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문화 예술로 먹고사는 도시’가 있다. 누구나 런던을 떠올리겠지만 아니다. 런던 도심에서 차로 5시간 30분, 비행기로는 1시간 15분을 꼬박 들여야만 만날 수 있는 영국 북동부의 작은 도시 ‘게이츠헤드’다.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은 이들 사이에선 이미 ‘유럽에서 꼭 가봐야 할 도시’로 소문났다. 유명 클래식 공연부터 회화, 조각, 독특한 건축물까지 1년 내내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예술의 메카’라서다. 인구가 20만명이 채 안 되는 이 작은 도시를 방문하는 연간 관광객은 670만 명(2022년 기준)에 달한다. 영국은 물론 아일랜드, 덴마크 사람들까지 유럽 전역의 사람들이 몰려들며 이로 인한 경제 효과는 6억6500만파운드(약 1조1150억원)로 추산된다.

게이츠헤드에는 반전의 스토리가 있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이곳은 영국의 산업을 먹여살리던 ‘탄광촌’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석탄·철강·조선 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다. 1970년대 이후 빠르게 진행된 탈공업화로 존립의 위기를 맞았고, 당시 실업률은 15%를 웃돌았다. 산업의 뿌리였던 도시가 ‘영국의 골칫거리’가 되자 주민들은 하나둘 떠났다. 교통·의료·교육 등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해 그야말로 유령도시가 됐다.

이 도시를 문화 예술의 도시로 바꾼 시작은 하나의 조각상이었다. 1998년 80만파운드(약 13억4000만원)를 들여 세계적인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북방의 천사’를 도심 한복판에 들여놨다. 지금도 공공미술 작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천사 조각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며 게이츠헤드는 활기를 찾았다. 이 거대한 조각상 하나를 보기 위해 영국과 유럽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며 게이츠헤드는 문화예술 중심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젠 스페인의 ‘빌바오’ 못지않은 경제 효과를 자랑하는 도시로 꼽히지만, 게이츠헤드의 문화 예술 투자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현장에서 이 도시의 미래를 직접 확인했다.

영국 북동부의 작은 도시 게이츠헤드의 전경. (왼쪽부터)발틱 현대미술관, 더 글라스 하우스, 밀레니엄 브리지 등 문화 예술 시설이 다수 조성돼있다. 게이츠헤드=김수현 기자
영국 북동부의 작은 도시 게이츠헤드의 전경. (왼쪽부터)발틱 현대미술관, 더 글라스 하우스, 밀레니엄 브리지 등 문화 예술 시설이 다수 조성돼있다. 게이츠헤드=김수현 기자
“여긴 제가 영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예요. 수업을 빨리 마치거나 주말에 일이 없을 때면 수시로 차를 끌고 와 시간을 보내죠. 하루만 지내보시면 제가 이러는 이유를 단번에 이해하게 될걸요.”

영국 맨체스터에서 2년째 유학 중이라는 쿠웨이트인 루이(24) 씨는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마음 가는 대로 다 즐길 수 있으니 굳이 계획이란 걸 짤 필요도 없는 장소”라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 뉴욕과 함께 ‘세계 공연 문화의 중심지’로 꼽히는 영국 런던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런던 도심에서 차로 5시간 30분, 비행기로는 1시간 15분을 꼬박 들여야만 그 실체를 볼 수 있는 영국 북동부의 작은 도시 ‘게이츠헤드(Gateshead)’ 얘기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도시지만, 문화에 조예가 깊은 이들 사이에선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유명 클래식 공연부터 회화, 조각, 독특한 건축물까지 모두 누릴 수 있는 ‘예술의 메카’라서다.

