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클래식 여행]英바비칸센터 2천 관객, 런던 심포니 앞에서 숨도 못 쉬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런던 바비칸 센터, 1982년 문 열어
2차 세계대전 폭격 지역…도시 개발
런던 심포니 상주 공연장으로 유명
'스튀츠망 지휘-런던 심포니 공연' 리뷰
팽팽한 긴장감, 광활한 에너지 뿜어내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서사 완벽히 표현
2차 세계대전 폭격 지역…도시 개발
런던 심포니 상주 공연장으로 유명
'스튀츠망 지휘-런던 심포니 공연' 리뷰
팽팽한 긴장감, 광활한 에너지 뿜어내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서사 완벽히 표현

한때 ‘흉물’ 취급받던 골칫덩이…이젠 문화 예술 ‘명소’로
2차 세계대전 때 가장 폭격이 심했던 지역에서 도시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계된 바비칸 센터는 10여 년의 공사를 거쳐 1982년 문을 열었다. 설계에는 건축가 체임벌린, 파월, 본이 참여했다. 독특한 외형 탓에 한때 BBC가 선정한 ‘가장 흉물스러운 건물 1위’로 뽑히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을 꼽을 때 늘 빠지지 않는다. 2001년엔 문화부로부터 2급 보존 건물로 지정되면서 공식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바비칸 센터는 세계적인 명문 악단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공연장으로 더 유명하다. 런던 심포니는 주로 바비칸 홀에서 공연을 여는데,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 아닌 만큼 음향적으로는 아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래된 음향 문제 때문에 거장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런던 심포니 음악감독 재임 시절 런던시에 새로운 공연장 설립을 강하게 요구했단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런던시가 2억8800만파운드(약 4860억 원)를 들여 새 공연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결국 무산됐다. 바비칸 센터가 런던 심포니에겐 애증의 공간인 셈이다.
마에스트라 스튀츠망이 이끈 ‘런던 심포니’…브루크너의 세계를 꺼내다
“정말 경악할 만한 연주예요. 숨이 멎는 줄 알았다고요. 안 그런가요?”지난 8일 저녁(현지시간) 영국 런던 바비칸 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악기 위에 손을 올린 채 마침내 움직임을 멈추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열렬히 박수를 치던 한 60대 신사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기자를 향해 건넨 말이다.

이날 공연은 출연진부터 범상치 않았다. 현재 여성 지휘자로는 유일하게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의 수장을 맡는 마에스트라 나탈리 스튀츠망(애틀랜타 심포니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세계 최고 권위의 클래식 음반상인 그라모폰상을 무려 7차례나 거머쥔 노르웨이 출신의 피아노 거장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이들이 함께 들려준 작품은 모차르트가 남긴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2번’. 안스네스의 연주는 잠시도 눈과 귀를 뗄 수 없을 만큼 생동감이 넘쳤다.

카덴차에서는 그야말로 피아노를 가지고 놀았다.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하는 듯한 싱그러운 터치와 꿈결처럼 감미로운 색채, 음의 파장을 넓게 펼치면서 공연장 전체를 울리다가도 돌연 소리 진동을 줄여 극도의 박진감을 만들어내는 노련함까지. 세게 건반을 내려치거나 급하게 속도를 내면서 만들어내는 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도 충분히 청중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다는 걸 보여준 연주였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2부에서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이었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브루크너를 기리기 위해 올린 이 작품은 그에게 처음으로 성공을 안겨준 각별한 작품이다. 브루크너 교향곡의 1악장 초입은 차분하게 출발해 서서히 해가 떠오르듯 악상을 펼쳐내면서 극적인 발전을 이루는 게 백미인데, 스튀츠망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는 작품의 역동적 변화를 더없이 완벽하게 들려줬다.

소문대로 스튀츠망은 악단을 완전히 장악할 줄 아는 지휘자였다. 브루크너 특유의 온화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사운드를 충분히 살려내면서도 셈여림, 색채, 표현 대비는 귀신같이 짚어냈다. 각 악기의 배음, 잔향을 정교하게 조율하면서 소리의 명도까지 변화시키는 그의 지휘엔 빈틈이 없었다. 오케스트라는 내내 대단한 집중력을 쏟아내면서 음향적 균형감과 선율의 생동감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는 2악장에선 무게감 있는 바그너 튜바의 울림과 따스한 비올라 선율을 중심으로 종교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악상을 생생히 펼쳐냈다. 굉장한 밀도를 유지하다가 심벌즈, 트라이앵글의 등장을 기점으로 분위기 전환을 이뤄내는 순간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만큼 훌륭했다. 마지막 4악장. 런던 심포니는 마치 잘 세공된 톱니바퀴처럼 서로의 소리에 긴밀하게 반응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거역할 수 없는 힘에 밀려 쏟아지듯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거대한 음향, 생동감 넘치는 리듬 표현, 폭넓은 다이내믹, 장대한 에너지로 마지막 한 음까지 빈틈없이 몰아붙이는 결말은 브루크너가 그린 ‘환희의 세계’ 그 자체였다.

런던=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