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클래식 여행]123년 역사의 英 ‘위그모어홀’의 탄성…첫소리부터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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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위그모어홀, 1901년 문 열어
123년간 수많은 음악가들 연주 남겨
임윤찬 "꿈꿔왔던 무대" 손꼽기도
'레온 맥컬리 피아노 리사이틀' 리뷰
홀 음향 압도적…고급스러운 잔향 인상적
피아노와 독대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 선사
123년간 수많은 음악가들 연주 남겨
임윤찬 "꿈꿔왔던 무대" 손꼽기도
'레온 맥컬리 피아노 리사이틀' 리뷰
홀 음향 압도적…고급스러운 잔향 인상적
피아노와 독대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 선사
영국 런던에 자리한 위그모어홀은 신예 음악가들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관문’ 같은 장소로 통한다. “미국에 카네기홀이 있다면 유럽엔 위그모어홀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공연이 열렸다 하면 웬만한 클래식 애호가, 연주자, 음악 기획자부터 내로라하는 유명 비평가들까지 모두 이곳을 찾는다. 550석 규모의 작은 음악당이 수천 명을 수용하는 유명 콘서트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123년의 긴 역사 속, 그야말로 ‘전설’이라고 할 만한 음악가들의 숨결이 녹아있는 장소라서다.
지금은 위그모어홀이란 명칭이 너무나 익숙하지만, 개관 당시 이름은 ‘벡스타인홀’이었다. 독일 피아노 제조업체 벡스타인이 자사 피아노 전시실 옆에 지은 홀이란 이유에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기업 자산으로 압류돼 문을 닫았다가, 1916년 데벤햄스 그룹에 매각됐고 이듬해 다시 문을 열었다. 이때 홀이 위치한 거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정식 명칭이 지금의 ‘위그모어홀’이다. 사보이 호텔 등을 설계한 건축가 토마스 에드워드 콜컷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이 홀은 설립 초기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붉은색 대리석과 앨러배스터(설화석고)로 만들어진 오묘한 벽면과 긴 세월에 빛바랜 금색 가스등, 촛대 등은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자연 채광이 들어오도록 설계된 천장은 신성한 분위기를 더한다. 물론 누가 뭐라 해도 이 홀의 시그니처는 반원형 무대 위쪽에 자리한 ‘음악의 영혼’ 천장화다. 화가 제럴드 모이라가 디자인한 이 천장화 중앙에는 ‘음악의 영혼’을 의미하는 무성(無性)의 존재가 황금빛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양옆에 있는 연주자와 작곡가에겐 에로스의 연인 프시케가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7일 저녁(현지시간) 런던의 옥스퍼리 거리 뒤편에 자리한 위그모어홀. 고전 영화 속 오래된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릴 때나 들릴 법한 독특한 벨 소리가 공연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곧 연주가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마치 1900년대 음악가들이 활동하던 때로 시간 여행을 보내주듯, 123년 역사의 위그모어홀은 첫 만남부터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겼다. 1~2분 정도 지났을까. 피아노 뒤 좁은 문을 열고 한 연주자가 등장했다. 프랑스 최고 음반상인 ‘디아파종 도르’,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를 차지한 데 이어 영국 BBC 뮤직 매거진에서 별 5개 만점의 극찬을 받은 명피아니스트 레온 맥컬리였다. 2021/2022 위그모어홀의 상주 예술가를 지낸 인물이라서일까. 마치 집에 온 것처럼 얼굴에 편안한 웃음을 지은 채 천천히 걸어 나온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와!’란 감탄사가 터져 나올 뻔했다. 위그모어홀의 음향은 그 명성대로 최고였다. 피아니스트의 터치 하나하나가 마치 섬세히 빚어낸 유리알처럼 선명하게 튀어 올라 귀에 꽂혔다. 불필요한 울림은 용납하는 법이 없었다. 