생하며, 생명이 깃들고, 빛이 스며든 듯한 살결’이라는 비평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