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너 스스로 인재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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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전방부대 후반기 교육대는 논산 신병훈련소에 시설이나 교육 운영이 미치지 못했지만, 군기는 더 셌다. 이번에 입소한 병력은 모두 접적 지역 최전방부대 소총수로 배치된다는 얘기가 돌았다. 자대 배치 날짜가 다가오면서 초조했다. 몇몇은 쉬는 시간에 교육대 철조망을 통해 먹을 것들을 사 먹으면서 은밀하게 편지를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나도 최전방부대로 가지 않게 해달라는 인사청탁 편지를 써 집에 보냈다.
훈련 동기 여럿이 중부 전선 전방부대에 배치되었으나 나는 연대 본부대 행정병으로 남았다. 편지로 집에 알렸으나 답장은 없었다. 얼마 안 있어 후임병이 전입해오자 막내 신세를 면할 때쯤 첫 외박을 나왔다. 아버지 회사에 먼저 들렀다. 결재를 기다리는 직원들과 접견실에 같이 앉았을 때 사장실에서 아버지 전화 통화가 들렸다. 집안사람의 인사청탁을 거절하는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안 됩니다”라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큰소리가 나면서 통화는 끝났다.
결재를 마친 아버지가 불렀다. 방에 들어서 모자를 벗고 인사하자 아버지는 모자 쓰고 거수경례하라고 했다. 앉아서 거수경례로 인사받은 아버지는 내가 앉자마자 대뜸 “군대도 사람 사는 동네다. 네가 힘들면 다른 사람들도 힘들다. 내가 좀 편해지자고 하면 같이 있는 사람들은 두 배로 더 힘들게 된다. 그런 결정을 윗사람이 할 리 없다”라며 청탁을 넣어달라는 내 부탁 편지는 그렇게 무시했다고 했다. 좀 전에 친척과 통화한 내용과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편지를 집에 보낸 일을 ‘바보 같은 짓’이라며 꾸짖었다.
사람 뽑는 일이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 가장 신경 쓰는 일이라며 공자가 한 말을 소개했다. “사람의 마음은 산천보다 더 험하고, 하늘을 아는 것보다 더 알기 어렵다. 자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아침, 저녁의 일정한 주기가 있지만, 사람들은 두터운 외모 안에 속마음을 감추고 있다. 겸손한듯해도 교만한 사람이 있고, 뛰어난 듯해도 못난 사람이 있고, 신중한 듯해도 경박한 사람이 있고, 강인한 듯해도 유약한 사람이 있고, 여유로운 듯해도 조급한 사람이 있다. 목마른 사람처럼 의(義)를 추구하다가도, 뜨거운 걸 피하듯이 의를 내던지기도 한다.”
“공자가 아홉 가지 조짐(九徵)을 살펴보면, 누가 못난 사람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이어서 인재 알아보는 법을 설명했다. “군자는 멀리 보내서 충성스러운지, 가까이 두고 공경하는지, 까다로운 일을 시켜 유능한지, 갑작스럽게 질문해 지식을 갖췄는지를 살펴본다. 급하게 일을 시켜 믿을 수 있는지, 재물을 맡겨 심성이 어진지, 위급함을 알려서 절개가 있는지, 술에 취하게 해서 행동거지가 바른지를 살펴본다. (남녀가) 함께 지내게 해 색을 밝히는지를 살펴본다.” 장자(莊子) 열어구(列御寇) 편에 나오는 말이다.
아버지는 이날도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자리에 합당한 실력을 갖추는 게 먼저다. 지원자는 실력이 비슷하다. 실력을 갖추었다면 청탁하지 마라. 인사권자는 비슷한 사람 중에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러니 너 스스로 인재로 나서라”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자세하게 설명한 성어가 ‘모수자천[毛遂自薦]’이다. 자신을 스스로 추천한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 나온다.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동생인 평원군 조승(趙勝) 집에 손님의 수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진(秦)나라가 쳐들어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했다. 조나라는 평원군을 초(楚)나라에 보내 합종연횡(合從連橫)으로 연합하고자 했다.
평원군은 함께 갈 인물 20명을 뽑으려 했으나 한 사람이 모자랐다. 이때 모수(毛遂)가 자천(自薦)했다. 평원군이 “어진 선비의 처세란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끝이 주머니를 뚫고 밖으로 나오듯이 금방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오. 그런데 선생은 내 집에서 3년 동안이나 기거하셨지만, 주변에서 선생을 칭찬하는 말을 나는 한 번도 듣지 못했소”라고 했다. 모수는 “그러니 이제라도 저를 주머니 속에 넣어주시기를 청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일찍 저를 주머니 속에 넣어주셨다면 단지 송곳 끝만 보였겠습니까? 송곳의 자루까지 모두 내보여드렸을 것입니다”라고 응수했다.
평원군은 모수를 데려갔다. 평원군과 빈객들이 초나라 왕 설득에 실패하자 모수가 칼자루를 잡고 나서서 협박하는 한편 뛰어난 언변으로 설득에 성공했다. 훗날 평원군은 “내 다시는 선비의 관상을 보지 않겠다. 모 선생조차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모 선생의 무기는 단지 세 치의 혀였지만 그 힘은 정말 백 만의 군사보다도 더 강한 것이구나”라며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모셨다는 고사에서 이 말은 유래했다.
