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언장에 앞서는 상속재산분할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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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은 돌발 변수 많아 '무효' 가능성 커
구성원 간 '합의'가 분쟁 예방에 효과적
최웅영 율촌 변호사
구성원 간 '합의'가 분쟁 예방에 효과적
최웅영 율촌 변호사
‘웰다잉(well dying)’ 문화가 확산하고 있지만, 상속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상속은 자칫 후손들에게 재산 분쟁이라는 갈등의 씨앗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죽음 이후 남은 가족의 ‘웰리빙(well living)’을 위해선 생전에 명확한 상속재산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
생존해 있는 부모 앞에서 상속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면구스러운 일이다. 이는 부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에 관한 사건 접수 건수는 크게 늘고 있다. 2013년 3만5030건에서 2022년 5만1626건으로 거의 1.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연 사망자 수가 26만 명에서 37만 명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상속 문제로 가족끼리 법원을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 된 것이다.
상속으로 인한 가족의 갈등과 분쟁을 미리 방지하고자 한다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생전에 가족 모두와 상속에 관해 충분한 의사소통과 상의를 해야 한다. 가족 사이에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것을 유언으로 남길 수 있고 죽음 후 상속인들의 상속재산분할협의로 미룰 수도 있다.
하지만 온갖 돌발 변수로 쉽사리 무효가 될 수 있는 유언보다 평소 공감대를 형성한 상속인들의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더 확실한 선택이다. 상속인들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상호 소통을 통해 합의에 이른 상속재산분할협의는 유언의 효력보다 우선할 수 있다.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도 유언보다 앞선다. 상속인들의 합의 이후 3년이라는 제척기간도 두고 있다.
유언이나 유언장은 상속재산분할협의서에 비하면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 자체가 매우 어렵다. 유언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인생의 조언을 전하는 ‘마지막 인사’(last farewell)로서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고 또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법률적 의미의 유언, 즉 ‘죽음 후 재산의 상속과 처분에 관한 유언’은 되레 남은 가족에게 분쟁 소지가 되는 사례가 많다.
엄격한 형식과 절차를 잘 지켜야 법적으로 유효한 유언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법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라는 다섯 가지의 유언 방식만 인정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투수 저스틴 벌랜더는 고등학생 때 친구에게 50센트짜리 우유를 얻어 마시면서 종이 냅킨에 메이저리그 계약금의 0.1%를 지급하는 계약서를 써줬다가 수년 후 3000달러를 물어줬다는데, 왜 유독 유언에는 이리 엄격한 형식을 요구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유언장의 위조 가능성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진시황부터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유언장은 항상 진위에 의심을 받아왔다.
조금이라도 형식에 어긋나는 사정이 있으면 유언 내용이 아무리 진실이더라도 효력이 없게 된다. 자필증서가 유언자 본인의 필체가 아니거나 주소와 날짜를 안 쓴 경우, 유언 녹음파일을 자르고 붙여 조작한 경우, 자격이 없는 사람이 유언의 증인이 된 경우 등 유언이 무효가 될 가능성은 예상하지 못한 온갖 측면에서 생기곤 한다.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아무래도 유효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필자가 법원에 재직할 때 무효로 판결한 유언 중에는 공정증서도 없지 않았다.
또 유언에 관한 재판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유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지다. 유언장 작성 당시에 유언의 의미를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지를 따지기 위해 이미 돌아가신 유언자의 내밀한 의료기록이 낱낱이 법정에 제시되고, 상속인들은 유언자의 생전 건강 상태에 큰 관심을 갖고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많은 허들을 넘어 유언 자체는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더라도, 유언으로 법정 상속분의 일정 비율 이상을 받지 못한 상속인이 유류분을 주장해 유언의 효력을 일부 부정할 수 있다. 유류분 계산에는 사망 시점 소유하던 재산 외에 ‘생전에 증여한 재산’까지 포함되므로, 재판에서는 유언자가 생전에 남긴 수많은 금융거래 내역과 부동산거래 내역이 증거로 제출된다. 상속인들은 오랜 시간 송사에 시달리게 되며 혹시 다른 상속인이 예전에 증여받은 재산이 드러나면 국세청에 증여세 탈루를 제보하기까지 한다.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형제자매가 예상하지 못한 부모의 유언으로 오랜 송사를 겪으면서 원수보다 못한 관계가 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가족 간 분쟁임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조정을 유도해 극적인 합의에 이른 경우에도 서로 부둥켜안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영화에서나 나올 뿐이다. 그간 서로에게 쌓인 원망과 분노 탓인지 원래 관계로 회복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차라리 유언이 없었더라면 남은 가족의 상속재산분할 협의로 원만히 마무리됐으리라.
