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너의 강점을 찾아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학교에서 집에 오자마자 아버지 방에 불쑥 들어가 읍내 학교로 전학시켜달라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방 안의 손님들이 더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었다. 뒤따라 들어온 어머니가 끌 듯이 데리고 나왔다. 며칠 지나서야 아버지가 불러 전학 가려는 이유를 물었다. 선생님이 수업 중에 “읍내 학교 애들은 이 정도 문제는 다 푼다. 너희들 실력으로는 읍내 중학교 못 간다”라고 했다며 말씀드렸다.
그날 아버지는 즉답하지 않은 채 석수장이 얘기를 들려줬다. 바로 얼마 전에 교과서에 나와 배운 얘기여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가 그 동화를 알고 있는 게 도리어 신기했다. 동화는 이랬다. 석수장이가 뙤약볕 아래서 정과 망치로 바위를 쪼고 있을 때 저 멀리 화려한 마차 행렬이 지나고 있었다. 임금님 행차였다. 한없이 부러웠던 그는 혼잣말로 “나도 임금이 되어보았으면…”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어디선가 “이제부터 너는 임금이 되어라”라는 큰소리와 함께 석수장이는 임금이 되어 황금빛 깃발이 펄럭이는 대열의 한 가운데에서 마차를 타고 갔다.
무더운 여름날이라 땀이 흘러내렸다. 하늘을 보니 이글거리는 태양이 불타고 있었다. 임금보다 태양이 더 나을 것 같아 “나도 태양이 되었으면…”하고 중얼대자 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금방 작열하는 태양이 되었다. 두루 세상을 구경하고 빛을 비추니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얼마쯤 지나 난데없는 구름이 몰려와 시야를 가려버렸다. 고개를 돌려봐도 보이지 않자 “나도 구름이 되었으면…”하고 말하자 순식간에 이번엔 구름으로 변했다. 거침없이 나다니고 구경하며 비를 마구 뿌려댔다. 심술이 나면 잔칫집에도 초상집에도 비를 퍼부어 댔다. 산을 하나 없애려고 며칠을 두고 밤새도록 비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바위산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바위가 부러웠다. “바위가 되었으면…”하고 말하자 바위가 된 그는 걱정 없이 쉬고 있을 때 석수장이가 정과 망치를 들고 다가와 얼굴을 쪼기 시작했다. 얼굴이 깨져나가자 석수장이가 더 좋아 보였다. “나도 석수장이가 되었으면…”하고 빌었다. 이내 그는 석수장이가 되어 옛날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글이지만, 지금 되뇌어도 의미 깊은 얘기다. 아버지는 “동경은 맹목만 낳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날 전학 얘기는 꺼내지 않고 “너는 재주 많은 아이다. 너도 선생님도 그걸 모른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너의 강점을 찾아라”라고 했다. 이어 “네 9대 할아버지는 한양을 떠나 충주로 왔다. 다시 제천으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동네까지 450여 년을 더 나은 땅을 찾아 이주했다. 이 땅은 너에게 이르기까지 15대 할아버지들이 모두 치열하게 고민해 찾은 자리다. 네가 다니는 그 학교 나와도 읍내 중학교 진학하고 서울로도 유학 갔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가계야치(家鷄野雉)’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했으나 그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있는 닭보다 들에 있는 꿩을 좋아한다’라는 말이다. 가까이 있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멀리 있는 드문 것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중국 동진(東晉)의 정치가 유익(庾翼)은 왕희지(王羲之)와 명성을 같이 할 만한 명필가다. 집안사람들조차 왕희지 필법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자 그가 한 말에서 이 성어는 유래했다. “아이들이 집안의 닭은 하찮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사랑하여 모두 왕희지의 서법만 배우고 있으니 이는 나를 그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출전 태평어람(太平御覽) 진중흥서(晉中興書).
