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윤 "'내남결'로 첫 악역, 잘하고 싶어 인간관계도 끊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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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정수민 역 배우 송하윤
'국민악녀'로 등극한 송하윤이 지인들과도 '절연'까지 하며 캐릭터에 몰입했던 순간을 전했다.
송하윤은 20일 서울시 강남구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진행된 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종영 인터뷰에서 "수민이를 연기하며 인스타그램 사진도 다 삭제하고, 지인들에게도 사정을 설명하고 연락을 끊었다"며 "송하윤의 불행을 끌어 정수민의 행복을 만들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한 여성이 10년 전으로 돌아가 2회차 인생을 살면서 이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송하윤은 친구의 남편을 유혹하는 정수민 역을 맡았다.
정수민은 송하윤은 고등학생 시절 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고, 이후 2005년 MBC '태릉선수촌'으로 주목받았다. 사랑스러운 눈웃음과 톡톡 튀는 연기로 사랑받았던 송하윤은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내 반쪽"이라고 외치던 친구의 남편을 빼앗는 악녀로 활약하며 공분을 자아냈다.
지난 1년 가까이 정수민으로 살아온 송하윤은 "첫 악역이라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했고, 수민의 행동과 생각들이 모두 이해가 안 돼 더 힘들었다"며 "1년간 정수민으로 살아오면서 미치게 외로웠는데, 그 외로웠던 걸 다 품어주는 댓글(반응)이 많아서 그 외로움이 싹 가신 느낌이었다"고 응원해준 시청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정수민으로 연기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송하윤은 "아직도 후유증을 겪고 있다"면서 "그래도 아주 건강하게 극복하고 있다"면서 환한 미소를 보였다. 다음은 송하윤과 일문일답
▲ 큰 사랑을 받고 종영했다.
정말 다행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던 대본이었다.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무사히 다 끝난 거 같아서 다행인 거 같다. 정수민 욕은 하는데 송하윤 욕은 안 하더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다행이다. 정수민으로 1년을 준비하면서 미치게 외로웠다. 그 외로웠던 걸 다 품어주는 댓글이 많아서 그 외로움이 싹 가신 느낌이었다.
▲ 왜 외로웠을까.
제가 저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정수민으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제가 저를 설득했다. 처음엔 수민의 행동이 잘 안 받아들여졌다. 전체 리딩 때까지도 대본을 잘 읽지 못했다. 거부감이 많이 들어서.
▲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연기자 송하윤에 대한 '권태감' 때문이었다. 같은 패턴으로 연기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한 부분이 컸다. 그리고 대본을 보니 수민이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 나쁜 애라는 걸 알지만, '얘는 그럼 누가 지켜주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품어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다.
▲ 권태감은 극복했나.
제가 느낀 권태는 권태가 아니더라. 그리고 수민이 덕분에 마음과 시야의 범위가 넓어졌다. 수민이의 행동은 지금도 이해는 안 되고,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해를 못 하고 연기한 것에 비해 많은 칭찬을 해주시는데, 연기할 땐 다른 세상에 들어간 거 같았다. '액션' 소리를 들으면 주변이 다 사라지고, '컷'하면 다시 보이고. 그래서 수민이를 연기할 때 기억이 안 나는 것들이 많았다. 너무 힘들어서 탈진해서 주저앉기도 하고. 신기한 경험이 많다. 본방사수룰 하며 저도 제 연기를 구경했다.(웃음) 저도 정수민에 홀린 거 같다. 설득하려 했는데, 정수민이 저를 품은 거 같다.
▲ 정수민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을까.
인스타그램 사진들도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출연하며 다 삭제했다. 웃는 제 얼굴을 보면 정수민으로 몰입이 안 될 거 같더라. 다 지우고, 저를 없앴다. 지인들도 이유를 설명하고 차단했다. 악역이 처음이라 잔인하지만 그렇게 했다. 송하윤의 불행을 끌어 정수민의 행복을 만들어낸 거 같다.
▲ 후유증은 없었나?
지금도 진행 중이다. 1년 동안 수민이로 살면서 '힘들다', '외롭다' 이런 인간으로 느끼는 어려운 감정을 입 밖으로 한 번도 뱉지 못했다. 힘들다고 말하면 진짜 힘들어서 무너질 거 같더라. 버티면서 찍었다. 끝내고 보니 '아, 힘들었구나'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지냈나 싶었다. 특히 수민이 캐릭터를 교도소에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린다.(눈물)
▲ 그럼 특히 힘들었던 촬영은 마지막 교도소 장면일까.
