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싱어 '美 증시 하락'에 베팅…에너지주 투자도 줄여 [대가들의 포트폴리오]
폴 싱어 '美 증시 하락'에 베팅…에너지주 투자도 줄여 [대가들의 포트폴리오]
행동주의 펀드 대표 주자 폴 싱어(사진)가 이끄는 엘리엇매니지먼트는 4분기에 미국 증시가 하락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풋옵션을 대거 사들였다. 상위 매수 종목 5개 중 3개가 풋옵션일 정도다. 미국 통신 인프라 회사 크라운캐슬 지분을 대거 확보하며 CEO를 교체하는 등 행동주의 투자에도 나섰다. 투자 종목으로는 에너지 부문 주식을 매도해 관련 업종 비중을 줄이고 헬스케어 및 유틸리티 비중을 늘려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美 증시 하락에 베팅했던 엘리엇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지난해 4분기 매수·매도 상위 5개 종목. /웨일위즈덤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지난해 4분기 매수·매도 상위 5개 종목. /웨일위즈덤
엘리엇이 지난 14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4분기 풋옵션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지난 4분기에 상위 매수 종목 5개 중 1,3,4위가 풋옵션일 정도다. 풋옵션은 해당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엘리엇이 4분기에 매수한 종목 1위는 나스닥100 인덱스ETF(QQQ) 풋옵션이다. 4분기에만 31억달러(약 4조1261억원)에 달하는 756만주를 매수했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풋옵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0.46%에서 16.91%까지 늘었다. 나스닥100 인덱스는 4분기 동안 7% 올랐지만 엘리엇은 미국 빅테크 기업 주가 하락을 예측한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나스닥이 상승할 가능성에도 대비했다. 4분기 기준 엘리엇에서 두번째로 가장 많은 금액을 들여 매수한 종목은 나스닥 지수가 상승하면 이득을 얻는 QQQ 콜옵션으로 나타났다. 콜옵션은 향후 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엘리엇은 4분기에만 12억3000만달러(약 1조6371억원) 어치인 300만주를 사들이며 QQQ콜옵션은 보유 비중 상위 5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상위 매수 종목 3위와 4위도 ETF 풋옵션이다. 3위는 S&P500리테일 ETF(XRT) 풋옵션이다. XRT는 S&P500 지수에서 소매 부분만을 인덱스화해서 추종하고 있다. 전자상거래보다는 미국 소매유통 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4위는 금속광산업체 30개를 담고 있는 S&P 메탈&마이닝 ETF(XME) 풋옵션이다. 엘리엇은 지난 4분기에 처음으로 XRT와 XME를 각각 500만주씩 담았다. XRT는 3억6200만달러(약 4818억원), XME는 2억9900만달러(약 3979억원) 어치다.

3년만에 CEO 교체 성공한 폴 싱어

크라운캐슬(Crown Castle) 로고/ 크라운캐슬 홈페이지
크라운캐슬(Crown Castle) 로고/ 크라운캐슬 홈페이지
엘리엇은 지난 4분기 글로벌 통신 인프라 신탁 회사인 크라운캐슬 지분 총 20억달러(약 2조6620억원) 어치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발표 직전 기준 크라운캐슬 전체 시가총액의 약 4.4%에 달한다. 엘리엇은 2020년 10억달러 규모였던 크라운캐슬 보유 지분을 3년만에 2배로 늘렸고, 최고경영자(CEO) 교체에도 성공했다.

CNBC 보도에 따르면 엘리엇은 11월 말부터 "장기적인 저성과"를 해결하기 위해 "포괄적인 리더십 변화"를 추진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당시 엘리엇 경영 파트너인 제시 콘과 제이슨 젠리치는 "크라운캐슬은 이사회의 심각한 감독 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결함 있는 무책임한 재정 정책으로 이어졌다"고 경영진을 비판했다. 결국 크라운캐슬은 2016년부터 CEO로 재직했던 제이 브라운을 해임하고 앤서니 멜론 CEO를 임시로 임명했다.

CEO 교체는 엘리엇이 2020년부터 크라운캐슬을 압박한 성과로 보인다. 당시 엘리엇은 크라운캐슬에 광통신 사업 투자 수익률 개선, 경영진 및 이사회 개편 등을 요구했다. 지난해에는 무선 송전탑 사업부를 매각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3분기 케이블 사업 부문 매출이 2분기에 비해 25% 감소했다는 이유에서다. 기업 지배구조 교체 압력이 거세지자 크라운캐슬은 CEO를 임시로 교체한 데에 이어 차기 CEO를 찾기 위한 위원회도 구성했다. 이사회에서는 크라운캐슬 측 위원 2명이 빠지고 엘리엇의 경영 파트너인 젠리치가 새로 합류했다. 그 결과 지난 23일 크라운캐슬 주가는 6개월 전보다 9.02% 상승한 108.69달러에 거래됐다.

에너지 부문 줄며 포트폴리오 다각화

엘리엇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에너지 부문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2.54%로 전 분기(40.12%) 대비 7.58%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보유 비중 1위 지만 점차 쪼그라들고 있다. 4분기 매도 순위 1위는 미국 최대 석탄업체 피바디에너지였다. 엘리엇은 이 회사 보유 주식 중 2111만주 중 37.65%에 달하는 795만주를 매도하고 1316만주만 남겼다. 4분기 동안 피바디에너지 주가는 약 9% 하락했다. 엘리엇은 천연가스 및 전력회사인 니소스는 122만주를 전량 매도해 3239만달러(약 431억원)를 현금화했다.

이밖에 엘리엇은 미국 산업재를 추종하는 XLI산업선별지수 SDPR펀드(XLI)와 풋옵션을 모두 매도했다. 미국 항공우주 대표종목 하우멧 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4분기에도 직전 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팔아치웠다. 보유 주식 544만주 중 55%를 팔아 1억6236만달러(약 2161억원)을 현금으로 확보했다. 캐나다 원유 회사인 썬코어 에너지와 해양시추사 시드릴도 매도 상위 5개 종목에 들었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유틸리티 및 원격통신 부문과 헬스케어 비중이 크게 늘었다. 헬스케어 부문은 8.17%로 집계돼 전분기(4.17%) 대비 가장 상승폭이 컸다. 유틸리티 및 원격통신 부문은 8.18%로 전분기(5.69%)대비 2.49%포인트 늘었다. 산업 부문은 1.57%로 전분기(4.14%)대비 비중이 줄었다. 기타 종목은 21.52%에 달했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