설 연휴에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럴 때 미리 상속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한다. 숨겨놓은 재산이나 빚이 있다면 솔직하게 밝히고, 예전에 돈 문제로 고마웠거나 섭섭했던 일도 터놓고 얘기해보면 좋겠다. 상속인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합의한 상속재산분할협의서는 나중에 큰 갈등을 막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돌아가신 분의 의사보다는 상속인들의 의사가 더 중요하다면 너무 지나친 얘기일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혹시 다툼이 생기더라도 차후에 법정에서 날이 선 공방을 주고받는 것보다야 백번 나은 선택 아니겠는가.
생존해 있는 부모 앞에서 상속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면구스러운 일이다. 이는 부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에 관한 사건 접수 건수는 크게 늘고 있다. 2013년 3만5030건에서 2022년 5만1626건으로 거의 1.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연 사망자 수가 26만 명에서 37만 명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상속 문제로 가족끼리 법원을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 된 것이다.
상속으로 인한 가족의 갈등과 분쟁을 미리 방지하고자 한다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생전에 가족 모두와 상속에 관해 충분한 의사소통과 상의를 해야 한다. 가족 사이에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것을 유언으로 남길 수 있고 죽음 후 상속인들의 상속재산분할협의로 미룰 수도 있다.
하지만 온갖 돌발 변수로 쉽사리 무효가 될 수 있는 유언보다 평소 공감대를 형성한 상속인들의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더 확실한 선택이다. 상속인들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상호 소통을 통해 합의에 이른 상속재산분할협의는 유언의 효력보다 우선할 수 있다.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도 유언보다 앞선다. 상속인들의 합의 이후 3년이라는 제척기간도 두고 있다.
유언이나 유언장은 상속재산분할협의서에 비하면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 자체가 매우 어렵다. 유언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인생의 조언을 전하는 ‘마지막 인사’(last farewell)로서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고 또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법률적 의미의 유언, 즉 ‘죽음 후 재산의 상속과 처분에 관한 유언’은 되레 남은 가족에게 분쟁 소지가 되는 사례가 많다.
엄격한 형식과 절차를 잘 지켜야 법적으로 유효한 유언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법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라는 다섯 가지의 유언 방식만 인정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투수 저스틴 벌랜더는 고등학생 때 친구에게 50센트짜리 우유를 얻어 마시면서 종이 냅킨에 메이저리그 계약금의 0.1%를 지급하는 계약서를 써줬다가 수년 후 3000달러를 물어줬다는데, 왜 유독 유언에는 이리 엄격한 형식을 요구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유언장의 위조 가능성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진시황부터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유언장은 항상 진위에 의심을 받아왔다.
조금이라도 형식에 어긋나는 사정이 있으면 유언 내용이 아무리 진실이더라도 효력이 없게 된다. 자필증서가 유언자 본인의 필체가 아니거나 주소와 날짜를 안 쓴 경우, 유언 녹음파일을 자르고 붙여 조작한 경우, 자격이 없는 사람이 유언의 증인이 된 경우 등 유언이 무효가 될 가능성은 예상하지 못한 온갖 측면에서 생기곤 한다.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아무래도 유효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필자가 법원에 재직할 때 무효로 판결한 유언 중에는 공정증서도 없지 않았다.
또 유언에 관한 재판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유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지다. 유언장 작성 당시에 유언의 의미를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지를 따지기 위해 이미 돌아가신 유언자의 내밀한 의료기록이 낱낱이 법정에 제시되고, 상속인들은 유언자의 생전 건강 상태에 큰 관심을 갖고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많은 허들을 넘어 유언 자체는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더라도, 유언으로 법정 상속분의 일정 비율 이상을 받지 못한 상속인이 유류분을 주장해 유언의 효력을 일부 부정할 수 있다. 유류분 계산에는 사망 시점 소유하던 재산 외에 ‘생전에 증여한 재산’까지 포함되므로, 재판에서는 유언자가 생전에 남긴 수많은 금융거래 내역과 부동산거래 내역이 증거로 제출된다. 상속인들은 오랜 시간 송사에 시달리게 되며 혹시 다른 상속인이 예전에 증여받은 재산이 드러나면 국세청에 증여세 탈루를 제보하기까지 한다.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형제자매가 예상하지 못한 부모의 유언으로 오랜 송사를 겪으면서 원수보다 못한 관계가 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가족 간 분쟁임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조정을 유도해 극적인 합의에 이른 경우에도 서로 부둥켜안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영화에서나 나올 뿐이다. 그간 서로에게 쌓인 원망과 분노 탓인지 원래 관계로 회복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차라리 유언이 없었더라면 남은 가족의 상속재산분할 협의로 원만히 마무리됐으리라.
설 연휴에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럴 때 미리 상속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한다. 숨겨놓은 재산이나 빚이 있다면 솔직하게 밝히고, 예전에 돈 문제로 고마웠거나 섭섭했던 일도 터놓고 얘기해보면 좋겠다. 상속인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합의한 상속재산분할협의서는 나중에 큰 갈등을 막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돌아가신 분의 의사보다는 상속인들의 의사가 더 중요하다면 너무 지나친 얘기일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혹시 다툼이 생기더라도 차후에 법정에서 날이 선 공방을 주고받는 것보다야 백번 나은 선택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