힘든 건 없었다. 물론 수민이 같은 사람은 있어서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되지만, 정말 많이 힘들고 바쁘게 살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캐릭터 자체는 안쓰럽다. 그렇지만 실제로 절대 만나고 싶진 않다.(웃음)
▲ 수민이라는 인물이 원작보다 입체적이라는 평이다.
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누구나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보이게 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수민의 이중성에 차이를 두진 않았다. 착한 척 할 때와 본심을 표현하는 건 현장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감정들로, 그때그때 한 부분들이 있었다.
▲ 본인이 봐도 '수민이, 쌤통이다' 싶은 장면이 있을까.
저는 시청자 입장으로 볼 수가 없더라. 계속 정수민으로 살아왔으니까.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나는 누군가', '뭘 하고 있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소민의 삶은 꽉 채워져 있는데, 송하윤의 삶은 없으니까. 그런데 그 생각이 들 때 무섭더라. '아, 내가 빠져나와 있구나' 싶어서. 그땐 다시 대본을 읽었다.
▲ 제작발표회 때 정신과 전문의와 프로파일러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제가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도움을 받은 게 아니라(웃음), 캐릭터를 찍을 때 감정적으로 몰입하면서 온몸이 떨리고 몸살이 나면서 너무 힘들더라. 이렇게 했다간 절대 완주를 못할 거 같더라. 버티지 못할 거 같아서 철저하게 이성으로 분리해서 연기해야겠다 싶었다. 프로파일러 선생님과 질문했던 것도 그런 심리에 대한 거였다. 전문가들도 수민이는 소시오패스라고 하시더라. 미안해, 수민아.(웃음)
▲ 인간 송하윤과 정수민은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
저는 질투를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수민이 지원(박민영 분)을 질투하는 장면이 더 이해가 안 됐다. 인간은 다양하고, 좋은 점이 있으면 배우고,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데 '왜 이럴까' 싶더라. 누군가를 그렇게 미워한 적도 없다. 미워하면 제가 더 힘들어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그러지 않으려 한다. 그런 형식으로 삶을 살지 않았는데, 수민은 완전 반대의 성향이라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됐던 거 같다. ▲ 박민영과는 동갑이었고, 출연자 대부분이 또래 연기자였다.
다들 너무 좋았다. 각자 좋은 점이 너무 많아서 그걸 보며 배웠다. 그렇지만 정수민은 혼자 떨어져 있어야 하고, 섞이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함께 장난치거나 놀면서 찍진 못했다. 대신 한 번씩 사랑 고백은 했다.(웃음) 연기지만 대사를 들을 땐 충격이 크다. 공격적인 말을 들으면 손도 떨리고 그렇다. 그래서 (박)민영이에겐 '송하윤은 민영이를 많이 좋아해. (수민은) 못된 말을 하지만 내 마음은 이거야' 이런 문자도 보냈다. 민영이랑은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나는 게 있었다. 이렇게 마음을 쓰면 연기를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더 철저히 차단해서 했다.
▲ 이이경과 연기도 함께 은퇴설이 불거질 정도였다.
다들 호흡이 잘 맞았다. 자신의 역할을 꼼꼼히 해내려 한 게 다 드러난 거 같다. 엄청 열심히 했다. 호흡이 안 맞을 수가 없었다.
▲ 이이경이 연기한 민환을 보며 분노하진 않았나.
사실 화나지 않았다. 수민은 민환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 그렇다면 수민에겐 지원은 어떤 존재였나.
그러니까, 뭘까?(웃음) 친구로서 사랑했다. 그건 확신한다. 그러면서 미워했다. '사랑한다'는 것도 진심,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것도 진심이었다. 정말 복잡했다. 답이 내려지지 않는 거 같다.
▲ 액션 드라마가 아닌데 치고받고 싸우고, 던지는 액션 장면도 많았다. 촬영하면서 힘들진 않았나.
