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진짜 사장님 맞나요?
모든 최고경영자(CEO)는 소통을 강조한다. 나도 MZ세대와의 간담회, CEO 레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익명성을 전제로 정보와 의견이 날것 그대로 올라오는 ‘블라인드’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블라인드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던 중 ‘사장님 왜 그러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이 직원들을 자꾸 불편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궁금했던 나는 사장이라고 신분을 밝히며 “어떤 점 때문에 불편했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곧 다른 직원의 댓글이 달렸다. “진짜 사장님 맞나요?”

사장이 블라인드에 참여한다는 것을 직원들이 알게 되면서, 업무 개선을 요구하는 글과 회사 경영에 관한 제안이 자주 등장하게 됐다. 나는 쉬운 것부터 하나씩 바꿔가고 있다. 지금은 더욱 많은 건의가 올라오며 소통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임기 3년인 분이 업무 지시를 100m 달리기하듯 한다”는 불만 섞인 건의도 있었고, 최근에는 그럴듯하게 사장을 사칭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가짜 사장의 글은 금세 직원에게 발각된다. 일종의 자정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이렇듯 익숙하지 않던 블라인드에서의 소통도 결국 회사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익명의 소통 방식은 악의적 비난 및 목소리 큰 소수의 과도한 영향력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직 분위기가 흔들릴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직원 간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은 서로의 이해를 넓혀주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산시킨다. 정제되지 않은 채 올라오는 많은 불만조차도 회사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그것이 사장을 향하는 것이라도 말이다.

대부분의 CEO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직원들이 CEO와 소통할 기회도 적고, 소통하게 되더라도 넘기 어려운 직급 간의 벽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명의 소통 공간에서는 모두가 편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직원으로부터 “그동안 봐오던 사장님들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권위를 내려놓고 먼저 다가서려는 모습이 형식을 중요시하던 공기업의 시각에서는 달리 보였을 수도 있다. 소통하려는 노력을 통해 직원들은 회사의 목표를 이해하고, ‘우리의 방향성’이라는 공감대를 완성한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기업, 정부에서도 CEO가 익명이 보장되는 소통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현재 조폐공사는 화폐 수요 감소에 대응해 제조업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문화 기업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야심 찬 도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 블라인드가 소통에 도움 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