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준 해시드 대표, GIST 졸업식 축사…"좋은 우연의 표면적을 넓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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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는 김서준 해시드 대표가 지난 16일 광주과학기술원(GIST) 2023학년도 학위 수여식 축사에 나섰다고 19일 밝혔다. 그는 졸업생 격려사를 통해 '좋은 우연과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좋은 우연을 만드는 자신만의 방법에 대해 "첫 번째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불편한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주류를 따라 예측 가능한 도전을 하는 것은 안정감을 주지만 반대로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못하면 절대 경험의 폭과 깊이를 키울 수 없다"고 밝히며 과감한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두 번째는 기존의 규칙을 뒤집는 나만의 관점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에 원래부터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나아가 현재 일하고 있는 블록체인, 웹3 산업에 빠른 시기에 입문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라며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서준 대표는 전통적 국가관과 국경이 빠른 속도로 흐려지고 있는 만큼, 네트워크 국가의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네트워크 국가의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것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며 "활동과 영향력의 표면적이 넓어진 만큼, 더욱 많은 기회를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김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학사를 수료한 과학기술인으로, 블록체인이 차세대 산업 혁신을 이끌 핵심 기술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해시드'를 창업했다. 해시드는 서울, 싱가폴, 뱅갈루루,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글로벌 블록체인·웹3 전문 투자사다.
다음은 김서준 대표 축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광주과학기술원(GIST) 졸업생 여러분, 이공계 대학의 최고 명문 중 하나인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을 축하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졸업식 축사 제안을 받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이공계 대학에서 공부했지만 아직 졸업을 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제가 이룬 성취나 지위에 비해 과한 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다른 훌륭한 축사 연설자분들보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나이차나 경험차가 크게 나지 않는 선배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졸업생 분들에게 더 와닿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좋은 우연을 많이 만드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연은 중요합니다. 모든 것은 우연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처럼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어린 시절의 우연한 사건 덕분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이공계와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오셨는데, 저의 경우에는 6살이 되었을 때 이모부의 선물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느날 이모부는 저에게 문방구로 데려가며 자동차를 사주겠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때까지 전동으로 움직이는 기계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그저 바퀴가 달린 자동차 장난감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모부의 선물은 전동 모터가 들어간 미니카였고 당시의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스위치를 켜자 굉음을 내며 앞으로 달려가는 작은 기계를 보며 저는 과학기술의 마법과 같은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비슷한 어떤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과학기술을 공부하게 만든 우연, 그리고 광주과학기술원에 입학하게 만든 우연, 전공을 선택하게 만든 우연,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그 밖의 중요한 선택을 하게 만든 어떤 우연들을 떠올려봅시다.
우리는 살다 보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몇 번의 우연한 기회를 마주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우연이 좋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요. 우연에는 좋은 우연과 나쁜 우연이 있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 컴퓨터 공학과 산업 공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목적함수를 통한 최적화 프로그래밍에 비유해서 고민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인생을 값지게 사는 목적함수에 대해 묻는다면, 그건 바로 '좋은 우연의 표면적을 넓히세요'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좋은 우연의 표면적을 넓힐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을 항상 마음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안전지대(comfort zone)를 벗어나 불편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주류를 따라, 예측 가능한 도전을 하는 것은 안정감을 줍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명확하게 평균 이상의 성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못하면 절대로 경험의 폭과 깊이를 키울 수 없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방식만을 따르면 커리어를 만들때도 어디선가 많이 본 이력서를 만들 수 밖에 없으며, 투자에 있어서도 좋은 결과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저는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제 주위의 친구들과는 다른 몇 번의 불편한 선택을 했습니다. 우선 닷컴 버블이 붕괴된 2002년에 인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당시, 저는 우연히 읽었던 빌게이츠의 저서 “생각의 속도”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인터넷 혁명을 통해 “생각의 속도로 움직이는 비즈니스”를 컴퓨터 한 대로 창업하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남들이 IT산업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무관하게 제 흥미를 끌었고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만들었습니다.
