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비 잡기' 고심 바이든, 美 사상최대 슈퍼마켓 M&A에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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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C, 크로거-앨버트슨 인수 반독점 제소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슈퍼마켓 체인 간 인수·합병(M&A)에 제동이 걸렸다. 시장 경쟁이 저해될 것을 우려한 경쟁 당국이 반독점 소송을 걸고 나서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6일(현지시간) 오리건주 연방법원에 크로거의 앨버트슨 인수가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워싱턴DC를 비롯해 애리조나·캘리포니아·일리노이·메릴랜드·네바다·뉴멕시코·오리건·와이오밍 등 9개 주 법무장관이 동참했고, 워싱턴주와 콜로라도주는 이미 별도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FTC는 두 기업 간 합병이 식료품 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제품의 품질을 낮출 것을 우려하고 있다. 헨리 리우 FTC 경쟁 국장은 “식료품 가격의 추가 인상은 현재 미 전역의 소비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재정적 부담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있음에도 미국인들은 2020년 대비 26% 더 많은 돈을 식비에 지출하고 있다. 소득 대비 식비 부담은 3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크로거 측은 합병이 무산되면 되려 식품값을 올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주장했다. 크로거 대변인은 “식료품점 수는 더 적어지고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지 않은 소매업체들만 이득을 볼 것”이라고 맞섰다. 아마존, 코스트코, 월마트 등 경쟁사들이 대표적인 무노조 경영 기업이다. 앨버트슨도 “20년 전 미 식료품 업계에서 통용되던 구시대적 시각을 FTC가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 실망했다”고 반응했다.
FTC는 두 기업 간 합병이 노조의 협상력을 낮춰 임금 협상 주도권을 사용자에 부여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도 봤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파업, 보이콧 등 쟁의행위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지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FTC는 특히 덴버와 같은 일부 지역에서 합병 기업이 노조를 둔 유일한 식료품업체가 될 거라고 지적했다. 전직 FTC 위원장인 윌리엄 코바치치 워싱턴대 교수는 “반독점 사건에서 (노조에 대한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거론되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라며 “반독점 판단에서 노사 관계가 최고 수위로 고려되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이번 소송의 배경에는 생활비 인플레이션이 여전한 가운데 재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심이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을 향해 “소비자에 바가지를 씌워 초과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저격했던 바 있다. 독점 기업에 대한 철퇴는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 초부터 내세운 경제 어젠다의 한 축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FTC는 마이크로소프트(액티비전블리자드), 암젠(호라이즌테라퓨틱스), 제트블루(스피리트항공) 등 대규모 M&A에 수 차례 반대해왔다.
크로거가 앨버트슨 인수 계획을 밝힌 건 2022년 10월이다. 당시 크로거는 미국 내 슈퍼마켓 체인 2위, 앨버트슨은 4위였다. 매출만 놓고 보면 현재 1, 2위 업체다. 인수가액은 앨버트슨이 보유하고 있던 순부채 약 47억달러를 포함한 246억달러(약 33조원)에 달한다. 합병 기업은 48개 주에서 5000개 이상의 매장, 약 4000개의 소매 약국을 운영하게 될 전망이다. 매출은 2000억달러를 넘고, 직원 수는 거의 70만명에 이른다. 아마존, 월마트, 코스트코에 맞먹는 초대형 체인이 탄생하게 된다는 평가다.
