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은 경관을 훼손하거나 안전 문제로 번질 수 있어 도시민들의 귀농을 막기도 한다. 폐가나 다름없이 방치돼있던 빈집의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빈집은 경관을 훼손하거나 안전 문제로 번질 수 있어 도시민들의 귀농을 막기도 한다. 폐가나 다름없이 방치돼있던 빈집의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 빈집을 정비하고 농촌 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해 힘을 쏟는다. 빈집 소유주의 자발적인 정비를 유도하는 동시에 중앙정부가 직접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지역 단위로 빈집 정비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2027년까지 농촌의 빈집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 쾌적하고 지속 가능한 농촌 주거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지자체가 실시한 빈집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농촌에 있는 빈집은 6만6024동에 달한다. 농식품부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연평균 7534동의 빈집을 정비해왔지만 빈집은 여전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농촌 빈집재생 프로젝트’로 방치돼있던 빈집이 깔끔하게 새단장을 한 모습. 현재 이 집엔 귀농인이 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촌 빈집재생 프로젝트’로 방치돼있던 빈집이 깔끔하게 새단장을 한 모습. 현재 이 집엔 귀농인이 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사회문제 번진 ‘빈집’ … 해외는 세금부과

빈집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소유주의 사망이다. 2020년 농촌경제연구원(KREI)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빈집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소유주 사망 이후 상속(76%)이었다. 노환으로 요양병원에 거주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발생한 빈집이 그 뒤를 이었다. 빈집은 소유 관계가 복잡한데다 소유주 각자의 사정까지 겹치다 보니 자발적으로 정비하거나 철거되지 않고 방치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빈집이 내버려졌을 때 사회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위생이나 안전 문제를 일으켜 주변 지역의 주거환경을 저해한다. 또한, 위 연구에 따르면 빈집으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마을 경관 훼손(57.4%·복수응답)이었고, 잡초 및 쓰레기 방치(54.3%), 주택 붕괴 및 화재 위험(45.7%)이 뒤를 이었다. 빈집은 도시민들의 농촌 이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이 같은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는 2000년부터 농어촌생활환경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농촌 빈집정비사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했다. 1997년부터 2019년까지 정비된 농촌의 빈집은 총 18만3000동에 달한다. 빈집사무가 2020년 지방으로 이양되면서 기초 지자체가 빈집 정비에 앞장섰다. 시·군별로 빈집 실태조사와 정비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點) 단위·철거 위주의 단편적 정비사업이 이뤄지다 보니 지역 단위로 빈집 문제를 해결해 농촌 공간과 공동체를 활성화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빈집도 사유재산인 만큼 소유자의 자발적인 정비가 필요하지만 이를 유도할 수단도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같은 고민을 하는 해외에선 ‘빈집과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빈집세(稅)’가 대표적이다. 영국은 2년 이상 비어있는 주택에 지방정부세를 최대 50%까지 추가로 부과하는 ‘빈집 프리미엄’(Empty Home Premium) 제도를 2013년에 도입했다. 2018년엔 빈집 프리미엄의 세율을 기존 50%에서 최대 300%까지 높이고 유휴 기간에 따라 차등 적용하도록 했다. 일본은 특정 빈집에 대해 기초자치단체장이 조사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소유자 등에게 필요한 조치를 조언 또는 지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만일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까지 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돼있다.

○농식품부, 직접 철거·인센티브까지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4월 ‘농촌 빈집재생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공공과 민간이 함께 빈집을 농촌지역에 필요한 시설로 재활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사업 1호 대상지인 전남 해남군의 마산초등학교의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4월 ‘농촌 빈집재생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공공과 민간이 함께 빈집을 농촌지역에 필요한 시설로 재활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사업 1호 대상지인 전남 해남군의 마산초등학교의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식품부도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4월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농촌 빈집 정비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관련 대책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농식품부가 추진하고 있는 민관합동 농촌 빈집재생 프로젝트에 전남 해남군이 선정됐다. 이마트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은 해남군의 빈집 20호를 리모델링하고, 폐교 위기였던 마산초등학교의 전학가구 임대주택과 마을호텔 조성에 착수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농식품부와 체결했다. 마산면 주민자치회는 임대주택에 거주할 이주가구를 모집하고, 해남군에선 이주가구의 일자리를 제공하기로 했다.

최근엔 빈집 정비 작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농어촌정비법을 개정했다. 농식품부는 먼저 빈집우선정비구역에 대한 특례를 도입했다. 빈집우선정비구역은 빈집이 증가하거나 빈집 비율이 높은 지역에 대해 지자체장이 지정한 구역을 말한다. 농식품부는 이 구역의 빈집을 개축하거나 용도를 변경할 때 지자체의 심의회를 거치면 기존 빈집의 범위에서 건축법 등에 따른 건폐율·용적률·건축물 높이 제한 기준을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

시장·군수·구청장이 안전사고나 경관 훼손 우려가 높은 빈집 소유자가 철거 등 조치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연간 2회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달라진 사안이다. 직권으로 철거 조치할 때 발생하는 비용이 보상비보다 많으면 그 차액을 소유자에게 징수할 수 있는 근거도 새로 마련됐다.

직접적인 정비 외에도 농식품부는 빈집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26일 농촌 빈집을 활용한 숙박업 규제 완화를 연장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농어촌 지역의 빈집을 활용해 숙박업을 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오는 2026년 1월까지 연장한 것이다. 농어촌 빈집 활용 숙박업은 2020년 과기정통부의 규제샌드박스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실증을 위한 규제 특례로 지정됐다.

실증 특례상 부가 조건도 과감히 완화하기로 했다. 현행 단독주택으로 한정된 사업 대상을 농어촌정비법에 따른 빈집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요건을 변경하고, 주택 리모델링 범위도 농어촌민박사업 규모 기준과 동일하게 연면적 230㎡ 미만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또 사업 개시 이후 2년 이상 운영하는 것을 전제로 특례사업자가 직접 빈집을 매입하는 방식도 허용키로 했다. 농식품부는 이를 통해 사업자가 사업을 확장하는 데 따르는 제약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촌 빈집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지자체와 함께 실태조사를 착수했다.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2021년부터 시장·군수·구청장은 반드시 빈집실태조사를 해야 하지만, 지자체 조사만으로는 정확한 실태 파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6월 발표한 ‘전국 빈집실태조사 통합 지침’에 따라 전문 조사원이 농촌지역 빈집의 상세주소와 입지, 주택 유형, 빈집 등급 등을 파악할 예정이다. 또 결과가 나오는대로 빈집정보 플랫폼에 표출해 민간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