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신촌동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 앞. 전공의들이 병원 파업을 벌이면서 병원 내 인력이 부족하자 세브란스병원은 '경증 환자의 경우 인근 병원 방문을 권한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정희원기자
21일 서울 신촌동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 앞. 전공의들이 병원 파업을 벌이면서 병원 내 인력이 부족하자 세브란스병원은 '경증 환자의 경우 인근 병원 방문을 권한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정희원기자
“현재 응급실 가용 인원 부족하니 경증 환자의 입원은 자제해달라”

서울 세브란스병원이 21일 서울소방에 이 같은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브란스병원은 서울 ‘빅5’가운데 가장 먼저인 지난 19일부터 전공의가 집단사직서를 내고 의료 현장을 떠났다. 전공의 집단행동 참여율이 빅5 평균을 웃돌면서 의료공백이 가장 먼저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응급실과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환자가 안절부절못하는 한편 진료와 수술이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다. 소방 당국은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119구급차의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현실화되나

이날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포털에 따르면 이날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은 응급실의 병상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털에는 응급실 병상 수가 여유로울 경우 ‘초록불’을, 부족할 경우 ‘빨간불’로 표시된다. 성남 분당서울대병원, 수원 아주대병원, 고대안산병원, 고양 일산병원 등 수도권 주요 병원들에도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상태다. 이날 오전 10시께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서 모 씨(45)는 “새벽에 갑자기 배가 아파 응급실을 찾았는데 몇시간이 지나도록 진료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최근 암 수술을 받은 김모씨의 경우 병원으로부터 ‘타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추천한다’는 안내를 전달받았다. 김씨는 “같은 층 병동의 환자들은 수술이 취소된 경우가 많다”며 “파업 전보다 병실이 절반 이상 비었다”고 전했다.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수도권 지역에서는 이미 ‘응급실 뺑뺑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경기소방 측 119대원은 고양의 한 대형병원으로 응급환자를 이송하려다 인천으로 구급차의 방향을 돌렸다. 해당 병원이 “응급실이 가득 차 환자를 더 받을 수가 없다”고 답해서다. 사고 발생 지점과 병원은 차로 약 20~3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었지만, 구급차는 어쩔 수 없이 관할을 넘어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병원으로 이동했다. 소방 관계자는 “의료 파업 여파로 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현장에선 벌써부터 ‘갑자기 큰 사고라도 나면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하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열흘내 상당수 병원 응급실 과부하”

소방은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를 예의주시한 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상진료체계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을 대략 2∼3주 정도로 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다음 달 초 이후 상당수 병원의 응급실에 과부하가 걸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과거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을 벌였던 2020년 8월 부산에서 약물에 중독된 40대 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응급실을 찾아 3시간가량 배회했다. 구급차는 결국 울산으로 넘어갔지만 환자는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당시 일대 대부분의 병원들은 장비 부재, 진료과 부재, 의료진 부재 등의 이유로 환자수용을 거부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현재까지 위중 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현장에서 거부당했다고 접수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의료 공백이 현실화하자 이날 한 시민단체는 경찰에 의사들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대한의사협회, 전공의 등에 대해 파업을 주도하고 참여했다는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시민단체 측은 “부적절한 집단행동이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국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