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현대차 전략 모방하는 中
“It’s a beautiful vehicle(멋진 차네요).”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작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의전 차량을 지켜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시 주석의 의전 차량은 중국 이치자동차 프리미엄 브랜드 훙치의 ‘H9’(사진)을 개조한 대형 세단. 대놓고 중국 견제에 나선 미국 정부의 수장조차 최근 몇 년 새 몰라보게 달라진 중국 럭셔리 세단의 디자인 경쟁력을 인정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 차의 인기는 비단 전기차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 등과 경쟁하는 럭셔리 가솔린 세단에서도 중국 차는 약진하고 있다.

12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훙치 자동차는 지난달 세계에서 4만300대가량 팔렸다. 1년 전보다 83% 늘어난 수치다. ‘대륙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H9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린 덕분이다. H9은 1억원(53만9800위안)짜리 고급 세단인데도 매달 1300대씩 팔리며 중국 차에 입힌 ‘싸구려’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한몫하고 있다.

자동차업계가 인정하는 H9의 경쟁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디자인. 이치자동차는 롤스로이스에서 ‘팬텀’과 ‘컬리넌’ 등을 디자인한 자일스 테일러 부사장을 2018년 영입해 폭포수를 닮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붉은 깃발을 형상화한 고급스러운 엠블럼을 새겼다. 여기에 천연 나파 가죽 시트와 원목 자재 등 최고급 인테리어는 물론 충돌경보 시스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첨단 기능을 다 넣었다. 그런데도 2억원 안팎인 동급 경쟁 차량보다 훨씬 싼 가격이 세 번째 경쟁력이다.

고급차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기는 BYD도 마찬가지다. 방식은 이치자동차와 비슷하다. 고급 브랜드 ‘양왕’의 디자인을 아우디 총괄 디자이너 출신 볼프강 에거에게 맡긴 것이나 고급 차종(2억원대 전기 스포츠카 U9) 개발에 들어간 점에서 그렇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중국 차업체들이 과거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브랜드 고급화에 쓴 전략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며 “독보적인 가격 경쟁력을 지닌 중국 업체가 품질과 디자인 경쟁력까지 갖추면 국내 업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