그 뒤 선생님은 읍내 학생들과 비교하는 말을 더는 하지 않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치른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해 진학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아버지가 다시 저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네가 읍내 학교로 전학시켜달라고 했을 때 설득하기가 가장 어려웠다”라고 술회한 아버지는 그때도 얘기해줬다고 했으나 기억나지 않았다. “속담처럼 마당에서는 인물 안 난다. 네 말에 확신을 얻어 서울 진학과 우리집 이주를 결심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누구나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다만 숨어있는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너 자신을 믿으라”고 강조했다. 긍정적인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높으면 목표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장점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것이 자신감을 키우는 첫걸음이다. 자신의 강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도 중요한 성품이다. 손주에게도 꼭 물려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그날 아버지는 즉답하지 않은 채 석수장이 얘기를 들려줬다. 바로 얼마 전에 교과서에 나와 배운 얘기여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가 그 동화를 알고 있는 게 도리어 신기했다. 동화는 이랬다. 석수장이가 뙤약볕 아래서 정과 망치로 바위를 쪼고 있을 때 저 멀리 화려한 마차 행렬이 지나고 있었다. 임금님 행차였다. 한없이 부러웠던 그는 혼잣말로 “나도 임금이 되어보았으면…”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어디선가 “이제부터 너는 임금이 되어라”라는 큰소리와 함께 석수장이는 임금이 되어 황금빛 깃발이 펄럭이는 대열의 한 가운데에서 마차를 타고 갔다.
무더운 여름날이라 땀이 흘러내렸다. 하늘을 보니 이글거리는 태양이 불타고 있었다. 임금보다 태양이 더 나을 것 같아 “나도 태양이 되었으면…”하고 중얼대자 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금방 작열하는 태양이 되었다. 두루 세상을 구경하고 빛을 비추니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얼마쯤 지나 난데없는 구름이 몰려와 시야를 가려버렸다. 고개를 돌려봐도 보이지 않자 “나도 구름이 되었으면…”하고 말하자 순식간에 이번엔 구름으로 변했다. 거침없이 나다니고 구경하며 비를 마구 뿌려댔다. 심술이 나면 잔칫집에도 초상집에도 비를 퍼부어 댔다. 산을 하나 없애려고 며칠을 두고 밤새도록 비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바위산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바위가 부러웠다. “바위가 되었으면…”하고 말하자 바위가 된 그는 걱정 없이 쉬고 있을 때 석수장이가 정과 망치를 들고 다가와 얼굴을 쪼기 시작했다. 얼굴이 깨져나가자 석수장이가 더 좋아 보였다. “나도 석수장이가 되었으면…”하고 빌었다. 이내 그는 석수장이가 되어 옛날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글이지만, 지금 되뇌어도 의미 깊은 얘기다. 아버지는 “동경은 맹목만 낳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날 전학 얘기는 꺼내지 않고 “너는 재주 많은 아이다. 너도 선생님도 그걸 모른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너의 강점을 찾아라”라고 했다. 이어 “네 9대 할아버지는 한양을 떠나 충주로 왔다. 다시 제천으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동네까지 450여 년을 더 나은 땅을 찾아 이주했다. 이 땅은 너에게 이르기까지 15대 할아버지들이 모두 치열하게 고민해 찾은 자리다. 네가 다니는 그 학교 나와도 읍내 중학교 진학하고 서울로도 유학 갔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가계야치(家鷄野雉)’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했으나 그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있는 닭보다 들에 있는 꿩을 좋아한다’라는 말이다. 가까이 있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멀리 있는 드문 것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중국 동진(東晉)의 정치가 유익(庾翼)은 왕희지(王羲之)와 명성을 같이 할 만한 명필가다. 집안사람들조차 왕희지 필법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자 그가 한 말에서 이 성어는 유래했다. “아이들이 집안의 닭은 하찮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사랑하여 모두 왕희지의 서법만 배우고 있으니 이는 나를 그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출전 태평어람(太平御覽) 진중흥서(晉中興書).
그 뒤 선생님은 읍내 학생들과 비교하는 말을 더는 하지 않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치른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해 진학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아버지가 다시 저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네가 읍내 학교로 전학시켜달라고 했을 때 설득하기가 가장 어려웠다”라고 술회한 아버지는 그때도 얘기해줬다고 했으나 기억나지 않았다. “속담처럼 마당에서는 인물 안 난다. 네 말에 확신을 얻어 서울 진학과 우리집 이주를 결심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누구나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다만 숨어있는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너 자신을 믿으라”고 강조했다. 긍정적인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높으면 목표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장점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것이 자신감을 키우는 첫걸음이다. 자신의 강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도 중요한 성품이다. 손주에게도 꼭 물려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