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일할 때에 결혼·출산…"낙오될까 두렵다"
“회사 생활하면서 둘째를 낳을 자신이 없습니다.”

지난해 첫째를 낳은 8년 차 직장인 이모씨(34)는 둘째를 출산하려던 생각을 접고 복직했다. 이씨의 동기들이 하나둘 승진하는 상황에서 휴직이 더 길어지면 회사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씨는 복직한 뒤에도 인사고과를 위해 동료들이 꺼리는 ‘빡센’ 임무를 자청했다. 이씨는 “회사에서 내 연차는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라며 “일단 승진부터 해야 둘째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씨의 사례는 30대 중반 첫 아이를 낳기 시작하는 대한민국 남녀가 공통적으로 하는 고민이다. 결혼·출산 연령이 늦어지며 회사에서 한창 일할 결혼 적령기의 샐러리맨들이 업무와 육아 부담을 동시에 떠안고 있는 것이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26.5세였던 한국 여성의 첫 결혼 연령은 2022년 31.3세로 22년 만에 4.8년 늦춰졌다. 같은 기간 여성이 첫 아이를 출산하는 연령도 27.7세에서 32.8세로 5.1세 높아졌다. 첫 아이 출산 연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반면 2021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 1위(3명)인 이스라엘은 첫 아이 출산 연령(27.8세)도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이스라엘과 비교하면 한국인의 ‘결혼·출산 시간표’가 5년가량 늦춰져 있는 것이다.

결혼·출산 연령이 높아지면 출산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지난해 기준 35세 이상 고령 산모의 비중은 36.3%로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취업의 어려움과 집값 급등 등의 여파로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계속 미룬 결과다. 이에 따라 회사 업무가 몰리는 30대 중·후반에 출산과 양육 부담을 함께 떠맡게 되자 출산을 기피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과거엔 사원 때 결혼하고 늦어도 대리가 되면 출산했는데 지금은 대리 때 결혼하고 과장이 되면 아이를 낳는다”며 “회사 커리어를 결정하는 시기와 출산 시기가 겹치면서 출산을 포기하거나 한 명만 낳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학제 개편, 취업 지원 등으로 결혼·출산 연령을 구조적으로 앞당길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아이 있는 여성들이 직장에서 눈치 보지 않는 사회적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며 “정부뿐 아니라 기업도 당사자로서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