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만쥬를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는 고객들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델리만쥬를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는 고객들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여기 델리만쥬만 먹은 지 20년 넘었어요. 추억의 맛과 가격 모두 변치 않고 그대로라 외국인에게도 자랑하고 싶을 정도에요."

27일 오후 명동역 지하상가 4번 출구 부근 델리만쥬 가게에서 만난 20대 이모씨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고 경기도에서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좌측부터) 명동역 델리만쥬에 대한 후기와 델리만쥬 본점 직원이 직접 SNS에 가입해 올린 감사 인사. /사진=X 캡처
(좌측부터) 명동역 델리만쥬에 대한 후기와 델리만쥬 본점 직원이 직접 SNS에 가입해 올린 감사 인사. /사진=X 캡처
최근 명동역 지하상가의 델리만쥬 가게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지난달부터 엑스(X·옛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델리만쥬 국내 1호점'으로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한 봉지 3000원으로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가 뛰어나 관광객은 물론 최근 고물가와 씨름 중인 내국인 소비자의 지갑까지 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NS 타고 '역주행'

틀에서 나오는 델리만쥬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틀에서 나오는 델리만쥬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이날 오후 델리만쥬 가게 앞은 15명 남짓의 인원이 만쥬를 구매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절반가량은 외국인으로, 취재하는 40여분간 대기 줄은 꾸준히 이어졌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기계에선 노랗게 익은 만쥬들이 능숙한 직원의 손놀림에 순서대로 뽑혀 나왔다.

직장인 이민희(28) 씨는 "SNS에서 명동역에 '원조' 델리만쥬 가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왔다"며 "보통 델리만쥬는 풍기는 냄새에 비해 맛이 못 미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여긴 아니다. 크림이 한가득 들어 와볼 만하다"고 전했다. 40대 김모 씨는 "평소 퇴근길에 자주 사 먹는 간식"이라며 "오늘은 일을 마치고 남편, 딸과 만나 함께 나왔다. 딸이 이 가게 델리만쥬를 얼려 먹는 걸 정말 좋아한다"며 말했다.

한국에서 일주일간 여행을 즐기고 내일 떠난다는 말레이시아인 가족도 만쥬를 먹고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맛있다"며 소감을 남겼다. 이 중 사라(13)는 "여행 중 다른 지하철역에서도 이 간식의 냄새를 맡았는데, 드디어 이 냄새의 비밀을 알게 됐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외국인 7할이었는데…이젠 한국인이 더 많은 날도"

갓 구운 델리만쥬. 직원이 오래 기다린 손님에게 만쥬를 하나씩 건넨다. /영상=김영리 기자
갓 구운 델리만쥬. 직원이 오래 기다린 손님에게 만쥬를 하나씩 건넨다. /영상=김영리 기자
가게 직원인 50대 이모 씨는 "반죽을 본사에서 받지 않고 매장에서 직접 만들어 부드러운 것"이라며 영업 비밀을 귀띔하기도 했다. 고객들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싶으면 서비스로 만쥬 1알씩을 건네기도 한다. 이 씨는 무려 10개 국어의 인사말을 구사하며 손님들을 맞는다. 그는 SNS에서 가게가 유명세를 치른 것을 알고 최근 직접 SNS 계정까지 만들어 누리꾼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이 씨는 "이번 겨울부터 만드는 반죽의 양만 대략 3배 정도 늘었다"면서 "바빠도 손님 많은 게 훨씬 즐겁다"고 전했다.

이 가게 사장 김용모(65) 씨는 "꼬박 26년을 이 자리에서 장사했는데, 코로나 때 처음으로 직원을 5명에서 1명으로 줄일 정도로 힘들었다"며 "지난해부터 외국인 관광객이 오면서 한숨 돌렸는데, 이번 겨울부턴 젊은 한국분들도 많이 오신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7할이 외국인이고, 한국인은 단골이 위주였는데 요즘엔 한국인 손님이 외국인보다 많은 날도 있다"며 "SNS로 유명세 탄 것을 체감한다. 앞으로도 겸손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영업하겠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요즘 젊은 층 중심으로 '뉴트로(새로움의 'new'와 복고를 의미하는 'retro'를 합친 말)' 열풍과도 맞물려 시너지를 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역마다 업력이 긴 전통 가게들은 주변 상권을 주도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는 곳은 외국인에게도 명소로 전파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며 "명동은 높은 임대료로 오래된 소형 점포들의 명맥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가게들을 보호하는 정책이 있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