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순간에 이곳이 생각나겠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런던 디자인 뮤지엄
런던 디자인 뮤지엄
'디자인'이라는 것을 가르치다 보면 당연하게 사용하던 단어들의 원론적인 의미를 찾아볼 때가 많다. 공간, 장소, 구조 등과 같은 단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용어들은 상황이 단어의 사용을 결정하기도 하므로 원론적인 의미가 항상 정확한 사용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 중 가장 어려운 용어는 '디자인'이다.
강의를 처음 시작하던 당시에 수업 자료를 만들다가 갑자기 '디자인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다. 그래서 사전, 책 등의 자료들을 뒤져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잔뜩 찾아보았으나 찾으면 찾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디자인이 뭔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니 아무것도 모르겠던 그 섬뜩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런던의 디자인 뮤지엄을 처음 방문했던 것은 2013년의 겨울이었다. 바우하우스의 (현대 디자인,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친 독일의 예술디자인 학교 (1919~33))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던 백색의 건물 안에서 디자인의 진행 사에 대해 이토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곳이 있다는 것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 때 디자인 뮤지엄은 타워브릿지 근처 지역에 있었는데 규모를 키워서 2016년에 지금의 위치인 런던의 서쪽, 켄싱턴 하이스트리트 (Kensington High St.)에 새롭게 자리 잡았다. 새로운 디자인 뮤지엄은 이전에 영연방 연구소(Commonwealth Institute)였던 건물로, 10년 넘게 사용되지 않던 1960년대 건물을 리노베이션 한 것이다. 여기에 OMA와 Allies & Morrison이 협력하여 뮤지엄 건물의 구조 및 외관을 담당하였고 John Pawson이 내부공간을 담당하였다. 홀랜드 파크 안에 위치한 이 건물은 멀리서부터 두개의 포물선이 교차하는 지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건물의 핵심적인 디자인이었던 이 구리지붕을 유지한 채 건물의 개조가 진행되어 교차하는 곡선이 만들어내는 지붕의 형태가 새로운 뮤지엄의 공간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반면 이 오묘한 지붕 밑에 자리한 내부공간의 구조는 굉장히 단순하다. 지상 3개 층, 지하 2개 층을 갖는 실내공간은 지상 층 중앙의 거대한 보이드를 각 층에서 복도 형으로 둘러싸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1층 중앙에 서서 한 바퀴 돌면 각층의 각 면에 무엇이 있는지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하다. 이곳의 2층에서는 기획전시가, 3층에서는 상설전시가 열리며 이러한 공간 구성으로 인해 2층에 어떤 전시가 열리느냐에 따라 전체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2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위치한 중층으로 연결되는 중앙 계단은 단지 이동만을 위한 계단이 아닌, 사람들이 앉아있을 수 있는 자리를 겸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 곳에 앉아 공간을 조망할 수 있고 반대로 위층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조망당할 수도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한 눈에 보이는 심플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계단을 따라 층을 이동하다보면 시선의 위치에 따라 공간과 전시물이 달라 보이는 경험이 이어져 걸음을 멈출 수 없게 된다. 디자인 뮤지엄의 핵심 전시인 3층의 상설전시는 '디자이너(Designer)-메이커(Maker)-사용자(User)'라는 주제를 가진다. 뮤지엄의 소장품 1천여 점으로 시대에 따른 디자인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 전시는 디자이너, 메이커, 사용자의 파트로 구분되어 디자인을 둘러싼 주요 이해관계자의 입장에서 디자인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 그 역할이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 뿐 아니라 디자인-계획을 실현시켜주는 제작자, 그리고 그것을 일상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사용자 모두이다. 이들이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할 때 디자인도 제 기능을 다하고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상설전시는 방대한 자료들을 활용하여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들에게 디자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잘 기획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입장하자마자 보이던 커다란 입체 패널에서 Designer, Maker, User라는 단어가 계속 번갈아 나타나며 이러한 의도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시를 보기에 앞서 현대적 의미의 디자인 사를 집대성한 그래픽 월을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의 일상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자리 잡아 왔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단순해 보였던 뮤지엄의 공간구성에 비해 전시 관람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학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디자인 뮤지엄은 1989년, 이제는 콘란샵으로 유명한 테렌스 콘란(Terence Conran)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이곳은 "교육, 산업, 상업 및 문화의 각 분야에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설립되었다"라고 뮤지엄 웹사이트에 그 목적이 명시되어 있다. 디자인 진흥을 위한 한 사람의 열정이 꾸준하게 전해져 거대하게 피어난 이곳은 디자인을 대하는 관점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이를 풍성한 자료를 통해 알려주며,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한번 방문하고 마는 곳이 아닌, 옆에 두고 계속 꺼내보고 싶은 잘 쓰여진 책 같은 곳이었다. 그 곳을 빙글빙글 돌고 오르락내리락 이동하면서 언젠가 또 다시 디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순간이 오면 이곳이 생각날 것 같다는 막연한 짐작이 들었다.
