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과 혼란만 있는 유럽 넷제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비롯해 서방 정치인들이 ‘넷제로’(탄소중립)의 고통을 겪고 있다. 기후정책이 갈수록 더 비싸지고 일관성이 떨어지면서 국민들이 많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독일 싱크탱크인 Ifo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같은 비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지난해 9월 독일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55%가 ‘글로벌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독일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응답은 훨씬 적었다. ‘넷제로 달성’을 위한 조치에 대해 응답자의 16%만 가정에 비용을 직접 부과하는 가정 난방용 천연가스 금지 등을 지지했다.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인 ‘명시적 탄소세’를 지지한 응답자는 8%에 그쳤다.

인지부조화에 빠진 유럽

독일인이 여론조사에서 가장 선호한 조치는 ‘기후 친화적 조치를 위한 목표 보조금’이다. 하지만 작년 11월 헌법재판소 판결로 기후 관련 보조금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 차입금 사용이 허용되지 않기 전 나온 조사 결과다. 기후 보조금이 ‘공짜 돈’처럼 보일 때 답했다는 얘기다.

이제 기후 보조금은 세금 인상이나 정부 지출 삭감을 상쇄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따라 숄츠 정부는 위기에 빠졌다. 베를린이 탄소세와 비슷한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자 대규모 농민 시위가 일어났고, 정부는 이를 철회했다.

독일뿐 아니라 다른 국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유럽 주요국 설문조사에서도 국가별 응답자 3분의 2 이상이 기후 변화를 우려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비용을 낼 의향은 전혀 없다. 나무 심기, 주택 단열 보조금 지원 등은 찬성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 금지, 육류 및 유제품 소비 제한, 유류세 인상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수년간 정치인들이 넷제로에 대한 인식보다 불협화음에만 기대 왔다는 점이다. 정계와 학계 모두 기후 변화에 대해 종말론적 수사를 앞세워 유권자에게 기후 변화는 ‘실존적 위험’이라고 설득해 왔다. 이제는 유권자들이 탄소중립을 위해 개인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탄소중립 진정성 기대하려면

이들은 스스로 비용을 부담할 수 없거나 부담하지 않으면서도 넷제로를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넷제로를 위해 다른 사람의 돈을 더욱 창의적으로 지출할 것을 정치인들에게 요구한다. 적당히 합리적인 정치인조차 ‘기후 프로젝트 포기’를 명백하게 인정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전기차 의무화나 농업용 차량 세금처럼 비용이 많이 들면서 가장 인기 없는 기후 대책을 철회하려면 항상 다른 누군가의 비용으로 기후를 위해 또 다른 일을 지속하겠다는 약속도 수반해야 한다.

또한 유권자들은 기후 변화에 지불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비용을 점점 더 명확하게 인식한다. 이들이 더 이상 비용에 신경 쓰지 않을 때까지 넷제로의 진정성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 ‘Net Zero Becomes All Dissonance and No Cognition’을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