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엄마를 철들게 하는 딸내미의 집밥
지난해 여름 석사과정을 마친 딸아이의 졸업식이 있었다. 이를 핑계 삼아 결혼한 딸과 저녁을 같이 먹고, 나는 곧바로 공연장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어떤 음식을 먹을까, 어디로 갈까 정해야 하는데 딸아이는 굳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시간과 거리를 생각하면 번거로운 일이었다. 또 실제로는 친정엄마인 내가 음식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귀찮다는 생각도 약간 들었다. 그래서 식당으로 가자고 우겼지만 결국 딸네 집으로 가게 됐다.

정작 이날의 주인공이라 더 힘들었을 딸은 식탁에 하나둘 음식을 차렸다. 그 밥상은 꽤 익숙해 보였다. 내가 늘 딸에게 차려주던 그대로였다. 어묵볶음과 뚝배기에 끓인 된장찌개, 달걀찜, 묵은지볶음 등등…. “맛있는 거 사주려고 했는데 뭐 하러 힘들게 차렸냐”고 하니 딸아이는 “엄마 집밥 드시게 하려고 그랬지…”라고 답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매일 출근하느라 집에서 밥을 해 먹은 지가 언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외식으로 일관하는 나에게 손수 지은 밥으로 상을 차려 주려는 딸아이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민망했다. 내 음식솜씨가 친정엄마와 닮았듯, 딸아이가 만든 반찬 역시 나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새 신부라 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반찬을 참 잘 만들었다. 딸아이의 결혼식 때도 사위에게 “혼자서도 구첩반상을 차려 먹는 부인과 결혼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해 식장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집밥. 생각해 보니 친정엄마도 늘 집에서 밥 먹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다. 집에서 먹는 밥이 보약이라던 엄마의 말을, 딸아이가 차려준 집밥을 통해 다시 돌려받고 있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이래서 딸이 있어야 한다고들 하나 보다.

딸은 나와 같은 전공(국악 작곡)을 해서 서로 잘 통할 것 같은데, 음악 해석이나 공연에 대한 접근 등 의견이 다르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세대 차이 때문에 수시로 부딪히기도 한다. 게다가 매사 분명하고 정확한 걸 지향하는 딸이기에 정신없이 사는 나와 다투기도 했고, 무뚝뚝한 내 성격 때문에 딸은 소소하게 삐치기도 했다. 그러나 사소한 다툼 끝에 먼저 풀자고 손 내미는 쪽은 늘 딸이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입으로 못 내는 바보 같은 엄마를 속 깊게 챙기고 있었다는 걸 딸이 차려준 집밥을 통해 깨달았다.

그런 딸아이의 섬세함이 이제 나이를 먹어가는 나의 보호자가 돼주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해진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며 어쩔 수 없이 노인이 되고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이 돼간다. 이 사실이 슬프긴 하다. 어쩌면 자연의 순리이긴 하겠지만, 난 딸 같은 엄마가 아니라 엄마 같은 엄마로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