강의를 처음 시작하던 당시에 수업 자료를 만들다가 갑자기 '디자인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다. 그래서 사전, 책 등의 자료들을 뒤져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잔뜩 찾아보았으나 찾으면 찾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디자인이 뭔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니 아무것도 모르겠던 그 섬뜩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런던의 디자인 뮤지엄을 처음 방문했던 것은 2013년의 겨울이었다. 바우하우스의 (현대 디자인,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친 독일의 예술디자인 학교 (1919~33))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던 백색의 건물 안에서 디자인의 진행 사에 대해 이토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곳이 있다는 것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 때 디자인 뮤지엄은 타워브릿지 근처 지역에 있었는데 규모를 키워서 2016년에 지금의 위치인 런던의 서쪽, 켄싱턴 하이스트리트 (Kensington High St.)에 새롭게 자리 잡았다. 새로운 디자인 뮤지엄은 이전에 영연방 연구소(Commonwealth Institute)였던 건물로, 10년 넘게 사용되지 않던 1960년대 건물을 리노베이션 한 것이다. 여기에 OMA와 Allies & Morrison이 협력하여 뮤지엄 건물의 구조 및 외관을 담당하였고 John Pawson이 내부공간을 담당하였다. 홀랜드 파크 안에 위치한 이 건물은 멀리서부터 두개의 포물선이 교차하는 지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건물의 핵심적인 디자인이었던 이 구리지붕을 유지한 채 건물의 개조가 진행되어 교차하는 곡선이 만들어내는 지붕의 형태가 새로운 뮤지엄의 공간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반면 이 오묘한 지붕 밑에 자리한 내부공간의 구조는 굉장히 단순하다. 지상 3개 층, 지하 2개 층을 갖는 실내공간은 지상 층 중앙의 거대한 보이드를 각 층에서 복도 형으로 둘러싸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1층 중앙에 서서 한 바퀴 돌면 각층의 각 면에 무엇이 있는지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하다. 이곳의 2층에서는 기획전시가, 3층에서는 상설전시가 열리며 이러한 공간 구성으로 인해 2층에 어떤 전시가 열리느냐에 따라 전체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2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위치한 중층으로 연결되는 중앙 계단은 단지 이동만을 위한 계단이 아닌, 사람들이 앉아있을 수 있는 자리를 겸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 곳에 앉아 공간을 조망할 수 있고 반대로 위층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조망당할 수도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한 눈에 보이는 심플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계단을 따라 층을 이동하다보면 시선의 위치에 따라 공간과 전시물이 달라 보이는 경험이 이어져 걸음을 멈출 수 없게 된다. 디자인 뮤지엄의 핵심 전시인 3층의 상설전시는 '디자이너(Designer)-메이커(Maker)-사용자(User)'라는 주제를 가진다. 뮤지엄의 소장품 1천여 점으로 시대에 따른 디자인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 전시는 디자이너, 메이커, 사용자의 파트로 구분되어 디자인을 둘러싼 주요 이해관계자의 입장에서 디자인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 그 역할이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 뿐 아니라 디자인-계획을 실현시켜주는 제작자, 그리고 그것을 일상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사용자 모두이다. 이들이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할 때 디자인도 제 기능을 다하고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상설전시는 방대한 자료들을 활용하여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들에게 디자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잘 기획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입장하자마자 보이던 커다란 입체 패널에서 Designer, Maker, User라는 단어가 계속 번갈아 나타나며 이러한 의도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시를 보기에 앞서 현대적 의미의 디자인 사를 집대성한 그래픽 월을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의 일상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자리 잡아 왔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단순해 보였던 뮤지엄의 공간구성에 비해 전시 관람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학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디자인 뮤지엄은 1989년, 이제는 콘란샵으로 유명한 테렌스 콘란(Terence Conran)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이곳은 "교육, 산업, 상업 및 문화의 각 분야에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설립되었다"라고 뮤지엄 웹사이트에 그 목적이 명시되어 있다. 디자인 진흥을 위한 한 사람의 열정이 꾸준하게 전해져 거대하게 피어난 이곳은 디자인을 대하는 관점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이를 풍성한 자료를 통해 알려주며,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한번 방문하고 마는 곳이 아닌, 옆에 두고 계속 꺼내보고 싶은 잘 쓰여진 책 같은 곳이었다. 그 곳을 빙글빙글 돌고 오르락내리락 이동하면서 언젠가 또 다시 디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순간이 오면 이곳이 생각날 것 같다는 막연한 짐작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