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농장이 '지식의 보고'로…싱가포르가 공공도서관 건설에 진심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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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시는 문화전쟁 중]②도시운명 바꾼 문화예술의 힘
싱가포르 공공도서관 혁신 계획 'LAB 25'
2025년까지 '전 국민 도서관 생활권' 목표
도시 중심부 도서관 시설 개선부터
풍골지역도서관 등 외곽 지역도서관 확충까지
코로나 전보다 도서관 이용률 증가하고
'교육과 커뮤니티' 거점으로 자리매김
싱가포르 공공도서관 혁신 계획 'LAB 25'
2025년까지 '전 국민 도서관 생활권' 목표
도시 중심부 도서관 시설 개선부터
풍골지역도서관 등 외곽 지역도서관 확충까지
코로나 전보다 도서관 이용률 증가하고
'교육과 커뮤니티' 거점으로 자리매김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돼지농장이었죠. 최근 들어선 싱가포르 최대 규모의 공공도서관 덕에, 요즘은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책을 들고 찾는 손님으로 북적입니다.”
싱가포르 북동부 풍골에서 나고 자란 크자이아 청(58) 씨는 자기 고향을 두고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해 4월 개관한 풍골지역도서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그는 “예전엔 농가를 관리하는 어른들이 마을의 대다수였다면, 최근에는 가족 단위 손님부터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말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1차 산업이 주력이었던 풍골은 최근 신도시 프로젝트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인근 스포츠 스타디움과 공공주택 등이 아직 뼈대만 갖춘 상태인데도, 신도시 중심부에 지상 5층 규모의 대규모 도서관이 먼저 들어섰다. 기자를 안내하던 싱가포르 국립도서관위원회(NLB) 관계자한테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국력은 곧 지력(知力)에서 나오지 않나. 정부 차원에서 ‘지식의 보고(寶庫)’인 도서관의 우선순위를 높게 책정한 결과다.” 싱가포르가 공공도서관 확충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NLB는 2021년 ‘LAB 25’라는 5년 계획을 마련하며 도서관 신설과 전반적인 시설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누구나 5분 거리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2025년까지 싱가포르 중심부 20여곳과 동서남북 외곽 거점에 지역도서관을 1개소씩 설치·운영한다는 구상이다.
풍골지역 도서관은 이러한 ‘전 국민 도서관 생활권’ 계획의 마지막 퍼즐이다. 주롱, 템피니스, 우드랜드 등 기존 지역거점 도서관 세 곳에 이어 북동부의 시민 수요를 흡수하면서다. 역대 싱가포르 공공도서관 중 최대 크기인 1만2180㎡ 규모로 조성됐다. 지역거점 도서관은 면적 규모가 1만㎡ 이상의 대규모 도서관들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7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된다. 신축뿐 아니다. 기존에 운영하던 도서관 시설도 업그레이드했다. NLB는 최근 3년 사이 센트럴공공도서관, 초아추캉공공도서관 등에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했다. 스마트폰 모바일앱을 가동한 것은 물론, 지하철역과 쇼핑몰에 키오스크를 배치해 이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소장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했다.
싱가포르 국민들의 도서관 이용률도 높아지는 추세다. NLB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싱가포르 거주자 78%가 NLB 관할 도서관을 방문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61.7%)뿐 아니라, 팬데믹 발생 이전인 2019년(72%)보다도 늘어난 수치다. 2021년 진행된 설문 조사에서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평한 응답자 비중도 70% 이상을 차지했다. 해마다 독서 인구가 감소하고, 도서관 이용자가 줄어드는 세계적인 추세를 놓고 보면 이례적이란 평가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율은 2011년 66.8%에서 10년 사이 40.7%로 줄었다. 성인의 도서관 이용률도 100명 중 16명 수준에 불과했다. 해외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은 2019년 기준 국민 1인당 3.9회 도서관을 찾았다. 10년 전(1인당 5.3회)의 70% 수준이다. 영국에선 2010년 이후 도서관 78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싱가포르 시민들이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도록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싱가포르 공공도서관에서 만난 시민들은 “도서관을 단순히 도서 대출의 창구가 아닌, ‘교육과 커뮤니티의 허브’로 여긴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1월 새 단장을 마치고 재개관한 센트럴공공도서관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마련한 생성형 인공지능(AI) 교육시설은 주말이면 긴 대기 줄로 북적였다. 해양 생태 다양성을 테마로 한 전시 공간도 신설했다. 풍골지역도서관은 3D프린팅, 로봇 공학 등 기술 체험 공간뿐 아니라 스타트업 창업 지원 센터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아동 독서 장려 정책도 주목할 만하다. 도서관을 이용하며 적립된 포인트로 벌레 캐릭터가 그려진 수집용 카드를 교환할 수 있는 ‘책벌레(Book Bugs)’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월 10싱가포르달러(약 1만원) 구독료로 8권의 어린이 도서를 집으로 배달하는 ‘더 리틀 북 박스’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30만권이 넘는 장서가 전달됐다.
