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피아니스트'…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건반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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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이 노부유키 리사이틀
장애 딛고 밴 클라이번 결선 오른
'기적의 연주자' 국내 첫 내한공연
정교함 대신 순수함과 생동감
깊은 음악세계 관객에 전해
장애 딛고 밴 클라이번 결선 오른
'기적의 연주자' 국내 첫 내한공연
정교함 대신 순수함과 생동감
깊은 음악세계 관객에 전해
일본의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는 ‘기적의 피아니스트’로 불린다. 임윤찬이 우승하기도 했던 밴 클라이번 콩쿠르 2009년 결선 당시 앞을 보지 못하는 쓰지이가 지휘자의 호흡을 느끼며 결선 곡을 연주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그 후 15년 만인 지난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쓰지이의 한국 첫 단독 리사이틀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박수와 함께 쓰지이가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입장했다. 무대 위 피아노에 앉아, 그는 오랜 시간 건반을 훑으며 연주를 준비했다. 그러고는 바로 음악 속에 푹 빠져들어 갔다.
첫 곡은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5번이었다. 첫 소절부터 우리가 바흐의 작품에서 흔히 기대하는 입체적인 연주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양한 성부가 입체적이고 구조적으로 조명되는 그런 바흐가 아니었다. ‘입체적’이라는 정의부터 쓰지이에겐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에겐 애초에 음악을 대하는 방법 자체가 달랐다. 대신 그 자리엔 맑고 순수한 소리가 대신했다. 또 생동감이 넘쳤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지그’가 특히 그랬다. 오른손과 왼손이 정교하게 맞물리진 않았지만, 연주된 음악 그 자체가 춤을 추듯 살아있었다.
이어지는 쇼팽 즉흥곡에선 선율에 감정을 풀어내기보다 직선적이고 덤덤한 연주를 선보였다. 이건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순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감한 연주가 시종일관 펼쳐졌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음악을 대하며 노래들을 풀어나갔다. 당연히 기술적으론 다른 프로 피아니스트들에 비해 부족할 수 있지만, 음표들을 결합하는 방식은 예술적이었다. 감동의 포인트는 그런 그의 깊은 음악 세계에서부터 나왔다. 어려운 작품을 소화하는 데서 오는 감탄은 그다음이었다.
가장 기억나는 연주는 2부의 드뷔시 ‘판화’다. 첫 번째인 ‘탑’은 베이스부터 신중하게 음향을 쌓아가며 음악을 시작했다. 신비로운 화음 속에서 5음 음계를 바탕으로 한 동양풍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의 산물이지만, 이 선율의 분위기는 오히려 쓰지이에게 더 익숙한 선율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날 연주한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에서 보다 더 굴곡진 멜로디가 잘 드러났다. 두 번째 ‘그라나다의 저녁’에선 쓰지이 특유의 단단하고 직선적인 연주가 잘 드러났다. 리듬이 조금 더 유연하게 표현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어떤 리듬은 조금 더 날카롭고, 또 어떤 리듬은 더 유연하게 표현됐더라면 이 작품의 매력이 더 잘 살아났을 것 같다.
이어서 ‘비가 오는 정원’이 시작됐다. 쓰지이는 시작부터 비가 내리는 장면을 거세게 몰아쳤다. 화성 진행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표현하니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비가 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런 덕분에 한바탕 비가 쏟아진 이후 점차 날이 개는 장면이 더욱 눈부시게 들렸다. 쓰지이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풍경이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비가 오는 날의 모습은 실감 나고 또 아름다웠다. ‘판화’라는 제목이 달려있지만, 사실 작품은 비 오는 날의 그 분위기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려 줬다. 오히려 우리는 시각이라는 지배적인 감각기관 때문에 다른 감각들로 얻는 정보에 상대적으로 소홀하지는 않았을까. 드뷔시 ‘판화’를 통해 쓰지이가 음악을 대하는 방법을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객석에서도 그에게 받은 감동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쓰지이가 무대와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소리기 때문에 관객들은 더욱 힘찬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화답했다. 좋은 연주로 감동을 주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걸 넘어 듣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가치를 전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로 평가도 비교도 어려운 리사이틀이었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그 후 15년 만인 지난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쓰지이의 한국 첫 단독 리사이틀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박수와 함께 쓰지이가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입장했다. 무대 위 피아노에 앉아, 그는 오랜 시간 건반을 훑으며 연주를 준비했다. 그러고는 바로 음악 속에 푹 빠져들어 갔다.
첫 곡은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5번이었다. 첫 소절부터 우리가 바흐의 작품에서 흔히 기대하는 입체적인 연주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양한 성부가 입체적이고 구조적으로 조명되는 그런 바흐가 아니었다. ‘입체적’이라는 정의부터 쓰지이에겐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에겐 애초에 음악을 대하는 방법 자체가 달랐다. 대신 그 자리엔 맑고 순수한 소리가 대신했다. 또 생동감이 넘쳤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지그’가 특히 그랬다. 오른손과 왼손이 정교하게 맞물리진 않았지만, 연주된 음악 그 자체가 춤을 추듯 살아있었다.
이어지는 쇼팽 즉흥곡에선 선율에 감정을 풀어내기보다 직선적이고 덤덤한 연주를 선보였다. 이건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순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감한 연주가 시종일관 펼쳐졌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음악을 대하며 노래들을 풀어나갔다. 당연히 기술적으론 다른 프로 피아니스트들에 비해 부족할 수 있지만, 음표들을 결합하는 방식은 예술적이었다. 감동의 포인트는 그런 그의 깊은 음악 세계에서부터 나왔다. 어려운 작품을 소화하는 데서 오는 감탄은 그다음이었다.
가장 기억나는 연주는 2부의 드뷔시 ‘판화’다. 첫 번째인 ‘탑’은 베이스부터 신중하게 음향을 쌓아가며 음악을 시작했다. 신비로운 화음 속에서 5음 음계를 바탕으로 한 동양풍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의 산물이지만, 이 선율의 분위기는 오히려 쓰지이에게 더 익숙한 선율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날 연주한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에서 보다 더 굴곡진 멜로디가 잘 드러났다. 두 번째 ‘그라나다의 저녁’에선 쓰지이 특유의 단단하고 직선적인 연주가 잘 드러났다. 리듬이 조금 더 유연하게 표현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어떤 리듬은 조금 더 날카롭고, 또 어떤 리듬은 더 유연하게 표현됐더라면 이 작품의 매력이 더 잘 살아났을 것 같다.
이어서 ‘비가 오는 정원’이 시작됐다. 쓰지이는 시작부터 비가 내리는 장면을 거세게 몰아쳤다. 화성 진행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표현하니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비가 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런 덕분에 한바탕 비가 쏟아진 이후 점차 날이 개는 장면이 더욱 눈부시게 들렸다. 쓰지이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풍경이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비가 오는 날의 모습은 실감 나고 또 아름다웠다. ‘판화’라는 제목이 달려있지만, 사실 작품은 비 오는 날의 그 분위기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려 줬다. 오히려 우리는 시각이라는 지배적인 감각기관 때문에 다른 감각들로 얻는 정보에 상대적으로 소홀하지는 않았을까. 드뷔시 ‘판화’를 통해 쓰지이가 음악을 대하는 방법을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객석에서도 그에게 받은 감동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쓰지이가 무대와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소리기 때문에 관객들은 더욱 힘찬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화답했다. 좋은 연주로 감동을 주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걸 넘어 듣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가치를 전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로 평가도 비교도 어려운 리사이틀이었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