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독주회…섬세하고 풍성한 음에 2천여 관객 박수갈채
韓 관객 홀린 쓰지이…시각장애로 오른손·왼손 연주 듣고 악보외워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치던 연주자가 양팔을 날개처럼 펼쳐내며 곡의 피날레를 장식하자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졌다.

클래식 공연에서는 곡이 끝날 때마다 의례적으로 박수가 나오지만, 지난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천여석을 채운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는 여느 때와는 달랐다.

훌륭한 연주에 대한 감탄은 물론 연주자를 향한 존중과 감동이 담겨있었다.

이날의 연주자는 시각장애를 가진 일본의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36)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기적의 피아니스트'로 불린다.

선천성 질병인 소안구증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2살 때 장난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4살부터는 본격적으로 피아노 교습을 받으며 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

2009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2011년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 무대에 선 적은 있지만, 독주회는 처음이다.

안내인의 팔을 한 손으로 붙잡고 무대에 들어선 쓰지이는 피아노에 앉자마자 망설임 없이 이날의 연주를 시작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쓰지이는 악보를 보고 곡을 익히지 않는다.

그는 오른손과 왼손 연주가 따로 녹음된 테이프를 듣고 이를 통째로 익혀 연주한다.

시각장애 연주자를 위한 점자 악보도 있지만, 점자 악보로는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을 들여 음악에 다가간 쓰지이의 연주는 정교하면서도, 악보 너머에 있는 세계를 담고 있어 섬세하고 풍성했다.

韓 관객 홀린 쓰지이…시각장애로 오른손·왼손 연주 듣고 악보외워
첫 곡은 7개의 짤막한 춤곡으로 구성된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5번. 쓰지이는 각 곡이 지닌 빠르기를 유연하게 오가며 곡의 다채로운 구조를 명료하게 들려줬다.

특히 세 번째 곡 사라방드는 정적일 정도로 고요하게 흘러가는 리듬에 꾸밈음으로 우아한 선율을 드러냈다.

쓰지이는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바라보듯 고개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연주를 이어갔다.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마다 그 위에 피어나는 소리를 쫓는 듯했다.

앞을 볼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건반을 꿰뚫어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어 쓰지이는 쇼팽의 네 개의 즉흥곡을 전반적으로 단정한 느낌으로 들려줬다.

특히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즉흥 환상곡'은 곡 자체가 가진 강렬함과 쓰지이의 압도적인 기량에도 과시하는 듯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쓰지이는 곡의 기교에 휩쓸리기보다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한 견고한 연주를 들려줬다.

2부에서는 드뷔시의 '판화'와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을 연주했다.

특히 '판화'는 '탑', '그라나다의 저녁', '비 오는 정원' 3개의 곡으로 이뤄진 곡으로 눈에 보이는 광경을 음악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쓰지이는 마음속에서 그려낸 풍경을 관객들에게 전했다.

그의 연주는 곡의 제목에서 떠올린 시각적인 이미지를 더 넓고, 더 깊게 확장했다.

이날 쓰지이는 연주가 끝날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한 손으로 피아노를 짚고 서서 뒤편의 합청석까지 천천히 한 바퀴를 돌며 허리를 숙였다.

공연을 앞두고 한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음악은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공연 내내 그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韓 관객 홀린 쓰지이…시각장애로 오른손·왼손 연주 듣고 악보외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