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아르떼필 정기연주회에서 손민수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지난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아르떼필 정기연주회에서 손민수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올해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정기연주회 라인업을 살펴보면 친밀도가 한결 높아진 느낌이다. 지난해 해외 유명 솔리스트들을 초청해 협연자이자 공연 간판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면, 올해는 1월의 다니엘 오텐자머를 제외하면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우리’ 연주자 위주로 라인업을 꾸렸다. 화려했던 작년과 비교하면 다소 수수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외양으로 이목을 끄는 대신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내년 창단 10주년을 맞는 악단으로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 국제무대 앞두고 ‘출사표’

지난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올해 두 번째 정기연주회는 출정식 성격을 겸했다. 올해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창단 이후 처음으로 국제무대에서 단독 공연을 한다. 3월 홍콩아츠페스티벌, 5월 후쿠야마 국제음악제에 참가해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교향악단으로서 그동안 다져온 역량을 펼쳐 보일 예정이다.

이번 정기연주회는 홍콩아츠페스티벌에서 선보일 공연과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홍콩 출신으로 서울시향 부지휘자를 지내고, 현재 수석객원지휘자로 한경아르떼필하모닉과 인연을 맺은 윌슨 응이 지휘봉을 잡았다. 중견 피아니스트이자 ‘임윤찬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손민수가 협연자로 가세했다.

공연은 중국 상하이 출신 작곡가 예 샤오강의 ‘희미한 은행나무’로 시작됐다. 지구상에서 수십억 년 동안 살아남은 고대 식물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대한 작곡가의 감명과 상상력을 펼쳐낸 소담스러운 관현악곡이다. 할리우드 영화음악 풍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음률 사이로 중국풍 선율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연주는 작품의 심상과 매력을 큰 부족함 없이 전달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현악에 윤기와 양감이 조금 더 살아났더라면 음악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한결 풍부하고 낭만적으로 와닿을 것 같다. 객석의 소음이 덜 가라앉은 상태에서 연주가 시작돼 오프닝을 장식하는 플루트 솔로가 충분히 부각되지 못한 점도 아쉬웠다. 이런 부분들이 보완된다면 홍콩 관객에게 건네는 첫인사로 더할 나위 없을 듯싶다.

○비극적 감흥 살아난 ‘비창’

다음 곡은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고 국내 공연장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명곡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연주하기 쉬운 곡은 아니다. 더구나 이날처럼 공연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돼 연주자들이 평소보다 긴장해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처음 두 악장에서는 그런 긴장감이 다분히 묻어나는 듯했다. 전반적으로 정교함과 유연함이 부족했고 부분적으로 앙상블이 엉키거나 흐트러지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3악장으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간 치열하고 다이내믹한 레퍼토리에 특히 강세를 보여 온 윌슨 응이 활기차면서도 절도 있는 지휘봉으로 단원들을 독려하며 리드했고, 악단의 앙상블도 그사이 윤활유라도 친 듯 한결 원활하게 기능했다. 그 탄력을 이어받은 4악장 역시 충분히 집중력 있고 비극적 감흥이 살아난 연주였다.

통상의 공연에서는 1부에서 협주곡, 2부에서 교향곡이 연주되지만 이날은 반대였다. 협주곡 규모와 비중이 특별히 크거나 모종의 기획 의도가 존재할 때 가끔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차이콥스키 곡에 이어 그의 계승자인 라흐마니노프 곡을 편성하고, 전반부의 비극적 결말을 후반부에서 극복과 승리의 결말로 반전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그래밍은 효과적이었다.

손민수도 좋은 연주를 들려줬다. 작품에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가공할 비르투오소’와는 다소 거리가 있고,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잘 울려 퍼지는 ‘종소리 톤(tone)’을 구사하는 피아니스트도 아니지만 명확한 구조적 조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연하게 펼쳐 보이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특히 이완부에서 들려준 사색적인 표현들이 인상 깊었다.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