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에코프로 트라우마'에 침묵하는 증권사들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매도 보고서를 쓰나요.”

요즘 여의도 증권가에서 가장 뜨거운 종목은 2차전지용 전해액을 만드는 코스닥시장 상장사 엔켐이다. 연일 불기둥을 세우더니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4배 올랐다. 작년 국내 주식시장을 광기에 휩싸이게 한 에코프로를 연상시킨다.

올해 2차전지 테마가 사그라들었는데 유독 엔켐으로만 매수세가 쏠리고 있다.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포모(뒤처짐에 대한 공포) 심리’까지 더해져 매수세는 갈수록 불이 붙고 있다. 올해 개인 순매수 금액만 3571억원에 달한다. 주가수익비율(PER)은 237배까지 치솟았다. 엔켐 시가총액은 5조원을 웃돌며 코스닥 5위까지 뛰어올랐다.

여의도에서도 엔켐의 폭등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에코프로와 달리 의미 있는 실적이 나오지도 않는다. 작년 매출은 뒷걸음질 치고 순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자연스럽게 거품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도 마찬가지다. 작년 7월 한국투자증권을 끝으로 7개월째 단 한 건도 보고서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에코프로의 학습효과 때문”이라고 했다. 에코프로 주가가 끝없이 오르던 지난해 4월,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권사에서 처음으로 에코프로 매도 보고서를 냈다. 당시 김 연구원은 “에코프로가 위대한 기업임에는 분명하지만 과도하게 올랐다”며 투자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이후 김 연구원은 출근길에 ‘배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 전 금양 홍보이사 지지자들로부터 공격당했다. 이들은 김 연구원의 출근길을 가로막고 “공매도 세력의 앞잡이”라며 욕을 퍼부었다.

이를 목도한 리서치센터들은 엔켐처럼 개인이 몰리는 주식에 대해 아예 입을 닫고 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주식시장의 나침반’이라는 리서치센터의 소임을 저버린 것이다. 증권사들은 브로커리지(주식매매 중개)라는 사업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투자정보를 전달할 의무가 있다.

증권사가 침묵하면 개인투자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불확실한 정보나 뜬소문에 더욱 휘둘리게 된다. 이는 깜깜이 투자와 작전·테마주 범람으로 이어져 많은 투자자의 피해로 돌아온다. 투자자가 무서워 마땅히 내야 할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리서치센터 무용론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금융당국도 실효성 있는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 매도 보고서를 쓰라고 요구만 할 게 아니라 소신 있는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줘야 한다. 애널리스트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등 도를 넘은 투자자에 대해선 수사당국과 협력해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