트릴의 길이에 따라 점차 진해지는 소리의 명도와 분명한 저음과 고음의 대비, 고급스러운 잔향의 마무리까지. 위그모어홀에서의 맥컬리 연주는 마치 피아노와 듣는 이 두 존재만이 독대(獨對)하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소리의 초점이 한 점을 향해 완벽하게 모여들면서 만들어지는 탄탄한 음향, 어느 한 선율도 서로를 해치지 않고 첨예하게 살아나는 입체적인 음향은 단 3분도 안 돼 청중 모두를 황홀경에 빠지게 할 만큼 훌륭했다. 물론 연주자의 기량이 원체 뛰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맥컬리는 첫 곡인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D장조 호보켄 번호(Hob.) XVI/33’에서 건반을 깊게 누르기보단 반동에 의해 손이 하늘을 향해 떠오르도록 가볍게 툭툭 끊어 연주했다. 섬세하게 밀도를 조율하다가도 돌연 무게감 있는 터치로 뼈대가 되는 음을 명료히 강조하는 그의 연주는 하이든의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모음곡 ‘사계’ 중 3월 ‘종달새의 노래’, 10월 ‘가을의 노래’에선 이전과 완전히 다른 음악적 표현으로 짙은 여운을 남겼다. 맥컬리는 몸에 모든 힘을 뺀 채로 건반 하나하나를 지그시 누르면서 스산하면서도 애달픈 서정을 읊어냈다. 소리의 울림은 내내 선명하면서도 조화로웠다.
다음 곡은 20세기 음악인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2번’. 시작부터 뚜렷한 방향성과 강한 추진력으로 모든 음을 앞으로 밀어내면서도 연주 속도가 급해지거나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주하는 것)이 흔들리는 순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주선율 라인과 장식적인 악구를 긴밀히 구분하면서 작품 특유의 의뭉스러 분위기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긴 호흡으로 풍부한 양감을 유지하다가도 순간 온몸이 공중에 들릴 정도로 강하게 건반을 내려치면서 극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그의 연주는 두 손을 꽉 쥐고 풀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을 선사했다. 2부의 문을 연 곡은 쇼팽 즉흥곡 1번. 그의 쇼팽은 담백했다. 따뜻한 색채와 우아한 서정을 부각하려는 요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와 비교하면 맥컬리는 겉멋을 쫙 빼고 악보에 명시된 내용을 그때그때 충실히 수행하는 데 집중한 듯했다. 그렇게 도달한 마지막 작품은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D.935’. 맥컬리는 네 곡이 일체를 이루도록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서도 건반을 치는 속도와 무게, 피아노의 배음과 잔음 등을 예민하게 조율하면서 즉흥곡의 성격을 각각 선명하게 들려줬다.
1번에선 묵직한 타건과 날카로운 부점(附點)으로 비장한 주제를 전면에 펼쳐냈고, 2번에선 깃털을 날리듯 가벼운 터치로 몽환적이면서도 우아한 선율의 색채를 드러냈다. 주제 선율과 다섯 개의 변주로 구성된 3번에선 시시각각 바뀌는 무수한 디테일을 일일이 살려내면서도, 유선형의 자연스러운 울림은 놓치는 법이 없었다. 헝가리풍의 4번에선 각 선율의 셈여림과 빛깔에 미묘한 차이를 표현하며 박진감을 더하다가, 순식간에 고음에서 저음으로 쏟아지는 듯한 격렬한 아르페지오 연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어냈다. 객석 전체에서 열렬한 환호성과 박수 세례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 경이로운 홀’을 언제까지나 계속 지지해주십시오.” 전설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위그모어홀에서 자신의 마지막 연주를 올리면서 남긴 말이다. 이날 맥컬리는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연주에서 루빈스타인과 같은 마음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무대와 객석 간의 최소 거리가 세 뼘 정도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음악당에서 그는 단 한 음도 허투루 내지 않았고, 홀은 음악가들의 언어 하나하나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빚어내 청중에게 전했다. ‘왜 위그모어홀에서 꼭 연주를 들어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만한 무대였다.
