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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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6일 올해 대학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들이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의정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의사 단체들은 “의대 정원 확대가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늘리고 필수의료도 살리지 못할 것”이라며 정원 확대 결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 강화의 전제조건”이라며 “의사가 늘면 의료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1970년대에나 통하던 낡은 이론”이라며 맞서고 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양측의 입장이 갈리는 핵심 쟁점들에 대해 정리해본다.

(1)앞으로 인구 줄어든다는데...한국 의사 정말 부족한가(O)

국가 간 비교를 해보면 한국에 의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활동 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202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멕시코(2.5명)에 이어 밑에서 두번째다. OECD 평균(3.7명)에 비해선 70% 수준이다.

정부는 2035년이면 국내 의사 인력이 1만5000명 가량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중 1만명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이 추정한 2035년 의사 부족분으로, 통상 의사 한명당 업무량을 일정 수준으로 가정하고 고령화로 인해 늘어날 의료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인력이 추가로 필요한지 추정한 수치다.

나머지 5000명은 정부가 현재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전국 평균보다 낮은 의료 취약지에서 활동하는 의사 수를 전국 평균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필요한 의사의 수다. 올해 입시부터 5년 간 의대 정원을 2000명씩 늘려 최소 1만명을 확보하고, 실제 인력 배출까지 부족한 5000명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은퇴했지만 정상적인 의료 활동이 가능한 시니어 의사 활용 등을 통해 보충한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반면 의협은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가 줄면서 의사 수 부족 문제는 점차 해결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인구 감소와 활동 의사 수 증가 추세가 맞물리면서 2063년이면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6.49명으로 OECD 평균(6.43명)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연구소는 10여년 전인 2013년엔 의대 정원 확대 없이도 이르면 2023년 늦어도 2026년 OECD 평균을 따라잡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오히려 10년이 지난 지금 예상 추월 시기가 40년 뒤로 미뤄진 셈이다.

(2)의대 정원이 늘면 의료비가 되려 늘어나 건강보험 재정이 무너진다?(X)

의협은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비가 늘어나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엔 이론적 근거가 있다. 의료시장은 서비스 공급자인 의사가 전문 지식과 정보 면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어 수요자인 환자의 의사결정을 대신할 수 있는 특수한 시장이라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유인수요이론’이다. 의사 수를 늘리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과잉 진료’가 늘며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이 같은 이론에 기초해 의대 정원이 1000명 늘면 2040년 건보 지출이 17조원 더 늘어날 것이라 예측한 바 있다. 실제 진료를 받을 때 의사의 처방에 맞춰 진료가 이뤄지는만큼 현실성이 있는 이론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유인수요론은 낡은 이론”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2012~2022년 의료비 증가 요인을 분석한 결과 해당 기간 건보 급여가 적용된 의료비 연평균 상승(7.9%)요인 중 수가 인상(2.6%), 고령화(2.1%), 약가상승(1.6%)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의사 수 증가가 포함된 ‘기타’요인은 0.7%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실손보험 증가 요인이 상당 부분을 차지해 의사 수 증가는 별다른 영향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의사 수 증가가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지는 관련 정책 및 제도와의 조합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사 수 증가가 인건비의 감축으로 현실화할 경우 의료비 전가는 크지 않을 수 있다. 정부가 진료량에 따라 보상을 받는 행위별 수가제의 대폭 개편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과잉 진료에 기반한 유인 수요가 과거만큼 작동할지도 미지수다.

(3)의대 정원 늘린다고 필수 의료 문제 해소되나?(△)

의사 단체들이 필수의료 문제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수가 인상과 사법 리스크 완화 이슈는 정부가 1일 발표한 ‘필수의료 패키지’로 인해 상당 부분 해소된 상황이다. 정부는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필수의료 분야 수가를 집중 인상하기로 했다. 난이도, 위험도, 숙련도, 대기·당직시간 등을 고려한 ‘공공정책수가’와 지역 의료에 부여하는 ‘지역 수가’도 신설하고, 불가피한 의료사고에 대한 사법 부담을 덜어주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도 제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가 곧 필수 의료 문제 해소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이 정부 및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올해 의대생 2000명을 추가로 뽑더라도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는데만 6년이 걸린다.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배출되는덴 10~11년이 걸린다. 당장 올해부터 정부가 필수의료 수가를 대폭 높이더라도 연간 20조원에 육박하는 비급여 진료를 중심으로 고소득을 올릴 수 있고 상대적으로 일이 편한 소위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정재영(정신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으로의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을진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6일 한 방송에 출연해 “의대 정원 확대와 필수의료 패키지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필수의료 패키지 내에서도 비급여 팽창의 요인으로 지목된 혼합진료(급여·비급여를 함께 진료) 금지 등 비급여 통제책은 공론화 및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중장기 과제로 남겨둔 상황이다.

(4)국내 의사 소득 OECD 1등 맞나(O)

한국 의사들이 평균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전체 의사의 연평균 임금은 2억3070만원에 달한다. 전문의 연평균 임금은 2억3690만원, 일반의는 1억4231만원이었다. 전문의 중 봉직의 연평균 임금은 1억9115만원, 개원의는 3억138만원이었다. 같은 인기 전문직인 변호사(1억1580만원), 회계사(9830만원)를 압도하는 수치다.

OECD가 지난해 발표한 ‘보건의료 2023’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의사의 연평균 총소득은 다른 노동자보다 2.1배∼최대 6.8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의사의 평균 소득은 전체 노동자보다 △봉직 일반의는 2.1배 △개원 일반의는 3배 △봉직 전문의는 4.4배 △개원 전문의는 6.8배 더 많은 수입을 올렸다. 개원 전문의의 경우 OECD 전체 회원국 중 가장 큰 격차다. 이처럼 의사들의 소득이 높은 핵심 원인이 의사 수 부족에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5)2000명 의대 증원으로 교육 현장 교란되나(O)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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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서 2000명에 달하는 의대 증원은 중·고등 교육 현장에 상당한 여파를 미칠 전망이다. 서울대의 한해 총 입학 정원은 약 3300명으로 이 중 의대를 포함한 이공계는 1800명 수준이다. 카이스트의 한해 입학 정원도 990명에 불과하다. 의대가 이과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의 필수 선택이 되버린 현재 상황에선 당분한은 최상위 5000등 이내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로 갈 것이란 것이 교육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사실상 서울대 이공계 전부, 카이스트 입학생의 2배에 달하는 이공계열 신입생이 의대로 향할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도 단기 쏠림 가능성에 대해선 인정하고 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에 대해 “의대에 쏠리는 궁극적 원인은 의사 수가 제한되면서 기대 소득이 높기 때문“이라며 “단기적으로 충격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기대 수익이 균형이 맞춰져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정년이 없는 평생 직장인 의사 면허의 가치가 높아지는만큼 정원 확대의 효과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2009년 로스쿨이 만들어지고 변호사가 가진 지대가 크게 줄었음에도 ‘면허’ 산업이란 점에서 인기는 여전하다”며 “어렵다는 소아과 의사도 연봉이 1억8000만원인데 수험생 입장에선 다른 길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