두 회사는 반독점 우려를 덜어내기 위해 작년 9월 413개 매장을 C&S홀세일그로셔스에 넘기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FTC는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이들 매장의 자산 구조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어 실질적인 경쟁 효과를 내진 못할 거라는 게 근거다. 실제로 시카고, 댈러스,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등 여러 지역에선 양쪽 매장이 중복으로 운영되고 있다. 리서치 업체 캡스톤은 합병 승인을 위해선 매장을 650개 이상 매각해야 한다는 추정을 내놓기도 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크로거는 전일 대비 1.97%(0.95달러) 내린 47.26달러에 마감했다. 앨버트슨은 0.61%(0.13달러) 오른 21.57달러에 장을 닫았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6일(현지시간) 오리건주 연방법원에 크로거의 앨버트슨 인수가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워싱턴DC를 비롯해 애리조나·캘리포니아·일리노이·메릴랜드·네바다·뉴멕시코·오리건·와이오밍 등 9개 주 법무장관이 동참했고, 워싱턴주와 콜로라도주는 이미 별도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FTC는 두 기업 간 합병이 식료품 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제품의 품질을 낮출 것을 우려하고 있다. 헨리 리우 FTC 경쟁 국장은 “식료품 가격의 추가 인상은 현재 미 전역의 소비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재정적 부담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있음에도 미국인들은 2020년 대비 26% 더 많은 돈을 식비에 지출하고 있다. 소득 대비 식비 부담은 3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크로거 측은 합병이 무산되면 되려 식품값을 올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주장했다. 크로거 대변인은 “식료품점 수는 더 적어지고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지 않은 소매업체들만 이득을 볼 것”이라고 맞섰다. 아마존, 코스트코, 월마트 등 경쟁사들이 대표적인 무노조 경영 기업이다. 앨버트슨도 “20년 전 미 식료품 업계에서 통용되던 구시대적 시각을 FTC가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 실망했다”고 반응했다.
FTC는 두 기업 간 합병이 노조의 협상력을 낮춰 임금 협상 주도권을 사용자에 부여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도 봤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파업, 보이콧 등 쟁의행위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지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FTC는 특히 덴버와 같은 일부 지역에서 합병 기업이 노조를 둔 유일한 식료품업체가 될 거라고 지적했다. 전직 FTC 위원장인 윌리엄 코바치치 워싱턴대 교수는 “반독점 사건에서 (노조에 대한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거론되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라며 “반독점 판단에서 노사 관계가 최고 수위로 고려되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이번 소송의 배경에는 생활비 인플레이션이 여전한 가운데 재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심이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을 향해 “소비자에 바가지를 씌워 초과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저격했던 바 있다. 독점 기업에 대한 철퇴는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 초부터 내세운 경제 어젠다의 한 축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FTC는 마이크로소프트(액티비전블리자드), 암젠(호라이즌테라퓨틱스), 제트블루(스피리트항공) 등 대규모 M&A에 수 차례 반대해왔다.
크로거가 앨버트슨 인수 계획을 밝힌 건 2022년 10월이다. 당시 크로거는 미국 내 슈퍼마켓 체인 2위, 앨버트슨은 4위였다. 매출만 놓고 보면 현재 1, 2위 업체다. 인수가액은 앨버트슨이 보유하고 있던 순부채 약 47억달러를 포함한 246억달러(약 33조원)에 달한다. 합병 기업은 48개 주에서 5000개 이상의 매장, 약 4000개의 소매 약국을 운영하게 될 전망이다. 매출은 2000억달러를 넘고, 직원 수는 거의 70만명에 이른다. 아마존, 월마트, 코스트코에 맞먹는 초대형 체인이 탄생하게 된다는 평가다.
두 회사는 반독점 우려를 덜어내기 위해 작년 9월 413개 매장을 C&S홀세일그로셔스에 넘기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FTC는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이들 매장의 자산 구조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어 실질적인 경쟁 효과를 내진 못할 거라는 게 근거다. 실제로 시카고, 댈러스,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등 여러 지역에선 양쪽 매장이 중복으로 운영되고 있다. 리서치 업체 캡스톤은 합병 승인을 위해선 매장을 650개 이상 매각해야 한다는 추정을 내놓기도 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크로거는 전일 대비 1.97%(0.95달러) 내린 47.26달러에 마감했다. 앨버트슨은 0.61%(0.13달러) 오른 21.57달러에 장을 닫았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