런던=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부소니부터 이자이, 루빈스타인까지…‘123년 역사’ 위그모어홀
위그모어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01년 5월 31일.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페루치오 부소니, 벨기에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외젠 이자이 등 당대 엄청난 명성을 자랑한 거장들의 공연이 열리면서다. 이후 브람스에게 영감을 준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 피아노의 명인 블라디미르 드 파흐만 등 수많은 연주자가 위그모어홀 무대에 올랐다. 라벨, 생상스, 포레 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알만한 유수 작곡가들도 위그모어홀을 직접 찾아 자신의 작품 연주를 자주 즐겼다고 기록돼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1976년 위그모어홀에서 그의 마지막 연주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시 쉬프, 다닐 트리포노프 등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가들이 끊임없이 이 무대에 오르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위그모어홀이 음악가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이유다. 실제로 피아니스트 임윤찬도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 한 인터뷰에서 “미국 카네기홀처럼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정말 위대한 음악가들이 거쳐 간 그런 장소들을 좋아한다. (기회가 된다면) 어릴 때부터 항상 꿈꿔왔던 ‘위그모어홀’에 꼭 서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지금은 위그모어홀이란 명칭이 너무나 익숙하지만, 개관 당시 이름은 ‘벡스타인홀’이었다. 독일 피아노 제조업체 벡스타인이 자사 피아노 전시실 옆에 지은 홀이란 이유에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기업 자산으로 압류돼 문을 닫았다가, 1916년 데벤햄스 그룹에 매각됐고 이듬해 다시 문을 열었다. 이때 홀이 위치한 거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정식 명칭이 지금의 ‘위그모어홀’이다. 사보이 호텔 등을 설계한 건축가 토마스 에드워드 콜컷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이 홀은 설립 초기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붉은색 대리석과 앨러배스터(설화석고)로 만들어진 오묘한 벽면과 긴 세월에 빛바랜 금색 가스등, 촛대 등은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자연 채광이 들어오도록 설계된 천장은 신성한 분위기를 더한다. 물론 누가 뭐라 해도 이 홀의 시그니처는 반원형 무대 위쪽에 자리한 ‘음악의 영혼’ 천장화다. 화가 제럴드 모이라가 디자인한 이 천장화 중앙에는 ‘음악의 영혼’을 의미하는 무성(無性)의 존재가 황금빛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양옆에 있는 연주자와 작곡가에겐 에로스의 연인 프시케가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황홀경에 빠지게 한 ‘120분 연주’…유리알처럼 선명한 음향에 ‘깜짝’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지난 7일 저녁(현지시간) 런던의 옥스퍼리 거리 뒤편에 자리한 위그모어홀. 고전 영화 속 오래된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릴 때나 들릴 법한 독특한 벨 소리가 공연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곧 연주가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마치 1900년대 음악가들이 활동하던 때로 시간 여행을 보내주듯, 123년 역사의 위그모어홀은 첫 만남부터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겼다. 1~2분 정도 지났을까. 피아노 뒤 좁은 문을 열고 한 연주자가 등장했다. 프랑스 최고 음반상인 ‘디아파종 도르’,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를 차지한 데 이어 영국 BBC 뮤직 매거진에서 별 5개 만점의 극찬을 받은 명피아니스트 레온 맥컬리였다. 2021/2022 위그모어홀의 상주 예술가를 지낸 인물이라서일까. 마치 집에 온 것처럼 얼굴에 편안한 웃음을 지은 채 천천히 걸어 나온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와!’란 감탄사가 터져 나올 뻔했다. 