선발되려면 강한 의지를 보이는 방법만 한 게 없다. 자천은 내 의지를 상대에게 강력하게 보일 유일한 도구다. 책임감은 강한 의지력의 기초다. 의지력을 가지기 위해 손주들에게도 일찍부터 키워줘야 할 인성이 책임감이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시키고,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도록 훈련해야만 갖출 수 있는 품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훈련 동기 여럿이 중부 전선 전방부대에 배치되었으나 나는 연대 본부대 행정병으로 남았다. 편지로 집에 알렸으나 답장은 없었다. 얼마 안 있어 후임병이 전입해오자 막내 신세를 면할 때쯤 첫 외박을 나왔다. 아버지 회사에 먼저 들렀다. 결재를 기다리는 직원들과 접견실에 같이 앉았을 때 사장실에서 아버지 전화 통화가 들렸다. 집안사람의 인사청탁을 거절하는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안 됩니다”라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큰소리가 나면서 통화는 끝났다.
결재를 마친 아버지가 불렀다. 방에 들어서 모자를 벗고 인사하자 아버지는 모자 쓰고 거수경례하라고 했다. 앉아서 거수경례로 인사받은 아버지는 내가 앉자마자 대뜸 “군대도 사람 사는 동네다. 네가 힘들면 다른 사람들도 힘들다. 내가 좀 편해지자고 하면 같이 있는 사람들은 두 배로 더 힘들게 된다. 그런 결정을 윗사람이 할 리 없다”라며 청탁을 넣어달라는 내 부탁 편지는 그렇게 무시했다고 했다. 좀 전에 친척과 통화한 내용과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편지를 집에 보낸 일을 ‘바보 같은 짓’이라며 꾸짖었다.
사람 뽑는 일이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 가장 신경 쓰는 일이라며 공자가 한 말을 소개했다. “사람의 마음은 산천보다 더 험하고, 하늘을 아는 것보다 더 알기 어렵다. 자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아침, 저녁의 일정한 주기가 있지만, 사람들은 두터운 외모 안에 속마음을 감추고 있다. 겸손한듯해도 교만한 사람이 있고, 뛰어난 듯해도 못난 사람이 있고, 신중한 듯해도 경박한 사람이 있고, 강인한 듯해도 유약한 사람이 있고, 여유로운 듯해도 조급한 사람이 있다. 목마른 사람처럼 의(義)를 추구하다가도, 뜨거운 걸 피하듯이 의를 내던지기도 한다.”
“공자가 아홉 가지 조짐(九徵)을 살펴보면, 누가 못난 사람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이어서 인재 알아보는 법을 설명했다. “군자는 멀리 보내서 충성스러운지, 가까이 두고 공경하는지, 까다로운 일을 시켜 유능한지, 갑작스럽게 질문해 지식을 갖췄는지를 살펴본다. 급하게 일을 시켜 믿을 수 있는지, 재물을 맡겨 심성이 어진지, 위급함을 알려서 절개가 있는지, 술에 취하게 해서 행동거지가 바른지를 살펴본다. (남녀가) 함께 지내게 해 색을 밝히는지를 살펴본다.” 장자(莊子) 열어구(列御寇) 편에 나오는 말이다.
아버지는 이날도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자리에 합당한 실력을 갖추는 게 먼저다. 지원자는 실력이 비슷하다. 실력을 갖추었다면 청탁하지 마라. 인사권자는 비슷한 사람 중에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러니 너 스스로 인재로 나서라”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자세하게 설명한 성어가 ‘모수자천[毛遂自薦]’이다. 자신을 스스로 추천한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 나온다.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동생인 평원군 조승(趙勝) 집에 손님의 수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진(秦)나라가 쳐들어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했다. 조나라는 평원군을 초(楚)나라에 보내 합종연횡(合從連橫)으로 연합하고자 했다.
평원군은 함께 갈 인물 20명을 뽑으려 했으나 한 사람이 모자랐다. 이때 모수(毛遂)가 자천(自薦)했다. 평원군이 “어진 선비의 처세란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끝이 주머니를 뚫고 밖으로 나오듯이 금방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오. 그런데 선생은 내 집에서 3년 동안이나 기거하셨지만, 주변에서 선생을 칭찬하는 말을 나는 한 번도 듣지 못했소”라고 했다. 모수는 “그러니 이제라도 저를 주머니 속에 넣어주시기를 청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일찍 저를 주머니 속에 넣어주셨다면 단지 송곳 끝만 보였겠습니까? 송곳의 자루까지 모두 내보여드렸을 것입니다”라고 응수했다.
평원군은 모수를 데려갔다. 평원군과 빈객들이 초나라 왕 설득에 실패하자 모수가 칼자루를 잡고 나서서 협박하는 한편 뛰어난 언변으로 설득에 성공했다. 훗날 평원군은 “내 다시는 선비의 관상을 보지 않겠다. 모 선생조차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모 선생의 무기는 단지 세 치의 혀였지만 그 힘은 정말 백 만의 군사보다도 더 강한 것이구나”라며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모셨다는 고사에서 이 말은 유래했다.
선발되려면 강한 의지를 보이는 방법만 한 게 없다. 자천은 내 의지를 상대에게 강력하게 보일 유일한 도구다. 책임감은 강한 의지력의 기초다. 의지력을 가지기 위해 손주들에게도 일찍부터 키워줘야 할 인성이 책임감이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시키고,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도록 훈련해야만 갖출 수 있는 품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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