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가 메기 됐다'…인뱅 따라잡기 바쁜 시중은행들
토스뱅크발(發) ‘환전수수료 무료’ 경쟁이 전 은행권으로 확산하고 있다. 연간 이익이 수조원에 달하는 시중은행들이 사업 계획을 수정해가며 인터넷뱅크 따라잡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인터넷 은행들이 비대면 영업이라는 본연의 경쟁력을 앞세워 금융시장의 룰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다음 달 환전 수수료 100% 면제 통장과 체크카드를 출시할 계획이다. 당초 사업 계획에는 오는 12월 출시 예정이었지만 지난 1월 토스뱅크가 불붙인 수수료 무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출시 시점을 9개월이나 앞당겼다. 우리은행뿐만이 아니다. 국민은행도 오는 4월 관련 상품을 출시하기 위해 뒤늦은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신한은행 역시 지난달 SOL 트래블 체크카드를 선보이며 맞불을 놨다. 이미 해외 특화 카드인 트래블로그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하나은행은 카드 발급처를 전국 지점으로 확대하고 나섰다.

업계에선 후발주자인 인터넷 은행들이 금융 시장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 경쟁에 이어 상품·서비스 경쟁까지 인터넷은행에서 시작된 혁신 시도에 시중은행들이 등떠밀리듯 참전하는 모습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며 “시장에서 무시하지 못할 대형 메기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미꾸라지가 메기 됐다'…인뱅 따라잡기 바쁜 시중은행들
“인터넷은행이 기존 인터넷 및 모바일 뱅킹을 대체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고, 자칫 또 다른 구조적 부실을 양산하거나 심지어 금융권 전체의 존립을 위협할 우려도 있다. 따라서 인터넷은행 도입에 대한 맹목적 기대를 갖기보다는 그 부정적인 효과를 억제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1호 인터넷은행 출범 직전인 지난 2016년 한 금융지주 산하 연구소 보고서 내용이다. 당시 시중은행들은 인터넷은행의 등장을 메기보단 미꾸라지 정도로 취급했다. 7년 만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미꾸라지에서 메기로 진화한 인터넷은행이 금융시장의 게임의 룰을 새롭게 정의하는 게임체인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평생 무료’ 내걸자 일평균 2만8500개 신설

실제 올들어 금융소비자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대출 갈아타기, 환전 수수료 무료 등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은 인터넷은행이었다. 토스뱅크는 지난 1월 국내 금융사 최초로 살 때도, 팔 때도 수수료를 받지 않는 외환 서비스를 시작했다. 외화통장 하나로 전 세계 17개 통화를 24시간 내내 실시간으로 환전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출시 3주만에 60만개 신규 계좌가 생겼다. 하루평균 2만8500여 계좌가 신설된 셈이다. 수수료 면제 소식에 환테크족이 외화통에 몰려들면서 1회 입금한도를 1000만원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역대급 흥행에 금융권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신한은행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 세계 30종 통화를 구매할 때 환전 수수료가 없는 ‘쏠(SOL) 트래블 체크카드’를 출시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과 문동권 신한카드 사장이 직접 유튜브에 출연해 공격적인 마케팅도 펼쳤다.
기존에 하나 트래블로그 체크카드를 보유하고 있던 하나은행은 카드를 즉시 발급해주는 점포를 주요 거점 61개에서 전국 영업점(593개)으로 확대했다. 토스은행에서 시작된 수수료 무료 경쟁이 뜨거워지면서다.

우리은행은 외화 통장 출시를 위해 사업 계획을 손질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당초 12개월 출시 예정이던 상품을 앞당겨 출시하게 됐다”며 “환전 수수료 무료 통장과 체크카드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국민은행도 KB국민카드와 협업해 오는 4월 ‘KB국민 트래블러스 체크카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출시 전까지 고객 확보를 위해 환전 고객을 대상으로 환율 우대 100% 쿠폰 증정 이벤트도 펼쳤다. 농협은행도 연내 출시를 목표로 관련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카카오뱅크가 26주 적금, 모임통장 등으로 고객몰이에 나섰을 때와 달리 인터넷은행이 선제적으로 선보인 상품을 전 은행권이 앞다퉈 출시하는 사례는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미꾸라지가 메기 됐다'…인뱅 따라잡기 바쁜 시중은행들

○대출 갈아타기 승자도 인뱅

최근 새로운 상품, 시중은행 대비 유리한 금리 구조 등으로 인터넷은행을 찾는 고객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주택담보대출 갈아타기로 새롭게 유치한 자금 규모에서 인터넷은행이 압승을 거뒀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지난 1월 유치한 주담대는 5722억원으로 5대 시중은행(3212억원)보다 2500억원가량 많았다. 시중은행에서 두 인터넷은행으로 옮겨간 대출 건수도 약 1000건에 달했다.
이자가 낮은 저원가성예금 부문에서도 희비가 엇갈린다. 작년 5대 은행의 저원가성예금은 7조5430억원 감소한 반면 모임통장 등 혁신적인 상품으로 자금을 확보한 카카오뱅크는 같은 기간 5조6870억원이 늘었다.

○“금·상품권도 판다” 생활 필수앱 노린다

시중은행 대비 몸집이 가벼운 인터넷은행들은 기존에 없던 상품을 연달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생활 필수앱을 목표로 내건 카카오뱅크는 영유아를 포함한 미성년자 전용 상품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최고투자책임자(CIO) 직을 신설하고 외화자금, 트레이딩 조직을 새롭게 꾸려 자산운용 부문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비금융 상상품으로 금과 상품권 거래 서비스도 시행할 예정이다. 카카오뱅크는 “주목받지 못했던 기존 투자 서비스를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시장에 선진입하겠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인터넷은행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 대신 출범 목적에 집중해야 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인터넷전문은행 3곳 중 카카오뱅크만 지난해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중 목표치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