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밤이 사라진 세계에 살고 있다. 네온사인과 LED조명이 밝힌 도시의 밤은 화려하기만 하다. 가로등 불빛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1970~80년대 주택가는 달랐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골목엔 가로등이 불을 밝혔고, 사람들은 그 불빛을 보며 안도감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박경순 '초혼'
박경순 '초혼'
사진가 박경순이 어린 시절 골목길 가로등과 창문의 불빛에서 느꼈던 따뜻한 감정을 담은 작품으로 꾸민 사진전 '초혼(初昏)'이 13일 서울 종로 갤러리 공간미끌에서 개막했다. 2023년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 '공간미끌상' 수상 기념 초대전이다.

전시 제목 초혼은 '해가 지고 처음으로 어두워올 때'를 뜻한다. 작가는 전국의 주택가를 다니며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 드러난 집과 하늘, 불을 밝힌 작은 창문, 숲에 떠오른 달빛 등을 담았다.
박경순 '초혼'
박경순 '초혼'
어둠이 내려오면 사람들은 집으로 향한다. 집 앞 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 그리고 불이 켜진 우리집 창문은 안도와 휴식의 빛이다. 특히 긴 여행 끝에 되돌아 와 맞이하는 동네의 불빛에서 우리는 가족과 이웃의 포근함을 먼저 느낀다. 작가는 유년시절 마을과 불빛에서 경험했던 이런 온기를 현실에서 다시 찾아 '초혼' 연작으로 담아냈다.

아파트와 달리, 주택가 골목은 특별한 조형미를 간직하고 있다. 작가는 소위 '매직 아워(magic hour)'에 불빛과 집과 하늘을 함께 담아, 낮에 체험할 수 없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신비한 색채를 재현했다. 건축물, 가로등, 창문, 하늘이 조화를 이룬 장면들은, 일상적인 풍경 사진에서 벗어나 색면주의 추상화같은 새로운 시각적 체험도 제공한다.
박경순 '초혼'
박경순 '초혼'
박 작가는 "같은 대상이라도 시간이 흐르며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며 "어린 시절 어두워지기 시작한 마을의 불빛에서 느꼈던 그 따뜻함을 다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시인이기도 한 작가의 6번째 개인전이다. 전시는 25일까지.

신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