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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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 500만원, 육아도우미 300만원, 영어유치원 200만원….’

자녀가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되는 ‘양육비와의 전쟁’ 비용 청구서다. 한 달간 자녀를 돌보는 데 드는 비용이 직장인 한 달 월급에 육박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출혈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다가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된 강모씨(34)는 “사설 놀이학원, 영어유치원을 버티면 ‘초등 의대반’이 나온다”며 “비용이 부담되지만 SNS에서 비교하는 문화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녀 예상 양육비 1년 새 16%↑

한국경제신문이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에 의뢰해 만 25~45세 경제활동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5~20일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자녀 한 명당 양육비는 2억5206만원으로 조사됐다. 자녀를 만 19세까지 키우는 데 들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을 물어본 결과다.
그래픽=김선우 기자
그래픽=김선우 기자
이는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3~4월 25~45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때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조사에서 경제활동 여성은 평균 양육비로 2억1659만원을 생각했다. 1년 새 예상 양육비 규모가 16.4% 커졌다.

이번 조사에서 자녀가 없는 여성이 예상한 양육비 규모는 2억6809만원으로 유자녀 여성 예상액(2억3604만원)보다 컸다. 기혼자 중 무자녀인 경우는 예상 양육비 규모가 3억4003만원에 달했다. 자녀에게 실제로 드는 돈을 파악할 수 있는 유자녀 여성보다 무자녀 여성의 양육비 규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응답자는 출산율 상승을 위해 필요 양육비의 46.7%인 1억1810만원을 국가에서 지원해줘야 한다고 봤다. 원하는 지원 방식으로는 55.5%가 현금 지원을, 23.6%가 바우처 지급을 꼽았다. 현금을 일시적으로 지원할 경우 원하는 금액은 6922만원으로 조사됐다. 작년 조사 때 남녀 800명이 원한 금액(6348만원)보다 9.0% 많은 금액이다.

양육비 지원해도 “안 낳겠다”

하지만 이런 지원을 하더라도 출산 의향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 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622명을 대상으로 ‘필요한 양육비를 준다면 자녀를 낳겠느냐’고 묻자 61.3%가 ‘아니다’고 응답했다. 특히 미혼자 중에선 출산 의향이 없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은 응답자가 77.9%로 나타났다.

이런 응답의 배경에는 양육비 지원만으론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현재의 출산과 육아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활동 여성 1000명 중 64.9%는 출산과 육아 환경이 부모세대보다 악화했다고 응답하면서 그 이유로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54.8%)는 점을 꼽았다.

출산하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 자녀가 없는 여성들은 ‘육아에 구속되기 싫어서’(54.3%), ‘자녀가 힘든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54.3%),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위해서’(47.8%),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서’(47.8%), ‘자아실현에 장애가 될 것 같아서’(15.2%) 등을 꼽았다. 자녀 한 명을 낳은 뒤 둘째를 포기한 사람들은 ‘두 명 이상을 키울 건강과 여력이 부족해서’(41.4%), ‘자녀를 양육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30.6%) 등을 언급했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선 90.8%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미혼 여성은 87.7%, 기혼 여성은 92.9%가 심각하다는 응답을 골랐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