2008년에는 첫 창업을 했는데, 당시에는 창업하면 망한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창업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대학교 3학년때 진로 탐색을 위해 휴학을 하고 서울에서 두 번의 인턴십을 하며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는 현재 오라클에 인수된 썬마이크로시스템즈라는 글로벌 IT 기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선배이자 퓨처플레이의 창업자인 류중희 대표님이 창업하신 올라웍스라는 스타트업이었습니다. 물론 두 곳 다 훌륭한 회사였지만 대기업과 스타트업이라는 큰 지향점의 차이가 있었고, 저에게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후자의 방식이 더욱 가슴뛰게 다가왔습니다. 휴학을 하고 전혀 다른 두 개의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같이 수업을 듣던 동기들에게 1년간 뒤쳐지는 불편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떤 대학 수업보다 더 많은 자극과 교훈을 얻었던 시간이었고, 많은 멘토들을 만났습니다.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고,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고, 나와는 다른 배경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피곤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동안 살아오며 용감한 선택을 한 개척자에게는 몇배가 아닌, 몇십배 이상의 불공평한 수준의 보상이 돌아온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편안한 안전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경각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존의 규칙을 뒤집는 나만의 관점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회적으로 정해져 있는 규칙들에 대해 종종 근본적인 의문을 가졌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반골기질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에 원래부터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제가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나아가 현재 일하고 있는 블록체인과 웹3 산업에 빠른 시기에 입문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제가 2012년에 공동창업했던 노리(Knowre)라는 회사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학생들에게 맞춤형 수학 컨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지식수준이 다른 학생들에게 똑같은 종이책 문제집을 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사업이었습니다. 그 때가 막 아이패드가 첫 출시된 직후였는데, 당시 많은 엔젤투자자와 기관투자자들을 만날때 일관되게 돌아왔던 반응은 “수학 공부는 연필과 종이책으로 해야지, 컴퓨터로 하는건 말이 안 된다”는 피드백이었습니다.
업계에서 유명한 엔젤투자자분께서는 젊은 친구들이 이상한 생각에 빠져 시간 낭비하지 말고 사업 아이템을 바꾸라고 호탕하게 웃고 돌아가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습관이 어쨌든 결국 맞춤형 교육 컨텐츠를 제공하려면 컴퓨터나 태블릿을 기반으로 매체가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꺾지 않았습니다. 중간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저희는 사업을 잘 성장시켜 대교라는 국내 선도 교육 회사에 성공적으로 매각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저는 개발자였기 때문에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둘러보는 취미활동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오픈소스 커뮤니티는 상당히 정적인 편입니다. 금전적 보상 없이 명예적 보상에 의존해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2015년 말에 처음 이더리움 커뮤니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더리움 커뮤니티에서 저는 얼굴도 모르는 개발자들끼리 상부상조하듯이 서로의 프로젝트에 이더리움으로 투자를 해주고, 서로의 소스코드를 피드백해주고 토론하며 발전시켜가는 모습을 발견하였고, 일반적인 스타트업보다 훨씬 개방적인 모습으로 발전하고 커뮤니티를 함께 키워가는 모습을 보며 기존의 오픈소스 커뮤니티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높은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저는 2016년 초에 당시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이더리움에 투자했는데, 2016년은 이더리움에게 매우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당시 The DAO라는 탈중앙화 자율운영 조직의 비전을 제시하는 플랫폼이 이더리움으로만 펀드레이징을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는데, 전체 이더리움 유통량의 무려 1/6 가량이 모인 펀드레이징 플랫폼이 해킹을 당하며 1년 내내 가격이 하락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투자했던 돈이 심하게 물리면 사람은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하게 됩니다. 손절매를 하거나, 아니면 더욱 빠져들어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죠. 현대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대부분의 경제조직은 주식회사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저도 주식회사의 형태로 창업하여 두 번의 엑싯을 경험하였지만, 블록체인 위에서 만들어지는 가상의 경제 조직에 거버넌스가 결합되면, 언젠가 주식회사의 효율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 조직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고집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어려운 시기를 버텨냈고, 결국 해시드를 창업하고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제가 가졌던 기존의 규칙을 뒤집는 질문들은 블록체인 산업에서의 활동에 많은 에너지를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은 계속 화폐가치가 떨어지도록 끊임없이 화폐를 찍어내야만 할까?’, ‘세상의 모든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올려 거래할 수는 없을까?’, ‘인간의 활동 시간 점유율이 현실세계보다 가상세계에서 더 많아지지 않을까?’ 같은 것들입니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며 수많은 기회와 위기가 벌어지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그리고 흔들리지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함께하고 싶어합니다. 저도 이를 통해 인생과 비즈니스를 바꿀 수 있는 다양한 좋은 우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 네트워크 국가의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국가관과 국경은 빠른 속도로 흐려지고 있습니다. 