스태프들이 저희를 어마어마하게 보호했다. 머리털 하나 안 빠졌다. 머리채를 쥐어 잡는 장면에서도 하나도 안 빠졌다. 촬영한 후 느끼는 마음과 감정은 본인들의 몫이다.(웃음) 그런 장면을 찍으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힘듦도 다 수민이의 것이라 생각했다. 스트레스가 풀릴까 봐 오히려 걱정했다. 즐거운 예능을 볼 때 잠깐의 해방감이 생기는데 그런 것도 안 하려고 하고, 스트레스 축적했다. 그런데 그 과정들이 즐거웠다. 행복했고. 지금의 전 아주 건강하다.
▲ 전반부와 후반부의 흐름이 달라진다.
저는 수민이를 세 부분으로 나눴다. 처음엔 철없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목소리 톤도 높이고, 샤랄라한 옷도 입었다. 그러다 지원이 '나, 네가 싫어졌어'라는 대사를 하는데, 그 이후 중간 챕터가 되고, 10회에서 수민이 '나 임신했어'를 말하는 장면 이후 완전히 흑화되는 거다. 저 나름대로 그렇게 표현했다. 흑화됐을 땐 메이크업도 안 하고, 최대한 날것의 느낌을 내려 했다.
▲ 수민을 연기하면서 교복도 다시 입지 않았나.
재밌었다.(웃음) 수민이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다 같이 교복을 입으니까. 애착이 가는 장면 중 하나도 아역 친구들이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부분이었다. 저도 그 현장에 갔고, 촬영 전에 제 아역 배우와 어머님과 몇시간씩 통화하고 '이런 감정이었다'고 대화를 나눴다. 공유하고 싶었다. 수민, 지원이 어릴 때 좋은 말을 해주는 어른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눈물) 그래서 저라도 가서 말해주고 싶었다.
▲ 말도 안 되는 10만원짜리 웨딩드레스는 어땠나.
황당했다.(웃음) 그래도 어쩌겠나. 시어머님이 저를 예뻐해 준 거니까, 어머님이 해주신 거니까, 지원인 못 입은 거니까 좋게 생각한다.
▲ 이 드라마 최고의 빌런은 누구일까.
저는 수민이 빌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열심히 산 건데, 왜 이렇게 욕을 먹는지(웃음). 저에게 빌런은 미안하지만, 지원이었던 거 같다. 수민이에겐 그런 거 같다.
▲ 수민이는 반성할까.
수민이는 아마 끝까지 자기 행동의 잘못을 알지 못할 거 같다.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인데, 정상적이지 않은 곳으로 가버리지 않았나. 제가 교도소에서 느낀 건, 여기서 '다시 착한 아이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였다. 세트장인데도 그 압박감이 너무 컸다. 수민이는 그 안에서도 왕언니들한테 잘 보이고, 노력하고, U&K에서 한 거처럼 잘 살겠지만, 잘못은 끝까지 알지 못할 거 같다.
▲ 이 작품을 통해 인간관계나 결혼관에도 변화가 있었을 거 같다.
개인적인 생각을 할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악역을 하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그래도 고맙게도 작품이 끝난 후 차단했던 지인들이 다들 저에게 먼저 연락해줬다. 그렇게 절 지켜줬다. 정말 고마웠다. 그래도 후유증은 있다. 저에게도 실제로 지원이 같은 오래된 친구가 있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만나서, 제가 '너무 행복해'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진심이야?'라고 하더라.(웃음) 제가 지금껏 연기하면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친구였는데, 신기한 경험이었다.
▲ 이 작품으로 과거 작품들도 재조명받고 있다.
기뻤다. 수민이로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다른 캐릭터들도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과거의 그런 부분들을 다시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하고, 기쁘고, 수민에게도 고맙다.
▲ 이 작품으로 악역 제안을 많이 받을 거 같다.
전 또 다른 악역도 가능하다. 모든 역할에 열려있다. 수민은 작년의 송하윤이 할 수 있었던 악역이었고,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연기는 또 다를 거라 생각한다.