공공도서관과 국민독서에 관한 정책적 노력이 국민의 전반적인 지력 향상으로도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2월 발표된 ‘202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조사에서 싱가포르가 읽기·수학·과학 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만 15세 이상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3년마다 평가하는 척도다. 한국은 같은 기간 부문별로 2~12위를 기록했다.
싱가포르=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싱가포르 북동부 풍골에서 나고 자란 크자이아 청(58) 씨는 자기 고향을 두고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해 4월 개관한 풍골지역도서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그는 “예전엔 농가를 관리하는 어른들이 마을의 대다수였다면, 최근에는 가족 단위 손님부터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말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1차 산업이 주력이었던 풍골은 최근 신도시 프로젝트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인근 스포츠 스타디움과 공공주택 등이 아직 뼈대만 갖춘 상태인데도, 신도시 중심부에 지상 5층 규모의 대규모 도서관이 먼저 들어섰다. 기자를 안내하던 싱가포르 국립도서관위원회(NLB) 관계자한테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국력은 곧 지력(知力)에서 나오지 않나. 정부 차원에서 ‘지식의 보고(寶庫)’인 도서관의 우선순위를 높게 책정한 결과다.” 싱가포르가 공공도서관 확충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NLB는 2021년 ‘LAB 25’라는 5년 계획을 마련하며 도서관 신설과 전반적인 시설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누구나 5분 거리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2025년까지 싱가포르 중심부 20여곳과 동서남북 외곽 거점에 지역도서관을 1개소씩 설치·운영한다는 구상이다.
풍골지역 도서관은 이러한 ‘전 국민 도서관 생활권’ 계획의 마지막 퍼즐이다. 주롱, 템피니스, 우드랜드 등 기존 지역거점 도서관 세 곳에 이어 북동부의 시민 수요를 흡수하면서다. 역대 싱가포르 공공도서관 중 최대 크기인 1만2180㎡ 규모로 조성됐다. 지역거점 도서관은 면적 규모가 1만㎡ 이상의 대규모 도서관들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7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된다. 신축뿐 아니다. 기존에 운영하던 도서관 시설도 업그레이드했다. NLB는 최근 3년 사이 센트럴공공도서관, 초아추캉공공도서관 등에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했다. 스마트폰 모바일앱을 가동한 것은 물론, 지하철역과 쇼핑몰에 키오스크를 배치해 이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소장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했다.
싱가포르 국민들의 도서관 이용률도 높아지는 추세다. NLB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싱가포르 거주자 78%가 NLB 관할 도서관을 방문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61.7%)뿐 아니라, 팬데믹 발생 이전인 2019년(72%)보다도 늘어난 수치다. 2021년 진행된 설문 조사에서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평한 응답자 비중도 70% 이상을 차지했다. 해마다 독서 인구가 감소하고, 도서관 이용자가 줄어드는 세계적인 추세를 놓고 보면 이례적이란 평가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율은 2011년 66.8%에서 10년 사이 40.7%로 줄었다. 성인의 도서관 이용률도 100명 중 16명 수준에 불과했다. 해외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은 2019년 기준 국민 1인당 3.9회 도서관을 찾았다. 10년 전(1인당 5.3회)의 70% 수준이다. 영국에선 2010년 이후 도서관 78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싱가포르 시민들이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도록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싱가포르 공공도서관에서 만난 시민들은 “도서관을 단순히 도서 대출의 창구가 아닌, ‘교육과 커뮤니티의 허브’로 여긴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1월 새 단장을 마치고 재개관한 센트럴공공도서관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마련한 생성형 인공지능(AI) 교육시설은 주말이면 긴 대기 줄로 북적였다. 해양 생태 다양성을 테마로 한 전시 공간도 신설했다. 풍골지역도서관은 3D프린팅, 로봇 공학 등 기술 체험 공간뿐 아니라 스타트업 창업 지원 센터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아동 독서 장려 정책도 주목할 만하다. 도서관을 이용하며 적립된 포인트로 벌레 캐릭터가 그려진 수집용 카드를 교환할 수 있는 ‘책벌레(Book Bugs)’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월 10싱가포르달러(약 1만원) 구독료로 8권의 어린이 도서를 집으로 배달하는 ‘더 리틀 북 박스’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30만권이 넘는 장서가 전달됐다.
공공도서관과 국민독서에 관한 정책적 노력이 국민의 전반적인 지력 향상으로도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2월 발표된 ‘202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조사에서 싱가포르가 읽기·수학·과학 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만 15세 이상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3년마다 평가하는 척도다. 한국은 같은 기간 부문별로 2~12위를 기록했다.
싱가포르=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