실제로 지난 4일 찾은 영국 게이츠헤드는 고속도로 초입부터 범상치 않은 경관으로 시선을 빼앗았다. 광활한 언덕 위에서 제트기도 족히 품을 듯한 거대한 양 날개를 펼친 채 관람자를 향해 약간 기울어져 있는 20m 높이의 철제 천사상은 보는 순간 말을 잃을 만큼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안토니 곰리의 대표작 ‘북방의 천사’였다. 도심으로 들어갔을 땐 이미 상당한 인파가 길목 곳곳을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1999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음악당 ‘더 글라스 하우스’와 테이트 모던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현대미술관인 ‘발틱 현대미술관’을 연신 오가며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영국 북동부 도시 게이츠헤드에 설치돼있는 안토니 곰리의 대표작 ‘북방의 천사’. 게이츠헤드=김수현 기자
영국 북동부 도시 게이츠헤드에 설치돼있는 안토니 곰리의 대표작 ‘북방의 천사’. 게이츠헤드=김수현 기자
지금이야 영국 각지는 물론 아일랜드, 덴마크 등 해외에서도 즐겨 찾는 관광 명소가 됐지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게이츠헤드는 오랜 기간 석탄·철강·조선 산업에 의지해온 영국의 대표적인 ‘탄광촌’이었다. 그랬던 게이츠헤드가 ‘문화 예술의 도시’로 탈바꿈한 건 존립의 위기를 맞으면서다. 1970~1980년대 지역경제의 주축이던 중공업 전체가 무너지면서 게이츠헤드의 실업률은 15%를 웃돌았고, 이로 인해 주민들이 도시를 하나둘 떠나면서 도시는 쇠락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때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마중물로 고안된 것이 바로 ‘랜드마크’를 건설하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1998년 안토니 곰리에 의해 제작된 너비 54m, 무게 200톤의 철제 조각상인 ‘북방의 천사’다. 당시엔 교통·의료·교육 등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각상 제작에 80만파운드(약 13억4000만원)를 쏟아붓는다는 이유로 시민들의 비난이 빗발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는 조각상 제작을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공미술 작품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영국 북동부의 작은 도시 게이츠헤드의 전경. 발틱 현대미술관, 밀레니엄 브리지 등 문화 예술 시설이 다수 조성돼있다. 게이츠헤드=김수현 기자
영국 북동부의 작은 도시 게이츠헤드의 전경. 발틱 현대미술관, 밀레니엄 브리지 등 문화 예술 시설이 다수 조성돼있다. 게이츠헤드=김수현 기자
매일 9만 명·매년 3300만 명이 관람하는 이 조각상은 오늘날 게이츠헤드를 먹여 살리는 효자로 통한다. 브라이언 휴잇슨 게이츠헤드 시의회 매니저는 “큰 비용 부담에도 문화 예술 투자를 고집한 건 그것이 우리의 도시를 특별하게 만들고, 우리 경제를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라며 “‘북방의 천사’는 단순히 관광객을 늘리는 것을 넘어 향후 이어지는 3개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자금을 유치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단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북방의 천사’의 성공은 게이츠헤드가 본격적으로 문화 예술 산업 중심으로 체질 전환에 나서는 토대가 됐다. 2001년 타인강 위에 세계 최초의 기울어지는 인도교 ‘밀레니엄 브리지’를 세웠고, 이듬해엔 버려진 밀가루 공장을 개조한 ‘발틱 현대미술관’을 열었다. 발틱 제분공장 등의 간판이 그대로 달려있는 이 미술관은 나라 요시토모, 마크 월린저, 마이클 라코비츠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게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개관 후 지금까지 발틱 현대미술관을 찾은 방문객만 800만 명이 넘는다.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음악당 ‘더 글라스 하우스’. 영국 북동부의 작은 도시 게이츠헤드에 자리하고 있다. 게이츠헤드=김수현 기자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음악당 ‘더 글라스 하우스’. 영국 북동부의 작은 도시 게이츠헤드에 자리하고 있다. 게이츠헤드=김수현 기자
2004년엔 노먼 포스트와 손잡고 1600여석 규모의 대공연장 등을 갖춘 음악당 ‘더 글라스 하우스’를 대대적으로 오픈했다. 방치된 공업 용지를 활용해 만든 이 음악당은 지휘자 로린 마젤, 팝스타 스팅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극찬하면서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건물을 짓는 데 7000만파운드(약 1200억원)가 들어간 이 음악당이 지난 20년간 창출한 경제적 가치는 총 5억파운드(약 8400억원)로 추정된다. 초기 건설 비용의 7배가 넘는 금액을 벌어들인 셈이다. 향후 더 글라스 하우스의 경제적 부가 가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은 농후하다. 2022년부터 3년째 국제적 권위의 음악 축제 BBC 프롬스에 참여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어서다.

프레이저 앤더슨 더 글라스 하우스 전무 이사는 “BBC 프롬스 같은 큰 음악 축제가 런던 이외 지역에서 열린 건 더 글라스 하우스가 최초 사례”라며 “우리는 일회성 협력이 아닌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있다. 이건 분명 우리의 관객층 저변을 확대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게이츠헤드 시의회는 지난해 초 영국 정부의 레벨링 업 펀드(Levelling Up Fund)로부터 2000만파운드(약 340억원)의 자금을 확보해 1만2500석 규모의 세이지 아레나와 국제 콘퍼런스 센터(ICC) 건립을 추진 중이다. 게이츠헤드 시의회 제공
게이츠헤드 시의회는 지난해 초 영국 정부의 레벨링 업 펀드(Levelling Up Fund)로부터 2000만파운드(약 340억원)의 자금을 확보해 1만2500석 규모의 세이지 아레나와 국제 콘퍼런스 센터(ICC) 건립을 추진 중이다. 게이츠헤드 시의회 제공
이제 게이츠헤드는 누가 뭐라 해도 ‘문화 예술로 먹고사는 도시’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인구가 20만명이 채 안 되는 이 작은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연간 670만 명(2022년 기준)을 훌쩍 넘어섰다. 이로 인한 경제 효과는 무려 6억6500만파운드(약 1조1150억원)로 추산된다. 신규 개발 호재는 향후 게이츠헤드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더욱 촉진할 전망이다. 게이츠헤드 시의회는 지난해 초 영국 정부의 레벨링 업 펀드(Levelling Up Fund)로부터 2000만파운드(약 340억원)의 자금을 확보해 1만2500석 규모의 세이지 아레나와 국제 콘퍼런스 센터(ICC) 건립을 추진 중이다. 세이지 아레나는 2025년, ICC는 2027년 완공 예정이다.

마틴 개넌 게이츠헤드 시의회 의장은 “세이지 아레나, ICC 신설은 게이츠헤드를 영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변화시킬 것이다. 향후 많은 국제적 행사, 주요 콘퍼런스 등을 우리 지역에 유치하는 작업에도 집중할 계획”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로 100만 명 이상의 추가 방문객과 2000개의 일자리 창출, 연간 9900만파운드 이상의 직접 투자 등의 효과를 볼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이츠헤드=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