이제 국적은 멤버십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국적을 바꾸는 일은 훨씬 쉬워지고 있고 많은 한국인이 기회를 찾아 이민을 떠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가 뿐 아니라 내가 속한 회사와 조직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평생 직장의 개념은 진작에 없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에 속하지 않고 글로벌 플랫폼을 넘나들며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네트워크를 이용한 전문가들이 활동이 가장 빠르게 두드러진 것은 미디어 산업입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컨텐츠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면 방송국이나 영화사에 취직해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개인으로서 네트워크 플랫폼과 커뮤니티를 활용하여 누구나 나의 컨텐츠를 전 세계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치에서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들의 직원이 아닙니다. 각자 개인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넘나들며 자신의 전문성과 브랜드를 형성하고, 어느덧 방송국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머지않아 다른 산업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네트워크 국가의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은 전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합니다. 특정 지역에 거주할 필요 없이 언제든지 네트워크 국가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우리가 디지털 시대의 글로벌 시민으로서 어떻게 더 잘 연결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을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활동과 영향력이 표면적이 넓어진 만큼 더욱 많은 우연한 좋은 기회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네트워크 국가 시민으로서 글로벌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후 변화, 사이버 보안, 전염병 같은 문제들은 국경을 넘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네트워크 국가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더욱 포괄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네트워크 국가 시민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팁을 공유합니다. 트위터와 링크드인을 통해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세요. 한국인 친구만큼이나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들고 교류하세요. 꼭 전문분야가 아니라 취미에 대한 주제라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허락할 때 최대한 다양한 문화권의 국가로 여행하고 그 곳의 친구를 만들어보세요. 나와는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 이곳에 도달한 친구들로부터 전혀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졸업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좋은 우연의 표면적을 더욱 넓힐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4년 2월 16일 해시드 대표 김서준
이영민 블루밍비트 기자 20min@bloomingbit.io
김 대표는 좋은 우연을 만드는 자신만의 방법에 대해 "첫 번째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불편한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주류를 따라 예측 가능한 도전을 하는 것은 안정감을 주지만 반대로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못하면 절대 경험의 폭과 깊이를 키울 수 없다"고 밝히며 과감한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두 번째는 기존의 규칙을 뒤집는 나만의 관점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에 원래부터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나아가 현재 일하고 있는 블록체인, 웹3 산업에 빠른 시기에 입문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라며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서준 대표는 전통적 국가관과 국경이 빠른 속도로 흐려지고 있는 만큼, 네트워크 국가의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네트워크 국가의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것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며 "활동과 영향력의 표면적이 넓어진 만큼, 더욱 많은 기회를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김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학사를 수료한 과학기술인으로, 블록체인이 차세대 산업 혁신을 이끌 핵심 기술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해시드'를 창업했다. 해시드는 서울, 싱가폴, 뱅갈루루,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글로벌 블록체인·웹3 전문 투자사다.
다음은 김서준 대표 축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광주과학기술원(GIST) 졸업생 여러분, 이공계 대학의 최고 명문 중 하나인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을 축하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졸업식 축사 제안을 받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이공계 대학에서 공부했지만 아직 졸업을 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제가 이룬 성취나 지위에 비해 과한 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다른 훌륭한 축사 연설자분들보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나이차나 경험차가 크게 나지 않는 선배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졸업생 분들에게 더 와닿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좋은 우연을 많이 만드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연은 중요합니다. 모든 것은 우연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처럼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어린 시절의 우연한 사건 덕분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이공계와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오셨는데, 저의 경우에는 6살이 되었을 때 이모부의 선물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느날 이모부는 저에게 문방구로 데려가며 자동차를 사주겠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때까지 전동으로 움직이는 기계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그저 바퀴가 달린 자동차 장난감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모부의 선물은 전동 모터가 들어간 미니카였고 당시의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스위치를 켜자 굉음을 내며 앞으로 달려가는 작은 기계를 보며 저는 과학기술의 마법과 같은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비슷한 어떤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과학기술을 공부하게 만든 우연, 그리고 광주과학기술원에 입학하게 만든 우연, 전공을 선택하게 만든 우연,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그 밖의 중요한 선택을 하게 만든 어떤 우연들을 떠올려봅시다.
