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최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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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파운드리 업계 2위에 올라서고, TSMC를 따라잡겠습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컨벤션센터에서 열린 ‘IFS 다이렉트 커넥트 2024’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이날 처음 공개한 14A(옹스트롬, 1A는 0.1nm) 기반 웨이퍼를 들어 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업으로 잡히자 참석자들은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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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 마이크로소프트(MS)와 ARM 등과 손잡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2위에 올라서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생성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AI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점을 감안해 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2030년까지 1400억달러 규모로 확대할 전망이다. 앞서 2021년 ‘5N 4Y(4년 동안 5개 공정 개발)’ 계획을 제시한 인텔은 이날 향후 3년간의 반도체 공정 로드맵을 처음 제시했다. 겔싱어 CEO는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을 위해선 지정학적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현재 동아시아에 80%가량 쏠려있는 반도체 공급망을 북미와 유럽으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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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올해 말 18A 양산을 통해 TSMC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적용한 반도체 제조사로 거듭난 뒤, 14A 신기술을 통해 2026년까지 선두 입지를 강화할 방침이다. 이날 사티아 나델라 MS CEO도 화상으로 참석해 인텔과의 협력을 공식화했다. 그는 “인텔의 18A 기술을 사용해 새로운 반도체를 만들 계획”이라며 “인텔과의 협력에 한껏 고무돼 있다”고 밝혔다. 이날 나델라 CEO는 구체적인 AI 반도체 정보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MS가 작년에 공개한 ‘마이아 100’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겔싱어 CEO는 주먹을 불끈 쥐며 “MS 외에 다양한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며 “당초 예상한 100억달러보다 늘어난 15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주문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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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도 인텔의 파운드리 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도 이날 화상으로 참석해 “미국은 세계 AI 기술의 중심지이며 이에 따른 반도체 수요도 급증할 전망”이라며 “미국에서 반도체 생태계가 활성화하고, 더 많은 반도체가 생산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텔은 반도체 업계의 챔피언이며 앞으로도 그 지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몬도 장관은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이끄는 반도체 지원법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인텔이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을 다른 업체들보다 먼저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이날 러몬도 장관은 인텔에 대한 보조금 지원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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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이날 반도체 생산과 패키징을 분리하는 ‘시스템즈 파운드리’라는 서비스 영역도 처음 공개했다. 칩 생산부터 패키징, 테스트까지 턴키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은 물론 TSMC 등 다른 제조사의 칩도 패키징과 테스트를 해주는 서비스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AI 시대를 맞아 패키징과 연결성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인텔이 강점을 가진 후공정 부분을 경쟁력 강화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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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이날 MS 외에도 ARM·지멘스·케이던스·시놉시스·앤시스 등 파운드리 주요 파트너사도 공개했다. 특히 르네 하스 ARM CEO가 직접 무대 위에 등장할 때는 객석에서 탄성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하스 CEO는 “ARM과 인텔이 함께 무대에 서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라며 “마치 스티브 잡스가 아이튠즈를 MS 윈도에 탑재한다는 발표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모바일 CPU 시장에서 인텔과 경쟁하는 ARM도 손을 맞잡은 것이 그만큼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하스 CEO는 “인텔의 기술력은 놀랍다”며 “앞으로 ARM과 협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투 판 인텔 파운드리 총괄부사장은 “인텔이 꿈꾸는 생태계는 인텔 혼자서는 할 수 없다”며 “기업과 대학 등 풍부한 우군을 대거 확보해 생태계 강화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새너제이=최진석 특파원/황정수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