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밀린 것과 독일에 밀린 것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가라카마 다이스케 일본 미즈호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15일 “같은 ‘기술 입국’으로서 오랜 라이벌인 독일에 55년 만에 역전을 허용한 것은 엔저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의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독일에 뒤지며 세계 4위로 떨어진 데 따른 지적이다.

○기업 활동 정체한 일본

기업 빠져나간 日 '30년 정체'…'지는 해' 獨에 뒤처진 건 시작일 뿐
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패전국이 된 일본과 독일은 전후 기적적인 부흥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일본은 1968년 국민총생산(GNP) 기준으로 당시 서독을 넘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섰다. 독일은 1990년 통일, 1999년 유로화 도입을 거쳐 유럽연합(EU) 맹주로 자리 잡았다.

GDP는 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나타낸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경제 격차가 좁혀지면 GDP 순위는 사실상 인구에 비례하게 된다. 인구 1억2500만 명의 일본이 14억 명 넘는 중국에 추월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일본 인구의 3분의 2 수준인 독일에 역전당한 것은 큰 문제라는 게 현지 분석이다.

독일의 성장이 아니라 일본의 정체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나카하마 도시히로 일본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 과거 엔고, 디플레이션으로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경제 성장의 원천인 기업 활동이 정체됐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6년 일본이 인도에도 뒤져 세계 5위로 밀려날 것으로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2050년 일본의 GDP 순위가 6위, 2075년에는 12위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두 분기 연속 역성장

일본이 두 분기 연속 역성장한 것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실질 GDP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0.1%로 3분기(-0.8%)에 이어 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GDP의 과반을 차지하는 개인소비가 전분기 대비 0.2% 감소한 영향이 컸다. 개인소비 다음으로 중요한 설비투자도 전분기보다 0.1% 줄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엔화는 다시 고꾸라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3개월 만에 다시 달러당 150엔을 넘었다. 미·일 금리차가 당분간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엔화 매도가 늘어난 영향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일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전환은 ‘아직’이라는 분위기가 강해지는 모습이다.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자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해오던 일본 중앙은행이 돈줄을 죄려면 물가가 지속해서 올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실질임금이 상승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의 실질임금은 하락 국면이다. 전문가들은 봄철 임금 협상인 ‘춘투’ 결과에 따라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 전환을 예상하고 있다.

○일본 전철 밟지 말아야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나려는 일본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은 것은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률 역전에 대해 “반도체 불황 같은 일회성이 아닌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최근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저성장기에 들어갔다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올해는 한국이 다시 일본에 앞설 것으로 예상됐다. IMF는 지난달 내놓은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실질 GDP 증가율을 2.3%, 일본은 0.9%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이날 보고서에서 저출산·고령화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40년 0.7%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일규 기자/도쿄=정영효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