우리는 살다 보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몇 번의 우연한 기회를 마주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우연이 좋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요. 우연에는 좋은 우연과 나쁜 우연이 있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 컴퓨터 공학과 산업 공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목적함수를 통한 최적화 프로그래밍에 비유해서 고민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인생을 값지게 사는 목적함수에 대해 묻는다면, 그건 바로 '좋은 우연의 표면적을 넓히세요'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좋은 우연의 표면적을 넓힐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을 항상 마음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안전지대(comfort zone)를 벗어나 불편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주류를 따라, 예측 가능한 도전을 하는 것은 안정감을 줍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명확하게 평균 이상의 성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못하면 절대로 경험의 폭과 깊이를 키울 수 없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방식만을 따르면 커리어를 만들때도 어디선가 많이 본 이력서를 만들 수 밖에 없으며, 투자에 있어서도 좋은 결과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저는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제 주위의 친구들과는 다른 몇 번의 불편한 선택을 했습니다. 우선 닷컴 버블이 붕괴된 2002년에 인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당시, 저는 우연히 읽었던 빌게이츠의 저서 “생각의 속도”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인터넷 혁명을 통해 “생각의 속도로 움직이는 비즈니스”를 컴퓨터 한 대로 창업하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남들이 IT산업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무관하게 제 흥미를 끌었고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만들었습니다.
2008년에는 첫 창업을 했는데, 당시에는 창업하면 망한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창업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대학교 3학년때 진로 탐색을 위해 휴학을 하고 서울에서 두 번의 인턴십을 하며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는 현재 오라클에 인수된 썬마이크로시스템즈라는 글로벌 IT 기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선배이자 퓨처플레이의 창업자인 류중희 대표님이 창업하신 올라웍스라는 스타트업이었습니다. 물론 두 곳 다 훌륭한 회사였지만 대기업과 스타트업이라는 큰 지향점의 차이가 있었고, 저에게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후자의 방식이 더욱 가슴뛰게 다가왔습니다. 휴학을 하고 전혀 다른 두 개의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같이 수업을 듣던 동기들에게 1년간 뒤쳐지는 불편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떤 대학 수업보다 더 많은 자극과 교훈을 얻었던 시간이었고, 많은 멘토들을 만났습니다.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고,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고, 나와는 다른 배경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피곤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동안 살아오며 용감한 선택을 한 개척자에게는 몇배가 아닌, 몇십배 이상의 불공평한 수준의 보상이 돌아온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편안한 안전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경각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존의 규칙을 뒤집는 나만의 관점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회적으로 정해져 있는 규칙들에 대해 종종 근본적인 의문을 가졌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반골기질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에 원래부터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제가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나아가 현재 일하고 있는 블록체인과 웹3 산업에 빠른 시기에 입문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제가 2012년에 공동창업했던 노리(Knowre)라는 회사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학생들에게 맞춤형 수학 컨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지식수준이 다른 학생들에게 똑같은 종이책 문제집을 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사업이었습니다. 그 때가 막 아이패드가 첫 출시된 직후였는데, 당시 많은 엔젤투자자와 기관투자자들을 만날때 일관되게 돌아왔던 반응은 “수학 공부는 연필과 종이책으로 해야지, 컴퓨터로 하는건 말이 안 된다”는 피드백이었습니다.
