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 중견 건설사 창업주의 딸이 20년 넘게 보유했던 회사 지분을 매각했다. 그는 건강 악화로 재산 분배 계획을 짜다가 자신의 비상장 주식만으로 자녀들이 100억원에 가까운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보유지분을 모두 팔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가족 중 주식을 사갈 사람이 없다보니 외부에서 오랫동안 거래상대를 찾아다닌 끝에 겨우 평가가치보다 30%가량 싼 가격으로 매각을 성사시켰다.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오너일가의 비상장 주식에도 막대한 상속증여세가 부과되는 현실에 기업인의 가족들까지 골머리를 앓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중견 건설사 A사의 오너 2세인 B씨는 최근 보유 중인 회사 주식 3만6000주(30%)를 처분했다. 매각가격은 약 120억원으로 당초 비상장주식 평가방식으로 산정했던 가치(약 180억원)보다 33%가량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약 25년간 해당 주식을 보유하면서 주주 지위만 유지해왔다. 회사는 경영권을 승계한 오빠 C씨가 이끌고 있다.

그랬던 B씨가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한 것은 상속세 부담 때문이다. 그는 건강이 크게 나빠지면서 2022년께부터 자녀들에게 재산을 분배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사망한 뒤 자녀들이 재산을 물려받으면 A사 주식으로만 약 90억원의 상속세를 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평가한 주식가치의 절반 규모다. 자녀들이 막대한 상속세 부담을 떠안는 걸 피하기 위해 B씨는 주식을 모두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C씨가 자금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면서 적합한 거래상대를 찾아헤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는 결국 지난해 한 법무법인에 의뢰해 1년간 거래상대를 물색한 끝에 보유주식을 매각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김선우 기자
일러스트=김선우 기자
B씨 사례는 상속세 부담이 단순히 기업 경영인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현재 국내에선 상속재산의 가치가 30억원을 초과하면 50%의 세율을 적용하도록 돼 있다. 일단 5억원을 초과하면 최소 세율이 30%다. 상속대상이 비상장 주식이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오래 전부터 여러 비상장사 승계 과정에서 경영과 무관한 오너일가까지 상속세 문제 해결방안을 찾느라 고민하는 일이 반복돼왔다.

일단 최대주주를 비롯한 가족에게 지분을 파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 역시 상속·증여세 문제로 매입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외부에 지분을 넘길 경우엔 후계자의 경영권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 지장을 주지 않을 거래상대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반대로 매수자 입장에선 기업공개(IPO) 계획이 없는 한 투자 회수 기회를 잡기 쉽지 않고 영향력 있는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물량도 아니기 때문에 제값에 사야할 유인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대형 게임회사인 넥슨의 지주회사 NXC의 지분조차 팔리지 않는 상황이다. 김정주 창업자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2022년 8월 NXC 지분 67.49%를 상속받은 유족은 6조원대 세금 부담에 지난해 5월 NXC 지분 29.3%(85만2190주)를 기획재정부에 물납했다. 기재부는 그 후 두차례나 NXC 지분 공개매각을 추진했지만 매수의향을 보인 곳이 없어 유찰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비상장 기업의 소수지분은 거래상대를 찾더라도 평가한 가치보다 싸게 팔아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장주식과 똑같은 상속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가혹하다”며 “기업 승계 관련 세금제도를 개선해 비상장사 소수주주의 세금부담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