위그모어홀의 음향은 그 명성대로 최고였다. 피아니스트의 터치 하나하나가 마치 섬세히 빚어낸 유리알처럼 선명하게 튀어 올라 귀에 꽂혔다. 불필요한 울림은 용납하는 법이 없었다. 트릴의 길이에 따라 점차 진해지는 소리의 명도와 분명한 저음과 고음의 대비, 고급스러운 잔향의 마무리까지. 위그모어홀에서의 맥컬리 연주는 마치 피아노와 듣는 이 두 존재만이 독대(獨對)하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소리의 초점이 한 점을 향해 완벽하게 모여들면서 만들어지는 탄탄한 음향, 어느 한 선율도 서로를 해치지 않고 첨예하게 살아나는 입체적인 음향은 단 3분도 안 돼 청중 모두를 황홀경에 빠지게 할 만큼 훌륭했다. 물론 연주자의 기량이 원체 뛰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맥컬리는 첫 곡인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D장조 호보켄 번호(Hob.) XVI/33’에서 건반을 깊게 누르기보단 반동에 의해 손이 하늘을 향해 떠오르도록 가볍게 툭툭 끊어 연주했다. 섬세하게 밀도를 조율하다가도 돌연 무게감 있는 터치로 뼈대가 되는 음을 명료히 강조하는 그의 연주는 하이든의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모음곡 ‘사계’ 중 3월 ‘종달새의 노래’, 10월 ‘가을의 노래’에선 이전과 완전히 다른 음악적 표현으로 짙은 여운을 남겼다. 맥컬리는 몸에 모든 힘을 뺀 채로 건반 하나하나를 지그시 누르면서 스산하면서도 애달픈 서정을 읊어냈다. 소리의 울림은 내내 선명하면서도 조화로웠다.
다음 곡은 20세기 음악인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2번’. 시작부터 뚜렷한 방향성과 강한 추진력으로 모든 음을 앞으로 밀어내면서도 연주 속도가 급해지거나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주하는 것)이 흔들리는 순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주선율 라인과 장식적인 악구를 긴밀히 구분하면서 작품 특유의 의뭉스러 분위기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긴 호흡으로 풍부한 양감을 유지하다가도 순간 온몸이 공중에 들릴 정도로 강하게 건반을 내려치면서 극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그의 연주는 두 손을 꽉 쥐고 풀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을 선사했다. 2부의 문을 연 곡은 쇼팽 즉흥곡 1번. 그의 쇼팽은 담백했다. 따뜻한 색채와 우아한 서정을 부각하려는 요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와 비교하면 맥컬리는 겉멋을 쫙 빼고 악보에 명시된 내용을 그때그때 충실히 수행하는 데 집중한 듯했다. 그렇게 도달한 마지막 작품은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D.935’. 맥컬리는 네 곡이 일체를 이루도록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서도 건반을 치는 속도와 무게, 피아노의 배음과 잔음 등을 예민하게 조율하면서 즉흥곡의 성격을 각각 선명하게 들려줬다.
1번에선 묵직한 타건과 날카로운 부점(附點)으로 비장한 주제를 전면에 펼쳐냈고, 2번에선 깃털을 날리듯 가벼운 터치로 몽환적이면서도 우아한 선율의 색채를 드러냈다. 주제 선율과 다섯 개의 변주로 구성된 3번에선 시시각각 바뀌는 무수한 디테일을 일일이 살려내면서도, 유선형의 자연스러운 울림은 놓치는 법이 없었다. 헝가리풍의 4번에선 각 선율의 셈여림과 빛깔에 미묘한 차이를 표현하며 박진감을 더하다가, 순식간에 고음에서 저음으로 쏟아지는 듯한 격렬한 아르페지오 연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어냈다. 객석 전체에서 열렬한 환호성과 박수 세례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 경이로운 홀’을 언제까지나 계속 지지해주십시오.” 전설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위그모어홀에서 자신의 마지막 연주를 올리면서 남긴 말이다. 이날 맥컬리는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연주에서 루빈스타인과 같은 마음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무대와 객석 간의 최소 거리가 세 뼘 정도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음악당에서 그는 단 한 음도 허투루 내지 않았고, 홀은 음악가들의 언어 하나하나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빚어내 청중에게 전했다. ‘왜 위그모어홀에서 꼭 연주를 들어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만한 무대였다.
런던=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