업계에서 유명한 엔젤투자자분께서는 젊은 친구들이 이상한 생각에 빠져 시간 낭비하지 말고 사업 아이템을 바꾸라고 호탕하게 웃고 돌아가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습관이 어쨌든 결국 맞춤형 교육 컨텐츠를 제공하려면 컴퓨터나 태블릿을 기반으로 매체가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꺾지 않았습니다. 중간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저희는 사업을 잘 성장시켜 대교라는 국내 선도 교육 회사에 성공적으로 매각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저는 개발자였기 때문에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둘러보는 취미활동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오픈소스 커뮤니티는 상당히 정적인 편입니다. 금전적 보상 없이 명예적 보상에 의존해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2015년 말에 처음 이더리움 커뮤니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더리움 커뮤니티에서 저는 얼굴도 모르는 개발자들끼리 상부상조하듯이 서로의 프로젝트에 이더리움으로 투자를 해주고, 서로의 소스코드를 피드백해주고 토론하며 발전시켜가는 모습을 발견하였고, 일반적인 스타트업보다 훨씬 개방적인 모습으로 발전하고 커뮤니티를 함께 키워가는 모습을 보며 기존의 오픈소스 커뮤니티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높은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저는 2016년 초에 당시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이더리움에 투자했는데, 2016년은 이더리움에게 매우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당시 The DAO라는 탈중앙화 자율운영 조직의 비전을 제시하는 플랫폼이 이더리움으로만 펀드레이징을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는데, 전체 이더리움 유통량의 무려 1/6 가량이 모인 펀드레이징 플랫폼이 해킹을 당하며 1년 내내 가격이 하락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투자했던 돈이 심하게 물리면 사람은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하게 됩니다. 손절매를 하거나, 아니면 더욱 빠져들어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죠. 현대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대부분의 경제조직은 주식회사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저도 주식회사의 형태로 창업하여 두 번의 엑싯을 경험하였지만, 블록체인 위에서 만들어지는 가상의 경제 조직에 거버넌스가 결합되면, 언젠가 주식회사의 효율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 조직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고집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어려운 시기를 버텨냈고, 결국 해시드를 창업하고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제가 가졌던 기존의 규칙을 뒤집는 질문들은 블록체인 산업에서의 활동에 많은 에너지를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은 계속 화폐가치가 떨어지도록 끊임없이 화폐를 찍어내야만 할까?’, ‘세상의 모든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올려 거래할 수는 없을까?’, ‘인간의 활동 시간 점유율이 현실세계보다 가상세계에서 더 많아지지 않을까?’ 같은 것들입니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며 수많은 기회와 위기가 벌어지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그리고 흔들리지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함께하고 싶어합니다. 저도 이를 통해 인생과 비즈니스를 바꿀 수 있는 다양한 좋은 우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 네트워크 국가의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국가관과 국경은 빠른 속도로 흐려지고 있습니다. 이제 국적은 멤버십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국적을 바꾸는 일은 훨씬 쉬워지고 있고 많은 한국인이 기회를 찾아 이민을 떠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가 뿐 아니라 내가 속한 회사와 조직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평생 직장의 개념은 진작에 없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에 속하지 않고 글로벌 플랫폼을 넘나들며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네트워크를 이용한 전문가들이 활동이 가장 빠르게 두드러진 것은 미디어 산업입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컨텐츠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면 방송국이나 영화사에 취직해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개인으로서 네트워크 플랫폼과 커뮤니티를 활용하여 누구나 나의 컨텐츠를 전 세계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치에서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들의 직원이 아닙니다. 각자 개인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넘나들며 자신의 전문성과 브랜드를 형성하고, 어느덧 방송국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머지않아 다른 산업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네트워크 국가의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은 전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합니다. 특정 지역에 거주할 필요 없이 언제든지 네트워크 국가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우리가 디지털 시대의 글로벌 시민으로서 어떻게 더 잘 연결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을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활동과 영향력이 표면적이 넓어진 만큼 더욱 많은 우연한 좋은 기회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네트워크 국가 시민으로서 글로벌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후 변화, 사이버 보안, 전염병 같은 문제들은 국경을 넘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네트워크 국가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더욱 포괄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네트워크 국가 시민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팁을 공유합니다. 트위터와 링크드인을 통해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세요. 한국인 친구만큼이나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들고 교류하세요. 꼭 전문분야가 아니라 취미에 대한 주제라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허락할 때 최대한 다양한 문화권의 국가로 여행하고 그 곳의 친구를 만들어보세요. 나와는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 이곳에 도달한 친구들로부터 전혀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졸업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좋은 우연의 표면적을 더욱 넓힐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4년 2월 16일 해시드 대표 김서준
이영민 블루밍비트 기자 20min@bloomingbit.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