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산하 발전자회사들이 연초부터 잇따라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전력이 발전자회사 6곳에 긴급하게 요구한 3조원 규모의 중간배당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전기요금 현실화 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전 계열사들이 동반부실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시장에선 한전 계열의 우량채가 일반 회사채를 구축하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배당 줄 현금 없다"…빚내서 '한전 빚' 갚는 발전자회사

◆적자 낸 한수원도 배당금 위해 발행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전의 6개 발전자회사가 올 들어 지난 14일까지 발행한 회사채는 총 47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발행한 회사채(2100억원)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한 대형증권사의 채권발행시장(DCM)부서 관계자는 “공기업은 통상 시장 상황을 지켜보다 2~3월부터 채권을 발행하기 시작한다”며 “연초 한전 자회사들의 채권 발행은 이례적으로 빠르다”고 전했다.

발전 자회사들이 연초부터 채권 발행에 나서는 건 한전에 지급해야 할 중간배당금 때문이다. 지난해 말 한전은 올해 한전채 발행한도(자본금+적립금 합계의 5배 이하)가 축소될 것을 우려해 발전자회사 6곳으로부터 3조400억원의 중간배당을 받아 회계장부에 반영했다.

한전은 이런 중간배당을 통해 올해 한전채 발행 한도를 75조원에 95조원으로 약 20조원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말 기준 한전채 발행잔액은 79조6109억원이다. 자회사 중간배당을 통해 15조원가량 채권을 추가 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발전자회사들이다. 연내 한전에 중간배당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재무상황이 여의치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3분기까지 16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 회사는 올해 중간배당금 지급을 위해 1조5600억원의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한수원은 다음달 회사채를 발행해 배당금 일부를 조달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선 한전채 구축효과 노심초사

업계에선 한전 계열사들이 동반부실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지적한다. 발전 자회사들은 모회사인 한전과 달리 사채 발행 한도 규정이 없다. 2022년 말 기준 중부발전·서부발전·남부발전은 사채 잔액이 ‘자본금+적립금’의 2~3배에 달했다. 통상 공기업이 ‘자본금+적립금’ 두 배를 사채발행 한도로 정한다.

금융시장에선 한전채발 구축효과를 걱정한다. 기관들이 새해 자금을 푸는 ‘연초 효과’가 마무리되면 회사채 투자수요가 우량채인 ‘AAA’급 발전 자회사에 쏠릴 수 있어서다. 국내 중소연기금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한전채 발행 작업이 다시 시작되면 회사채 시장 경색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한전은 지난해 9월 이후 채권을 발행하지 않고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한전은 이런 우려 등을 고려해 올해 자회사에 정기배당이나 추가 중간배당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은 오는 23일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시장은 한전이 작년 4분기 57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구책이나 전기요금 현실화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으면 경영상황이 다시 악화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슬기/장현주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