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라진 바로 다음 날, 자연은 집 청소부터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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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arte] 김정민의 세상을 뒤집는 예술읽기
-앨런 와이즈먼 <인간 없는 세상>
[arte] 김정민의 세상을 뒤집는 예술읽기
-앨런 와이즈먼 <인간 없는 세상>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 가죽의 가치 혹은 유용함 만큼이나 인간에겐 명예가 중요하다는 뜻이었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옛이야기들에서 항상 빌런은 호랑이 였습니다. 인간이 기술로 무장하기 전, 호랑이와 같은 맹수는 우리가 떼로 덤비기 전에는 당해낼 재주가 없었겠지요.
지금은 세월이 변해, 기후변화라는 문맥에서 인간이 빌런이고 호랑이는 약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곧 멸종을 앞둔, 세상이 나서서 구원해야할 종이 되었죠. 그에 반해 인간은 기후변화를 초래한 빌런이자 어쩌면 기후변화를 막아낼 히어로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인류세 대멸종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그 이름을 기억할 사람들이 남아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일 겁니다. 히어로이건 빌런이건 그 유명한 이름을 기억할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날 갑자기 인간들이 몽땅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며 쓴 책이야기를 이제부터 한번 들여다볼까 합니다. 2007년 앨런 와이즈만이라는 저널리스트이자 교수이기도 한 작가는 ‘인간 없는 세상’에 대해 상상하며 쓴 동명의 책을 출판합니다.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스테디하게 판매되고 있고, 기후위기 시대 더욱 주목받으며 얼마 전 개정판으로 책의 가치가 재조명되기도 했지요.
기후위기라는 문맥에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지구의 멸망’이라거나 멸망하는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을 바로 잡자면, 멸망 혹은 멸종의 대상은 우리 인간이고 49억년을 지탱해 온 지구는 인간에 의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은 생물종들과 보란 듯이 건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빠진 지구는 어떤 식으로 건재할까요.
“인간이 사라진 바로 다음날, 자연은 집 청소부터 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던 집들은 금세 지구 표면에서 사라져 버린다” (<인간 없는 세상> 2장 ‘집은 허물어지고’에서)
2007년 책을 읽다 가장 충격을 받은 꼭지의 첫문장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책이 나올 당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미국발 경제위기로 부동산문제가 화두였을 때였는데요. 이 부분에서 고작 100년을 사는 인간이 가진 ‘내 집’ 또는 ‘부동산’이라는 욕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을 쓰기 전 작가는 인간이 만든 문명이 사라지는 모습을 상상하기 위해, 역사를 통해 인간이 문명을 쌓아가는 모습을 고찰하였습니다. 또한 원전이 폭발했던 체르노빌이나 우리나라 비무장 지대처럼, 어떤 이유로 인해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온전한 자연의 모습을 관찰했고, 식물과 동물 전문가는 물론이고 건축, 해양, 화학, 금속 등 여러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아울러 지역마다의 기후특성과 강물의 흐름, 바람의 이동, 해수면의 높이 등 이 한 권의 책은 지구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을 둔 ‘지구 미래 시나리오’입니다. 기후위기에 대해 팽팽하게 맞서는 두 입장이 있는데요. 하나는 기후위기는 인간의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과 소비로 인해 초래한 결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후위기는 인간의 삶과는 무관한 자연변화의 원리로 우리가 가속화시키는 것은 맞지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그동안 발생했던 5번의 대멸종이 거대한 자연의 흐름 속에 일어난 일어났던 것처럼, 어쩌면 6번째 대멸종이 발생하게 되더라도 그건 자연의 거대한 섭리하는 것이고, 인간은 그러한 섭리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단하지 않다는 입장이죠.
책이 출간된 2007년도에 주목하면,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의 심각한 징후들이 발생하기 전이라 ‘인간 없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겁니다. 지금에 비해, 기후위기 국면에서 인간을 빌런으로 못 박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지금, 기후위기 혹은 기후변화 시대에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무엇일까요?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는 윤리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라는 패러다임(ESG 경영) 속에서 그나마 여러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곧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말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 앞 다투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비용을 지출하고 행동에 나서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경제라는 관점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입니다. 상황에 따라 때로는 비정하고 잔인하기도 하죠. 지금은 기후변화 대응이나 환경을 보호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경제에도 이롭다는 계산이 달라지는 순간이 오면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왜냐하면 경제의 시간과 환경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환경의 시간은 경제의 시간에 비해 느리게 흘러가죠. 따라서 경제가 어떤 시간을 기준으로 ‘이익’을 평가하느냐에 따라 환경의 가치평가는 달라집니다. 경제가 조급해지면 환경문제는 후순위로 밀리 수밖에 없게 되겠지요.
이 책은 지금의 기후위기 국면이 오기 전에 쓰였기에 좀 더 자유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멀리보고, 게다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49억년을 살아온 지구에서 고작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대략 1만 2천년 동안 아웅다웅하면서 욕망하고 추구하는 많은 것들이 ‘인간 없는 세상’이란 상상 속에서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게 해주니까요.
