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팔고, 남의 처 빼앗고…역사 속 '내기 바둑' [김동욱의 역사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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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신진서 9단의 대국장면. 연합뉴스](https://img.hankyung.com/photo/202402/01.35938136.1.jpg)
그리 많지 않은 개로왕에 관한 정보 중 바둑에 관한 내용이 공통으로 전해지는 것을 보면 그의 ‘바둑 사랑’은 유독 남달랐던 듯하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개로왕 21년 9월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은 첩자로 승려 도림(道琳)을 점찍었다. 백제 개로왕(근개루(近蓋婁))이 ‘장기와 바둑’(博奕)을 두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노린 것이었다.
바둑은 적극 권력의 최상층부에 침투하는 무기가 됐다. 도림은 대궐 문에 이르러 “신이 어려서부터 바둑을 배워 자못 신묘한 경지에 들었으니 바라건대 대왕의 곁에서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臣少而學碁, 頗入妙, 願有聞於左右)”라고 개로왕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백제 의자왕이 일본에 선물했다고 전해지는 바둑판 '목화자단기국'.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홈페이지 캡처](https://img.hankyung.com/photo/202402/01.35938137.1.jpg)
‘도미열전’에 남은 바둑 에피소드도 도림에 관한 내용 못지않게 부정적이다. 여기서 바둑은 권력자의 무도한 ‘갑질’과 ‘악행’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도미열전’은 왕을 가장한 신하가 도미부인에게 부인에게 “도미와 내기 바둑을 둬 너를 얻었으니, 내일 너를 들여 궁인(宮人)으로 삼겠다. 지금부터 네 몸은 내 것이다(與都彌愽得之, 來日入爾爲宫人. 自此後, 爾身吾所有也)”라고 겁박한다.
참고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박혁(博奕)이라는 단어는 매우 낯선데, 박(博)은 장기나 바둑 등 대국하는 놀이를 말하고, 혁(奕)은 ‘위기(圍棊)’로 바둑을 뜻한다고 한다. 당나라 시대 이전의 바둑은 가로·세로 17줄에 289점으로 가로·세로 19줄에 361점인 현대의 바둑과는 판이 다르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남은 바둑에 관한 기록은 고대 사회 최상층에서 바둑이 널리 유행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그와 동시에 바둑에 대한 시선이 무척이나 부정적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단순한 취미 수준을 넘어서, 바둑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했던 것으로도 보인다.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신진서 9단의 대국장면. 연합뉴스](https://img.hankyung.com/photo/202402/01.35938136.1.jpg)
신진서 9단이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막판 6연승, 농심배 16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한국에 우승컵을 안겼다. 현대 한국 사회가 써 내려가는 바둑 관련 역사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달리 ‘긍정적’ 내용 위주가 아닐까 싶어서 옛 기록을 뒤져봤다. 요즘에는 바둑을 두는 사람도,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도 찾기 힘들어진 것 같지만….
김동욱 오피니언부장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