▲ '내 남편과 결혼해줘'처럼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나.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없다. 과거의 전 실수도 했고, 후회도 했지만, 그 덕분에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거 같다. 지금의 제가 딱 좋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경험했고, 잘 견뎠다. 저는 연기를 하면서 우울증을 겪은 적도 없고 건강하게 잘 지나왔다. 다 그런 덕분인 거 같다. 또 정수민을 품은 송하윤의 다음이 기대된다. 어떤 감정이 나올지 궁금하고,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신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송하윤은 20일 서울시 강남구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진행된 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종영 인터뷰에서 "수민이를 연기하며 인스타그램 사진도 다 삭제하고, 지인들에게도 사정을 설명하고 연락을 끊었다"며 "송하윤의 불행을 끌어 정수민의 행복을 만들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한 여성이 10년 전으로 돌아가 2회차 인생을 살면서 이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송하윤은 친구의 남편을 유혹하는 정수민 역을 맡았다.
정수민은 송하윤은 고등학생 시절 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고, 이후 2005년 MBC '태릉선수촌'으로 주목받았다. 사랑스러운 눈웃음과 톡톡 튀는 연기로 사랑받았던 송하윤은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내 반쪽"이라고 외치던 친구의 남편을 빼앗는 악녀로 활약하며 공분을 자아냈다.
지난 1년 가까이 정수민으로 살아온 송하윤은 "첫 악역이라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했고, 수민의 행동과 생각들이 모두 이해가 안 돼 더 힘들었다"며 "1년간 정수민으로 살아오면서 미치게 외로웠는데, 그 외로웠던 걸 다 품어주는 댓글(반응)이 많아서 그 외로움이 싹 가신 느낌이었다"고 응원해준 시청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정수민으로 연기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송하윤은 "아직도 후유증을 겪고 있다"면서 "그래도 아주 건강하게 극복하고 있다"면서 환한 미소를 보였다. 다음은 송하윤과 일문일답
▲ 큰 사랑을 받고 종영했다.
정말 다행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던 대본이었다.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무사히 다 끝난 거 같아서 다행인 거 같다. 정수민 욕은 하는데 송하윤 욕은 안 하더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다행이다. 정수민으로 1년을 준비하면서 미치게 외로웠다. 그 외로웠던 걸 다 품어주는 댓글이 많아서 그 외로움이 싹 가신 느낌이었다.
▲ 왜 외로웠을까.
제가 저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정수민으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제가 저를 설득했다. 처음엔 수민의 행동이 잘 안 받아들여졌다. 전체 리딩 때까지도 대본을 잘 읽지 못했다. 거부감이 많이 들어서.
▲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연기자 송하윤에 대한 '권태감' 때문이었다. 같은 패턴으로 연기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한 부분이 컸다. 그리고 대본을 보니 수민이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 나쁜 애라는 걸 알지만, '얘는 그럼 누가 지켜주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품어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다.
▲ 권태감은 극복했나.
제가 느낀 권태는 권태가 아니더라. 그리고 수민이 덕분에 마음과 시야의 범위가 넓어졌다. 수민이의 행동은 지금도 이해는 안 되고,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해를 못 하고 연기한 것에 비해 많은 칭찬을 해주시는데, 연기할 땐 다른 세상에 들어간 거 같았다. '액션' 소리를 들으면 주변이 다 사라지고, '컷'하면 다시 보이고. 그래서 수민이를 연기할 때 기억이 안 나는 것들이 많았다. 너무 힘들어서 탈진해서 주저앉기도 하고. 신기한 경험이 많다. 본방사수룰 하며 저도 제 연기를 구경했다.(웃음) 저도 정수민에 홀린 거 같다. 설득하려 했는데, 정수민이 저를 품은 거 같다.
▲ 정수민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을까.
인스타그램 사진들도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출연하며 다 삭제했다. 웃는 제 얼굴을 보면 정수민으로 몰입이 안 될 거 같더라. 다 지우고, 저를 없앴다. 지인들도 이유를 설명하고 차단했다. 악역이 처음이라 잔인하지만 그렇게 했다. 송하윤의 불행을 끌어 정수민의 행복을 만들어낸 거 같다.
▲ 후유증은 없었나?
지금도 진행 중이다. 1년 동안 수민이로 살면서 '힘들다', '외롭다' 이런 인간으로 느끼는 어려운 감정을 입 밖으로 한 번도 뱉지 못했다. 힘들다고 말하면 진짜 힘들어서 무너질 거 같더라. 버티면서 찍었다. 끝내고 보니 '아, 힘들었구나'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지냈나 싶었다. 특히 수민이 캐릭터를 교도소에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린다.(눈물)
▲ 그럼 특히 힘들었던 촬영은 마지막 교도소 장면일까.
