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여의도 증권가./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영증권이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자사주 비중이 총발행주식 수의 50%를 넘어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측에선 우선주 투자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전환 청구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영증권은 지난해 12월 7일부터 우선주 1주를 보통주 1주로 바꾸는 전환청구를 진행하고 있다. 신영증권 우선주 주주는 증권을 보유하고 있는 계좌관리기관(증권사)을 통해 직접 전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전환청구 당일부터 보통주의 주주가 되고 우선주 주주로서 권리는 사라진다. 전환청구 기간이 만료되면 나머지 우선주도 전량 보통주로 전환된다.

회사는 우선주 투자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보통주 전환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신영증권우의 거래량이 부족해 언제든 상장 폐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신영증권우는 '초저유동성 종목'으로 지정된 상태다. 한국거래소는 주가조작을 막기 위해 1년 단위로 평가해 양적(일평균 거래량)·질적(유동성) 기준 모두 부진한 종목 중 체결 주기가 10분을 초과하는 종목을 초저유동성 종목으로 지정한다. 신영증권우는 하루에 1000주도 거래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우선주 주주 보호하기 위해 보통주 전환 결정"자사주 비율 절반 넘을 듯

다만 유통 물량 자체가 많지 않아 거래량이 적다는 지적도 있다. 작년 3분기 말 기준 신영증권 우선주 705만3763주 중 가운데 74.6%를 신영증권이 자사주로 갖고 있다. 여기에 원국희 신영증권 명예회장 및 특수관계자의 지분율이 11.12%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물량은 14.28%에 불과한 셈이다.

우선주가 고스란히 보통주로 전환되면 지분율에도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보통주 전환이 완료되면 자사주는 866만119주가 된다. 총발행주식 1644만주 대비 자사주 비율은 52.6%로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원 명예회장과 아들인 원종석 신영증권 회장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28% 수준에서 20.8%로 떨어진다.

일각에선 원 명예회장 측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자사주를 활용해왔다고 주장한다. 신영증권은 보통주와 우선주 모두 꾸준히 매입해왔다. 자사주는 주주총회 의결권이 없다. 따라서 자사주 비율이 높아지면 최대주주가 지분을 늘리지 않고도 실질 지분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우선주의 보통주 전환 후 원 명예회장 측의 실질 지분율(자사주 제외)은 44.51%에서 44%로 소폭 감소한다. 실제 지분율을 두배 웃도는 수준이다.
사진=신영증권
사진=신영증권
자사주가 많이 늘어난 만큼 소각에 대한 요구는 커질 전망이다. 최근 정부가 기업의 저평가를 해소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종목을 집중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전날 기준 신영증권의 PBR은 0.72배다. PBR은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1배 미만이면 회사가 보유한 재산만큼도 증시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BR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여야 한다. ROE를 높이려면 순이익을 늘리거나 자본을 줄여야 한다. 순이익은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기에 빠르게 ROE를 제고하려면 배당을 확대해 보유 현금을 줄이거나 자사주를 소각해 자본을 줄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전 세계에서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자사주 살 돈을 은행에 넣어 이자라도 받는 게 기업, 주주 입장에선 이득"이라며 "소각하지 않을 자사주를 사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라고 꼬집었다.

신영증권 "최대주주 증여 검토하고 있지 않아"

다만 신영증권이 자사주 소각 카드를 꺼내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상속세 때문이다. 1933년생으로 구순(九旬)인 원국희 명예회장은 지분 16%를 갖고 있다. 아들 원종석 회장보다 지분율이 높다. 상속이나 증여 때 최대한 세금을 적게 내려면 가지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낮을수록 유리하다. 하지만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다. 주식 분 상속세는 고인의 사망일을 전과 후 각 2개월씩 총 4개월간 시가 평균 주식평가액을 기준으로 한다. 신영증권은 최근 20년간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았다.

신영증권의 자사주 활용방안은 상반기 내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상장법인의 자사주 보유 비중이 일정 수준을 웃도는 경우 이사회가 자사주 보유 사유, 향후 추가 매입이나 처분 등 계획 등 자사주 보유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내놨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일부 기업은 자사주 매입 후 장기간 보유하면서도 구체적인 활용계획 등에 대해 충분한 정보제공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상반기 내 시행령을 개정해 자사주 취득·보유·처분 등 전 과정에 대한 공시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현재 최대주주 증여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지 않아 특별히 언급할 내용은 없다"며 "신영증권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사 결정을 해왔으며 현재는 자사주 소각 등에 대한 정확한 계획을 공개하기 어렵지만, 앞으로도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