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기러기 가족,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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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원시]
기러기 가족
이상국
- 아버지, 송지호에서 좀 쉬었다 가요.
- 시베리아는 멀다.
-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
-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이 많단다.
[태헌의 한역]
鴻雁家族(홍안가족)
阿爹暫息松池湖(아다잠식송지호)
西比利亞誠遠途(서비리아성원도)
阿爹吾等爲何事(아다오등위하사)
若此飛飛不休舍(약차비비불휴사)
兒子且莫說如彼(아자차막설여피)
下界亦多無翼者(하계역다무익자)
[주석]
* 鴻雁(홍안) : 큰 기러기와 작은 기러기, 기러기. / 家族(가족) : 가족.
* 阿爹(아다) : 아버지. / 暫息(잠식) : (~에서) 잠시 쉬다. / 松池湖(송지호) : 강원도(江原道) 고성군(高城郡)에 있는 호수 이름.
* 西比利亞(서비리아) : 시베리아(Siberia). 오늘날에는 중국 사람들이 시베리아를 주로 ‘西伯利亞(서백리아)’로 표기하지만, 구한말(舊韓末) 무렵에 ‘西比利亞’로 적었기 때문에 이를 따랐다. / 誠(성) : 정말로, 진실로.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遠途(원도) : 먼 길, 길이 멀다.
* 吾等(오등) : 우리, 우리들. / 爲何事(위하사) : 무슨 일 때문에, 무엇 때문에, 왜.
* 若此(약차) : 이와 같이, 이렇게. / 飛飛不休舍(비비불휴사) : (계속해서) 날기를 쉬지 않다. ‘休舍’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쉰다는 뜻이다.
* 兒子(아자) : 아이, 아들, 얘야!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且莫(차막) : 부디 ~을 하지 말아라, 당분간 ~을 하지 말아라. / 說如彼(설여피) : 그와 같이 말하다, 그렇게 말하다.
* 下界(하계) : 아래 세계(世界). 원시의 ‘저 밑’에 대한 한역어(漢譯語)로 골라본 시어이다. / 亦多(역다) : 또한 많다, 역시 많다. ‘亦’은 뒤의 ‘無翼者(무익자)’와 연관시켜 ‘<날개가 없는 것> 또한 많다.’로 이해해야 하지만, 단순히 강조하는 의미로 보아도 무방하다. / 無翼者(무익자) : 날개가 없는 자, 날개가 없는 것.
[한역의 직역]
기러기 가족
아버지, 송지호에서 잠시 쉬어요
시베리아는 정말로 먼 길이다
아버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쉼 없이 날아야 해요?
얘야,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아래 세상엔 날개 없는 것도 많단다
[한역노트]
봄은 기러기들이 돌아가는 계절이다. 제비들이 강남(江南)으로 돌아가는 가을이면 이 땅으로 날아왔다가, 제비들이 날아올 때쯤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는 기러기들의 고향은 어디일까?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북극 근처가 바로 기러기들의 고향이라고 한다. 이 시에서는 ‘시베리아’가 기러기 가족의 목적지, 곧 고향으로 설정된 셈이다.
이 시에는 기러기 가족의 출발지가 어디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비록 그렇기는 하여도 강원도 이남의 땅 어디쯤일 것이므로 그 출발지에서 고성(高城)에 있는 송지호까지의 거리는, 송지호에서 시베리아까지의 거리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짧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새끼 기러기가 쉬었다 가자고 한 것은 부족한 인내심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아버지 기러기가 “시베리아는 멀다.”는 말로 점잖게 타일렀다. 그러자 새끼 기러기가 이번에는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라며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였다.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이 많단다.”고 한 아버지 기러기의 말에, 지상(地上)이나 수중(水中)에 사는 날개 없는 존재에 대한 폄하의 뜻이 얼마간 실려 있다고는 하여도, 이 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의 자부심(自負心)으로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당연히 사람의 일에 빗댄 기러기 가족의 대화를 우리 일상사에 적용시켜 볼 때, 이 자부심은 삶의 고통을 이기게 해주고 삶의 무게를 감내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자부심이 없다면 자존감(自尊感)이 없고, 자존감이 없다면 자기 비하가 일상이 되기 마련일 것이다. 옛 선비들이 가진 것이 없어도, 또 누리는 것이 없어도 고고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자존감 때문이었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에게 어찌 자부심이 있겠는가!
만약에 아버지 기러기가 새끼 기러기에게 ‘날개가 있는 존재’로서의 자부심을 가르치지 않고, “우리가 기러기로 태어나서 이 고생이야.”라고 하였다면 어땠을까? 잘은 몰라도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존재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좀체 먼 거리를 옮겨 다니지 않는 텃새로 태어났다면 만족했을까? 혹은 새가 아닌 또 다른 존재로 태어났다면 만족했을까? 역자 생각에는 그렇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좁은 테두리 안에서 사는 새 가운데는 ‘갈매기 조나단’처럼 보다 넓은 세상에 대한 꿈을 품고 있는 새가 없지 않을 것이고, 새가 아닌 존재 가운데는 우리에게는 왜 날개가 없느냐고 투덜거릴 존재 또한 없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끼 기러기가 좀 쉬었다 가자고 한 것은 비상(飛翔)에 수반되는 고통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이처럼 삶을 위해 겪게 되는 고통은 모든 존재의 숙명이다. 이 시는 그런 존재의 숙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존재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읽힌다.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뒤를 돌아다보지 못하는 존재에게는 불만(不滿)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잦은 불만은 마침내 불평(不平)으로 이어지고, 잦은 불평은 끝내 원망(怨望)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옛사람들은 불만을 없게 하고자 ‘만족(滿足)’을 가르쳤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지족불욕(知足不辱)],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지지불태(知止不殆)]고 한 노자(老子)의 일갈을, 예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 깊이 새겨두려고 애썼을까? 살다 보면 어쩌다 불만이 생겨나게 되고, 그 불만 때문에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말이다.
이제 관점을 약간 달리하여 아버지 기러기가 ‘날개가 있는 존재’임을 자랑스럽게 여긴 데로 초점을 맞추어보기로 하자.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는 존재에게는 비상에 대한 로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유목민족들의 새에 대한 토템(totem)도 따지고 보면 이 비상에 대한 선망(羨望)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역자가 학창 시절에 시청했던, 외계인의 침공을 다룬 미국의 어느 드라마에서, 외계인 대장이 독수리가 그려진 미국 백악관의 문양(文樣)을 보고는, 날지 못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며 비웃었던 것 역시 비상에 대한 인간의 로망을 에둘러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늘을 비상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없었다면, 인류는 비행기도 우주선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로망이 새로운 것을 추동하는 기제(機制)가 된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게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과 함께, 내게 없는 것을 간절히 꿈꾸는 염원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역자는 이 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며 이것을 느꼈더랬다.
역자는 4연 4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6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역자는 이 과정에서 일부 시어는 한역을 생략하고, 일부 구에서는 원시에는 없는 말을 임의로 보태기도 하였으며, 3행과 4행은 각각 칠언고시 2구로 한역하였다. 한역시는 1구와 2구에 매구 압운을 하고 그 이하에서는 짝수구에 압운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湖(호)’·‘途(도)’와 ‘舍(사)’·‘者(자)’가 된다.
2024. 2. 27.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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