우리 인류는 펜데믹을 겪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앞에 우리 인간과 인간의 기술이 얼마나 무력한지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페스트로 인해 겪었던 펜데믹 300년 기간을 고작 3년 만에 끝냈다는 자부심이 바이러스의 공포를 밀어내고 다시금 기고만장하게 되었지요. 어쩌면 결국 300년을 3년에 단축한 것처럼, 기후재앙이나 인류세대멸종을 100분의 1 시간으로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인류가 사라진 지구의 모습을 무려 수십억 년 후의 시간대까지 내다보는 <인간 없는 세상>은 지금 시점의 우리에게 딱 필요한 브레인스토밍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세월이 변해, 기후변화라는 문맥에서 인간이 빌런이고 호랑이는 약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곧 멸종을 앞둔, 세상이 나서서 구원해야할 종이 되었죠. 그에 반해 인간은 기후변화를 초래한 빌런이자 어쩌면 기후변화를 막아낼 히어로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인류세 대멸종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그 이름을 기억할 사람들이 남아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일 겁니다. 히어로이건 빌런이건 그 유명한 이름을 기억할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날 갑자기 인간들이 몽땅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며 쓴 책이야기를 이제부터 한번 들여다볼까 합니다. 2007년 앨런 와이즈만이라는 저널리스트이자 교수이기도 한 작가는 ‘인간 없는 세상’에 대해 상상하며 쓴 동명의 책을 출판합니다.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스테디하게 판매되고 있고, 기후위기 시대 더욱 주목받으며 얼마 전 개정판으로 책의 가치가 재조명되기도 했지요.
기후위기라는 문맥에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지구의 멸망’이라거나 멸망하는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을 바로 잡자면, 멸망 혹은 멸종의 대상은 우리 인간이고 49억년을 지탱해 온 지구는 인간에 의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은 생물종들과 보란 듯이 건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빠진 지구는 어떤 식으로 건재할까요.
“인간이 사라진 바로 다음날, 자연은 집 청소부터 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던 집들은 금세 지구 표면에서 사라져 버린다” (<인간 없는 세상> 2장 ‘집은 허물어지고’에서)
2007년 책을 읽다 가장 충격을 받은 꼭지의 첫문장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책이 나올 당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미국발 경제위기로 부동산문제가 화두였을 때였는데요. 이 부분에서 고작 100년을 사는 인간이 가진 ‘내 집’ 또는 ‘부동산’이라는 욕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을 쓰기 전 작가는 인간이 만든 문명이 사라지는 모습을 상상하기 위해, 역사를 통해 인간이 문명을 쌓아가는 모습을 고찰하였습니다. 또한 원전이 폭발했던 체르노빌이나 우리나라 비무장 지대처럼, 어떤 이유로 인해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온전한 자연의 모습을 관찰했고, 식물과 동물 전문가는 물론이고 건축, 해양, 화학, 금속 등 여러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아울러 지역마다의 기후특성과 강물의 흐름, 바람의 이동, 해수면의 높이 등 이 한 권의 책은 지구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을 둔 ‘지구 미래 시나리오’입니다. 기후위기에 대해 팽팽하게 맞서는 두 입장이 있는데요. 하나는 기후위기는 인간의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과 소비로 인해 초래한 결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후위기는 인간의 삶과는 무관한 자연변화의 원리로 우리가 가속화시키는 것은 맞지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그동안 발생했던 5번의 대멸종이 거대한 자연의 흐름 속에 일어난 일어났던 것처럼, 어쩌면 6번째 대멸종이 발생하게 되더라도 그건 자연의 거대한 섭리하는 것이고, 인간은 그러한 섭리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단하지 않다는 입장이죠.
책이 출간된 2007년도에 주목하면,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의 심각한 징후들이 발생하기 전이라 ‘인간 없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겁니다. 지금에 비해, 기후위기 국면에서 인간을 빌런으로 못 박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지금, 기후위기 혹은 기후변화 시대에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무엇일까요?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는 윤리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라는 패러다임(ESG 경영) 속에서 그나마 여러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곧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말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 앞 다투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비용을 지출하고 행동에 나서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경제라는 관점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입니다. 상황에 따라 때로는 비정하고 잔인하기도 하죠. 지금은 기후변화 대응이나 환경을 보호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경제에도 이롭다는 계산이 달라지는 순간이 오면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왜냐하면 경제의 시간과 환경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환경의 시간은 경제의 시간에 비해 느리게 흘러가죠. 따라서 경제가 어떤 시간을 기준으로 ‘이익’을 평가하느냐에 따라 환경의 가치평가는 달라집니다. 경제가 조급해지면 환경문제는 후순위로 밀리 수밖에 없게 되겠지요.
이 책은 지금의 기후위기 국면이 오기 전에 쓰였기에 좀 더 자유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멀리보고, 게다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49억년을 살아온 지구에서 고작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대략 1만 2천년 동안 아웅다웅하면서 욕망하고 추구하는 많은 것들이 ‘인간 없는 세상’이란 상상 속에서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게 해주니까요.
우리 인류는 펜데믹을 겪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앞에 우리 인간과 인간의 기술이 얼마나 무력한지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페스트로 인해 겪었던 펜데믹 300년 기간을 고작 3년 만에 끝냈다는 자부심이 바이러스의 공포를 밀어내고 다시금 기고만장하게 되었지요. 어쩌면 결국 300년을 3년에 단축한 것처럼, 기후재앙이나 인류세대멸종을 100분의 1 시간으로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인류가 사라진 지구의 모습을 무려 수십억 년 후의 시간대까지 내다보는 <인간 없는 세상>은 지금 시점의 우리에게 딱 필요한 브레인스토밍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