힘든 건 없었다. 물론 수민이 같은 사람은 있어서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되지만, 정말 많이 힘들고 바쁘게 살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캐릭터 자체는 안쓰럽다. 그렇지만 실제로 절대 만나고 싶진 않다.(웃음)
▲ 수민이라는 인물이 원작보다 입체적이라는 평이다.
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누구나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보이게 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수민의 이중성에 차이를 두진 않았다. 착한 척 할 때와 본심을 표현하는 건 현장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감정들로, 그때그때 한 부분들이 있었다.
▲ 본인이 봐도 '수민이, 쌤통이다' 싶은 장면이 있을까.
저는 시청자 입장으로 볼 수가 없더라. 계속 정수민으로 살아왔으니까.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나는 누군가', '뭘 하고 있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소민의 삶은 꽉 채워져 있는데, 송하윤의 삶은 없으니까. 그런데 그 생각이 들 때 무섭더라. '아, 내가 빠져나와 있구나' 싶어서. 그땐 다시 대본을 읽었다.
▲ 제작발표회 때 정신과 전문의와 프로파일러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제가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도움을 받은 게 아니라(웃음), 캐릭터를 찍을 때 감정적으로 몰입하면서 온몸이 떨리고 몸살이 나면서 너무 힘들더라. 이렇게 했다간 절대 완주를 못할 거 같더라. 버티지 못할 거 같아서 철저하게 이성으로 분리해서 연기해야겠다 싶었다. 프로파일러 선생님과 질문했던 것도 그런 심리에 대한 거였다. 전문가들도 수민이는 소시오패스라고 하시더라. 미안해, 수민아.(웃음)
▲ 인간 송하윤과 정수민은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
저는 질투를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수민이 지원(박민영 분)을 질투하는 장면이 더 이해가 안 됐다. 인간은 다양하고, 좋은 점이 있으면 배우고,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데 '왜 이럴까' 싶더라. 누군가를 그렇게 미워한 적도 없다. 미워하면 제가 더 힘들어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그러지 않으려 한다. 그런 형식으로 삶을 살지 않았는데, 수민은 완전 반대의 성향이라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됐던 거 같다. ▲ 박민영과는 동갑이었고, 출연자 대부분이 또래 연기자였다.
다들 너무 좋았다. 각자 좋은 점이 너무 많아서 그걸 보며 배웠다. 그렇지만 정수민은 혼자 떨어져 있어야 하고, 섞이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함께 장난치거나 놀면서 찍진 못했다. 대신 한 번씩 사랑 고백은 했다.(웃음) 연기지만 대사를 들을 땐 충격이 크다. 공격적인 말을 들으면 손도 떨리고 그렇다. 그래서 (박)민영이에겐 '송하윤은 민영이를 많이 좋아해. (수민은) 못된 말을 하지만 내 마음은 이거야' 이런 문자도 보냈다. 민영이랑은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나는 게 있었다. 이렇게 마음을 쓰면 연기를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더 철저히 차단해서 했다.
▲ 이이경과 연기도 함께 은퇴설이 불거질 정도였다.
다들 호흡이 잘 맞았다. 자신의 역할을 꼼꼼히 해내려 한 게 다 드러난 거 같다. 엄청 열심히 했다. 호흡이 안 맞을 수가 없었다.
▲ 이이경이 연기한 민환을 보며 분노하진 않았나.
사실 화나지 않았다. 수민은 민환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 그렇다면 수민에겐 지원은 어떤 존재였나.
그러니까, 뭘까?(웃음) 친구로서 사랑했다. 그건 확신한다. 그러면서 미워했다. '사랑한다'는 것도 진심,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것도 진심이었다. 정말 복잡했다. 답이 내려지지 않는 거 같다.
▲ 액션 드라마가 아닌데 치고받고 싸우고, 던지는 액션 장면도 많았다. 촬영하면서 힘들진 않았나.
