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가살균제 국가 배상책임 첫 인정…법원 "예견 가능한 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심 '국가 대상 청구 기각' 뒤집혀
"구제급여 받았으면 배상서 제외"
"구제급여 받았으면 배상서 제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가가 가습기살균제 원료인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9부(성지용 백숙종 유동균 부장판사)는 이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모 씨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3명에게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들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주원료인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 본인 또는 가족이 사망·상해 등 피해를 입었다. 이들은 2014년 8월 국가와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또는 납품한 세퓨, 옥시레킷벤키저, 한빛화학, 롯데쇼핑, 용마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중 옥시레킷벤키저, 한빛화학, 롯데쇼핑, 용마산업은 1심 선고 전 조정 성립으로 소송에서 빠졌다.
1심 재판부는 세퓨가 피해자 13명에게 총 5억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가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모두 당시 시행되던 법령에 따른 것으로서 피고 소속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원고 5명은 국가를 상대로 패소한 부분만 항소했다.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국가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화학물질에 대해 불충분하게 유해성심사를 했음에도 그 결과를 성급히 반영해 일반적으로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한 다음 이를 10년 가까이 방치한 것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여 위법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화학물질이 심사된 용도 외로 사용되거나 최종제품에 다량 첨가되는 경우에 관한 심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물질 자체의 독성 등 유해성이 일반적으로 충분히 심사·평가되거나 그 안전성이 검증된 것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화학물질에 대해 용도 및 사용 방법에 관한 아무런 제한 없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공표하는 경우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원고 2명은 이미 구제급여를 받았으므로 국가를 상대로 더는 배상 청구를 할 수 없고, 구제급여를 받지 않은 나머지 원고 3명에 대해서만 구제급여는 아니지만 이미 지급받은 다른 지원금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송기호 변호사는 선고 후 "국가가 단순히 피해자들을 시혜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배상해야 하는 법적 책임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큰 판결"이라며 "구제급여 지급을 공제한 판결에 대해서는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배상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판결문을 검토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해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9부(성지용 백숙종 유동균 부장판사)는 이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모 씨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3명에게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들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주원료인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 본인 또는 가족이 사망·상해 등 피해를 입었다. 이들은 2014년 8월 국가와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또는 납품한 세퓨, 옥시레킷벤키저, 한빛화학, 롯데쇼핑, 용마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중 옥시레킷벤키저, 한빛화학, 롯데쇼핑, 용마산업은 1심 선고 전 조정 성립으로 소송에서 빠졌다.
1심 재판부는 세퓨가 피해자 13명에게 총 5억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가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모두 당시 시행되던 법령에 따른 것으로서 피고 소속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원고 5명은 국가를 상대로 패소한 부분만 항소했다.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국가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화학물질에 대해 불충분하게 유해성심사를 했음에도 그 결과를 성급히 반영해 일반적으로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한 다음 이를 10년 가까이 방치한 것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여 위법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화학물질이 심사된 용도 외로 사용되거나 최종제품에 다량 첨가되는 경우에 관한 심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물질 자체의 독성 등 유해성이 일반적으로 충분히 심사·평가되거나 그 안전성이 검증된 것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화학물질에 대해 용도 및 사용 방법에 관한 아무런 제한 없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공표하는 경우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원고 2명은 이미 구제급여를 받았으므로 국가를 상대로 더는 배상 청구를 할 수 없고, 구제급여를 받지 않은 나머지 원고 3명에 대해서만 구제급여는 아니지만 이미 지급받은 다른 지원금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송기호 변호사는 선고 후 "국가가 단순히 피해자들을 시혜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배상해야 하는 법적 책임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큰 판결"이라며 "구제급여 지급을 공제한 판결에 대해서는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배상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판결문을 검토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해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