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바이오폴리스에 입주한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연구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제공
싱가포르 바이오폴리스에 입주한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연구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제공
‘게놈(Genome)’ ‘나노스(Nanos)’ ‘헬리오스(Helios)’….

지난 19일 싱가포르 중심업무지구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30분가량 들어가자 빽빽한 빌딩숲 사이로 바이오를 상징하는 건물 간판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싱가포르 제약·바이오 연구개발(R&D) 중심단지인 ‘바이오폴리스’다. 정부 주도 바이오클러스터의 글로벌 성공 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일찍이 제약·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투자 유인 정책을 펼쳤다. 2003년부터 바이오폴리스를 조성해 ‘최대 15년간 면세’ ‘5~15% 세율 인하’ 등 다양한 세제 혜택으로 글로벌 제약사를 유치했다. 그 결과 스위스 노바티스·로슈, 미국 화이자·존슨앤드존슨 등 글로벌 10대 제약사 모두 싱가포르에 아시아 헤드쿼터를 두고 있다.

싱가포르에 진출한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은 50여 곳이 넘는다. 싱가포르 제약·바이오 시장은 2016년 1조6000억원에서 2023년 2조9000억원으로 7년 만에 81% 커졌다.

파격 세제 혜택에 의약품 제조 ‘허브’로

세계 의약품 제조시설도 싱가포르로 몰리고 있다. 지난달 미국 애브비는 싱가포르 제조시설을 확장하기 위해 약 3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애브비는 지난 10년간 싱가포르 시설 인수 및 확장 등에 1조원을 투자했다. 글로벌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도 2022년부터 10년간 1조8700억원을 투자해 싱가포르에서 R&D 및 의약품 제조 시설을 확장할 계획이다.

외국 기업이 공장을 짓거나 싱가포르 기업을 인수하면 해당 금액에 대한 세액 공제, 조세 감면, 전문인력 양성, 국비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1000원 창업’도 가능…전용 보조금도

글로벌 제약사가 모이자 바이오 스타트업도 덩달아 늘었다. 싱가포르에선 한국 돈 1000원 수준의 자본금만 있으면 별도 사무실이나 상주인력 없이도 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설립 후 3년간 약 1억원의 과세소득에 75% 세액 감면 혜택도 준다.

제약·바이오기업 보조금도 정부 차원에서 별도 운영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바이오산업에 매년 약 1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싱가포르 국가 예산(101조원 규모) 대비 비율을 감안하면 한국의 열 배 이상이다. 싱가포르 내 바이오기업은 2012년 7곳에서 2022년 52곳으로 늘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혁신기술 창업도 지원한다. 2020년 세계 첫 배양육(세포 배양으로 만든 고기) 치킨이 싱가포르에서 탄생한 이유다. 인공지능(AI) 기술 규제도 열려 있어 디지털 헬스케어 등의 활용도 자유롭다.

나라 면적이 작다는 점은 되려 장점이 됐다. 싱가포르 제약·바이오 기업과 과학기술청(A*STAR), 싱가포르국립대(NUS) 등은 대부분 바이오폴리스와 그 인근에 몰려 있다. 임상시험 등에 협력하기 수월한 이유다.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가 인천 송도, 충북 오송, 서울 공릉 등에 흩어져 있는 것과 비교된다. AI 신약 개발사 제로(GERO)의 맥심 콜린 대표는 “싱가포르국립대 등 다양한 기업 및 연구소와 협력이 가능해 싱가포르에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