스태프들이 저희를 어마어마하게 보호했다. 머리털 하나 안 빠졌다. 머리채를 쥐어 잡는 장면에서도 하나도 안 빠졌다. 촬영한 후 느끼는 마음과 감정은 본인들의 몫이다.(웃음) 그런 장면을 찍으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힘듦도 다 수민이의 것이라 생각했다. 스트레스가 풀릴까 봐 오히려 걱정했다. 즐거운 예능을 볼 때 잠깐의 해방감이 생기는데 그런 것도 안 하려고 하고, 스트레스 축적했다. 그런데 그 과정들이 즐거웠다. 행복했고. 지금의 전 아주 건강하다.
▲ 전반부와 후반부의 흐름이 달라진다.
저는 수민이를 세 부분으로 나눴다. 처음엔 철없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목소리 톤도 높이고, 샤랄라한 옷도 입었다. 그러다 지원이 '나, 네가 싫어졌어'라는 대사를 하는데, 그 이후 중간 챕터가 되고, 10회에서 수민이 '나 임신했어'를 말하는 장면 이후 완전히 흑화되는 거다. 저 나름대로 그렇게 표현했다. 흑화됐을 땐 메이크업도 안 하고, 최대한 날것의 느낌을 내려 했다.
▲ 수민을 연기하면서 교복도 다시 입지 않았나.
재밌었다.(웃음) 수민이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다 같이 교복을 입으니까. 애착이 가는 장면 중 하나도 아역 친구들이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부분이었다. 저도 그 현장에 갔고, 촬영 전에 제 아역 배우와 어머님과 몇시간씩 통화하고 '이런 감정이었다'고 대화를 나눴다. 공유하고 싶었다. 수민, 지원이 어릴 때 좋은 말을 해주는 어른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눈물) 그래서 저라도 가서 말해주고 싶었다.
▲ 말도 안 되는 10만원짜리 웨딩드레스는 어땠나.
황당했다.(웃음) 그래도 어쩌겠나. 시어머님이 저를 예뻐해 준 거니까, 어머님이 해주신 거니까, 지원인 못 입은 거니까 좋게 생각한다.
▲ 이 드라마 최고의 빌런은 누구일까.
저는 수민이 빌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열심히 산 건데, 왜 이렇게 욕을 먹는지(웃음). 저에게 빌런은 미안하지만, 지원이었던 거 같다. 수민이에겐 그런 거 같다.
▲ 수민이는 반성할까.
수민이는 아마 끝까지 자기 행동의 잘못을 알지 못할 거 같다.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인데, 정상적이지 않은 곳으로 가버리지 않았나. 제가 교도소에서 느낀 건, 여기서 '다시 착한 아이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였다. 세트장인데도 그 압박감이 너무 컸다. 수민이는 그 안에서도 왕언니들한테 잘 보이고, 노력하고, U&K에서 한 거처럼 잘 살겠지만, 잘못은 끝까지 알지 못할 거 같다.
▲ 이 작품을 통해 인간관계나 결혼관에도 변화가 있었을 거 같다.
개인적인 생각을 할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악역을 하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그래도 고맙게도 작품이 끝난 후 차단했던 지인들이 다들 저에게 먼저 연락해줬다. 그렇게 절 지켜줬다. 정말 고마웠다. 그래도 후유증은 있다. 저에게도 실제로 지원이 같은 오래된 친구가 있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만나서, 제가 '너무 행복해'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진심이야?'라고 하더라.(웃음) 제가 지금껏 연기하면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친구였는데, 신기한 경험이었다.
▲ 이 작품으로 과거 작품들도 재조명받고 있다.
기뻤다. 수민이로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다른 캐릭터들도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과거의 그런 부분들을 다시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하고, 기쁘고, 수민에게도 고맙다.
▲ 이 작품으로 악역 제안을 많이 받을 거 같다.
전 또 다른 악역도 가능하다. 모든 역할에 열려있다. 수민은 작년의 송하윤이 할 수 있었던 악역이었고,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연기는 또 다를 거라 생각한다.
▲ '내 남편과 결혼해줘'처럼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나.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없다. 과거의 전 실수도 했고, 후회도 했지만, 그 덕분에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거 같다. 지금의 제가 딱 좋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경험했고, 잘 견뎠다. 저는 연기를 하면서 우울증을 겪은 적도 없고 건강하게 잘 지나왔다. 다 그런 덕분인 거 같다. 또 정수민을 품은 송하윤의 다음이 기대된다. 어떤 감정이 나올지 궁금하고,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신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