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 초기 결사항전 끝 수도 지켜내…바흐무트 격전도 지휘
"가장 어려운 국면서 중책", "지상전에 초점 맞추는 신호" 해석도
새 우크라 총사령관, 키이우 방어·하르키우 반격 이끈 베테랑
노재현 = 우크라이나의 '국민영웅' 발레리 잘루즈니 장군에 이어 군 총사령관에 임명된 올렉산드르 시르스키(58)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고전 중인 전세를 바꿔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오늘부터 새로운 지휘부가 우크라이나군 지휘를 맡게 될 것"이라며 시르스키 중장을 군 총사령관에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시르스키 신임 총사령관은 그동안 지상군 사령관으로서 수도 키이우 방어를 전담해온 베테랑 지휘관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시르스키 총사령관을 가리켜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경험 많은 지휘관"이라고 평가했다.

AP 통신도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지난 지휘관이 우크라이나군에 별로 없다며 시르스키의 발탁이 놀랍지 않다고 분석했다.

외신에 따르면 1965년 옛 소련의 블라디미르 지역에서 태어난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모스크바 고등군사령부학교를 다녔고 소령 포병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다.

1980년대부터는 우크라이나에서 계속 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시르스키는 우크라이나군에서 '도살자'(butcher)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그의 지휘 스타일에 소련 군사 전술의 위계적 특성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유연성 원칙이 섞인 것으로 평가했다.

시르스키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했을 때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지상군 작전사령관으로 활약했다.

그해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에서 친러시아 세력의 봉기가 발생했을 때 우크라이나군을 이끌고 전투에 나선 이후로는 '설표범'(snow leopard)이라는 무선호출명으로 통해왔다고 한다.

날렵하고, 용맹한 지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9년 지상군사령관이 된 그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지상군사령관으로서 수도 키이우를 성공적으로 지켜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당시 서방에서는 러시아가 키이우를 불과 며칠 만에 함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우크라이나군은 탱크와 장갑차 등을 앞세운 러시아군에 결사항전으로 맞섰다.

시르스키는 키이우로 진격하는 러시아군을 물리친 공로로 나중에 우크라에서 최고 영예인 영웅상을 받았다.

또 그해 9월 우크라이나군을 이끌고 북서부 하르키우에서 반격에 나서 러시아에 빼앗겼던 쿠피안스크, 이지움 등의 도시들을 탈환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동부 바흐무트의 전투도 이끌었다.

다만 작년 5월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이 점령할 때까지 바흐무트에서 수개월간 치열한 전투가 치러지는 동안 우크라이나군 사상자가 많았다는 점은 비판받는 대목이다.

새 우크라 총사령관, 키이우 방어·하르키우 반격 이끈 베테랑
AP는 시르스키가 전쟁의 가장 어려운 국면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지휘봉을 잡았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안이 공화당 반대에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등 서방이 지속해온 군사 원조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우크라이나군은 탄약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NYT는 우크라이나가 전선에서 고전하는 상황에서 시르스키가 총사령관에 오른 것에 주목했다.

NYT는 현재 상황이 우크라이나군이 빠르게 진격할 가능성이 작고 우크라이나가 추가로 많은 군인을 동원하려던 계획이 지연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시르스키 총사령관 임명이 우크라이나군의 전술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했다.

러시아군 공세를 방어하는데 집중하던 전술에서 공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군축연구센터의 전문가 미하일로 사무스는 시르스키 총사령관 임명에 대해 "지상전에 초점을 맞춘다는 신호"라며 우크라이나가 진격의 위험과 인명·장비 손실 등의 가능성을 감수하지 않으면 나중에 불리한 조건으로 휴전 협상을 강요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