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오장군의 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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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단장, 작곡가
![[한경에세이] 오장군의 거문고](https://img.hankyung.com/photo/202402/07.35484817.1.jpg)
최근 그의 개인 연습실을 방문했다. 여러 사진이 빽빽하게 진열돼 있었는데, 그중 얼핏 정체 모를 한 장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심하게 상한 엄지손가락 사진이었다. 거문고의 특성상 왼손 엄지의 사용이 매우 중요한데, 손톱만 빼면 거의 성한 살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굳은살이 박이고 또 박인 엄지손가락은 마치 나무의 나이테인 양 켜켜이 살결 무늬를 드러낸 작은 절벽 같았다.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손이 아파져 왔다. 얼마나 아팠을까?
오래전 부전공으로 거문고를 만졌던 시절, 거문고는 사람을 혹사하기 위해 탄생한 악기 같다고 느꼈다. 모든 음의 기본을 삼아야 하는 왼손의 약지는 연주를 시작한 지 1~2분도 안 돼 마비될 정도였고, 굵은 거문고 줄을 비비며 연주해야 하는 엄지는 얼마나 아팠던가. 술대를 잡는 오른손의 검지와 장지 사이에 굳은살이 박여서 두 손가락을 나란히 하기도 어려웠고, 바닥에 앉아서 연주하기에 무릎 관절이 늘 아팠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오경자가 정말 살을 깎아가며 연습했고 오늘날의 실력을 얼마나 혹독한 자기 수련과 연습을 통해 이뤄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며 결코 투자 없는 성공은 없다는 진리를 떠올리게 됐다. 이렇듯 고통을 이겨내는 연습을 반복해야만 나올 수 있는 소리, 그는 그렇게 자기 살이 닳도록 문지르며 유려한 선율을 만들어냈다.
광주가 고향인 오경자의 거문고 소리는 특별하다. 투박한데 거칠지 않고, 부드러운데 간드러지지 않는다. 거문고 성음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다. 거문고 소리의 정석이다. 그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 모든 것이 용서될 정도로 속이 뻥 뚫리게 하는 시원함이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 뜨거운 열정을 보이는 후배의 음악이 있기까지 그저 잘한다고 감탄만 했을 뿐, 손을 본 적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악이라는 꽃을 피우려는, 수많은 예인의 노력이 쌓여 오늘날 우리의 소리가 이어져 왔음에 새삼 숙연한 감사의 마음이 솟는다. 이제 난 그를 오장군이라 부르고 싶다. 오장군의 거문고 소리를 비롯한 많은 예인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다 많은 이에게 떨치기 위해 내 일에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임해야 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