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임상을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 글로벌 제약사 길리어드를 롤 모델 삼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겠습니다.”

임주현 한미그룹 사장은 26일 사장 부임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신약 개발과 사업 확장을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글로벌 제약사에 신약 후보물질을 기술수출해 성장하던 전략에서 한 걸음 나아가 글로벌 신약 허가단계까지 독자적으로 일궈내겠다는 것이다. OCI그룹과의 통합으로 마련되는 자금이 그 밑천이라고 했다.
"한미·OCI 통합 시너지…10년내 매출 5조"

“기술수출 신화 뛰어넘겠다”

한미그룹은 그간 노바티스, 로슈, MSD(미국 머크) 등 다양한 글로벌 제약사에 파이프라인을 기술이전한 경험이 있다. 임성기 선대회장 생전에 이뤄낸 성과다. 한미약품에서 10여 년간 사업개발(BD) 업무를 총괄해온 임 사장은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했다가 물질 자체에 문제가 없음에도 회사의 전략이 바뀌며 반환되거나 개발이 중단되는 사례를 보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대표적 사례가 당뇨병 후보물질 ‘에페글레나타이드’다. 한미약품은 2015년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에 기술이전했다가 2020년 반환받았다. 한미약품은 이 물질을 포함한 5종을 비만치료제로 다시 개발하고 있다.

“OCI 글로벌 네트워크로 시너지”

OCI그룹은 지난해 3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약 1조705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미그룹은 이번 통합으로 수천억원에 달하는 글로벌 임상 비용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기술이전 없이 자체적으로 상용화가 가능해져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할 단초를 마련한 셈이다.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은 상반기에 양사 간 통합 절차를 마무리한 뒤 논의할 예정이다.

임 사장은 “체급을 앞세운 파트너사들의 무리한 요구와 한미의 재무적 한계 등으로 혁신 신약을 글로벌 3상까지 끌고 가지 못했다”며 “이번 통합으로 한미의 신약개발 기조를 굳건히 할 것”이라고 했다.

OCI그룹이 보유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두 그룹 간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한미약품의 제품 판매에 OCI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

임 사장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활발히 사업을 진행 중인 OCI의 시장 경험을 나눌 수 있다”며 “한미가 신약 등 제품 판권을 보유한 국가에서도 OCI의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10년 내 매출 5조원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한미약품의 지난해 매출은 1조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3월 주총이 ‘분수령’

다만 두 그룹이 통합되려면 한미그룹의 경영권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한미그룹은 남매간 경영권 갈등을 빚고 있다. OCI그룹과의 통합에 반발한 임종윤 사장과 임종훈 사장이 신주배정금지 가처분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한미그룹은 지난달 12일 OCI그룹과 현물 출자 및 신주 발행 취득을 통해 통합하는 합의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계약이 상속세 마련을 위한 사적 목적의 통합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21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첫 심문이 열렸다.

경영권 갈등은 다음달 말 개최될 정기주주총회에서 판가름 날 예정이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자신들을 포함한 6명을 한미사이언스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경영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임주현 사장과 모친인 송영숙 회장은 31.93%의 지분을 확보한 상태다. 임성기 선대회장과 오랜 친분이 있는 신동국 한양정밀회장(12.15%)과 국민연금(7.38%), 소액주주(21%)의 표심이 향방을 가를 것으로 관측된다. 임주현 사장은 “진정으로 한미를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