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눈사람, '쇼츠'의 알쓸신잡…젊은 작가들이 포착한 '비현실적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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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라리오 갤러리서 노상호, 황수연 개인전
노상호, AI가 생성한 이미지 오류의 경외심 주목
황수연, '쇼츠' 콘텐츠의 아날로그적 재해석
노상호, AI가 생성한 이미지 오류의 경외심 주목
황수연, '쇼츠' 콘텐츠의 아날로그적 재해석
세상의 변화는 젊은 예술가들한테 도전이자 창작의 밑거름을 얻을 기회다. 대량생산체제의 등장을 포착한 앤디 워홀은 33세에 캠벨 수프 캔을 모티브로 한 팝아트를 탄생시켰다. 영상 미디어를 일찌감치 눈여겨본 백남준은 30대에 비디오아트를 개척했다.
미래의 변화는 어떤 '제2의 워홀', '차세대 백남준'을 탄생시킬까. 두 명의 1980년대생 작가 노상호, 황수연은 디지털 세계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 갤러리에 나란히 열린 개인전에서 노상호는 인공지능(AI)이 생성한 이미지 오류에, 황수연은 '숏폼'(짧은 영상) 콘텐츠에 착안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1986년생인 노 작가는 낯선 기술의 등장을 작품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왔다. 2021년부터 3D 영상 제작 기술을 익혀 도입했고, 이듬해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에 천착했다. 온라인에 부유하는 수많은 이미지를 입력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AI가 생성한 도상들 가운데 작가가 선별한 이미지만을 재가공하는 과정을 거쳐 최근 '홀리' 연작에 도달했다. 작가는 AI가 제공하는 신비하고도 기이한 감정을 종교적 성스러움을 뜻하는 '홀리'에 비유한다. 종교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삼면화' 형식을 채택한 작품에는 대천사 가브리엘의 AI 이미지가 들어섰다. 과거 화가들이 귀한 안료로 어겨 종교화에 칠한 울트라마린이 배경색이다. 노 작가의 울트라마린은 종교적 경외심을 연출하면서도 동시에 컴퓨터 오류 상황에 발생하는 '블루스크린'을 연상케 한다. '비현실적인 현실'을 재현한 방식은 회화부터 3D 프린팅 조각, 설치 작품까지 다양하다. 전시 공간 4층에 설치된 빈티지 옷장이 대표적이다. 옷장에 그림을 그린 뒤 목재 구조물과 섬유 조각, 양초 등 여러 요소를 결합했다. 전시장 기둥에 해당 옷장이 비스듬히 끼어있는 모양새다. 작가는 "게임 속 기술 오류로 인해 요소들이 기이하게 뒤엉킨 '글리칭 현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황 작가가 최근 제작한 입체 조각 3점과 평면 조각 10점으로 구성됐다. 공산품의 복잡한 제조 과정이나 동물의 느릿한 일상 등 특별한 것 없는 소재를 흥미롭게 가공한 숏폼 영상의 장면들을 소재 삼았다. 작가의 실제 작업 과정에서 영상 속 이미지는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다. 디지털 세계는 작가의 신체적 한계와 조응하며 투박한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작가가 스테인리스로 직접 제작한 배드민턴 채 40개를 꽂아 둔 조각이 전시장 한 가운데 배치됐다. 라켓의 제작 과정을 담은 숏폼 영상을 시청한 작가가 그 과정을 따라 해본 결과다. 1분 남짓의 시간 동안 순식간에 완성되는 영상과 달리, 7㎜ 두께 스테인리스에 미세한 구명 70여개를 뚫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실패작을 뜻하는 '나쁜 라켓'(2024)'이란 제목이 붙게 된 이유다.
평면 조각 '칼금형' 시리즈에선 숏폼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도 착안했다. 공장에서 스티커나 종이를 찍어낼 때 쓰는 형틀에 재스모나이트와 아크릴을 부어 굳힌 작품이다. 전체에서 부분을 잘라내고 붙이는 칼금형의 프레임으로 영상의 편집 과정을 형상화했다. 황 작가는 "SNS를 시작하고 난 뒤 한동안 숏폼 콘텐츠에 빠져 살았다"며 "전혀 보려고 의도치 않았는데도 끊임없는 흐름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무엇이든 포맷에 맞게 생산하고 유통하는 매끈한 숏폼과 맞물려서, 실제로 내가 사용해 본 적 있는 값싼 것의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전시는 4월20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미래의 변화는 어떤 '제2의 워홀', '차세대 백남준'을 탄생시킬까. 두 명의 1980년대생 작가 노상호, 황수연은 디지털 세계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 갤러리에 나란히 열린 개인전에서 노상호는 인공지능(AI)이 생성한 이미지 오류에, 황수연은 '숏폼'(짧은 영상) 콘텐츠에 착안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노상호, AI가 생성한 '이미지 오류'에 주목
가로세로 3m 대형 화면을 불타는 눈사람이 가득 채우고 있다. 노상호 작가의 '홀리'(2024)는 이처럼 디지털 가상 세계에서나 일어날법한 비현실적인 사건을 화폭에 재현한다. 작가가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에 자신의 기존 작품을 입력해 얻은 도상을 에어브러시를 활용해 그린 결과다.1986년생인 노 작가는 낯선 기술의 등장을 작품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왔다. 2021년부터 3D 영상 제작 기술을 익혀 도입했고, 이듬해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에 천착했다. 온라인에 부유하는 수많은 이미지를 입력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AI가 생성한 도상들 가운데 작가가 선별한 이미지만을 재가공하는 과정을 거쳐 최근 '홀리' 연작에 도달했다. 작가는 AI가 제공하는 신비하고도 기이한 감정을 종교적 성스러움을 뜻하는 '홀리'에 비유한다. 종교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삼면화' 형식을 채택한 작품에는 대천사 가브리엘의 AI 이미지가 들어섰다. 과거 화가들이 귀한 안료로 어겨 종교화에 칠한 울트라마린이 배경색이다. 노 작가의 울트라마린은 종교적 경외심을 연출하면서도 동시에 컴퓨터 오류 상황에 발생하는 '블루스크린'을 연상케 한다. '비현실적인 현실'을 재현한 방식은 회화부터 3D 프린팅 조각, 설치 작품까지 다양하다. 전시 공간 4층에 설치된 빈티지 옷장이 대표적이다. 옷장에 그림을 그린 뒤 목재 구조물과 섬유 조각, 양초 등 여러 요소를 결합했다. 전시장 기둥에 해당 옷장이 비스듬히 끼어있는 모양새다. 작가는 "게임 속 기술 오류로 인해 요소들이 기이하게 뒤엉킨 '글리칭 현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수연, 범람하는 '숏폼'의 아날로그적 재해석
황수연 작가는 유튜브, 틱톡 등에서 유행하는 1분 남짓의 짧은 영상을 아날로그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1981년 태어난 황 작가는 재료의 물성과 자신의 신체적 수행이 만나며 발생하는 관계 미학을 강조해왔다. 종이를 연필로 수없이 검게 칠하며 변화한 물질성을 강조한 '종이 조각' 연작이 대표적이다.이번 전시는 황 작가가 최근 제작한 입체 조각 3점과 평면 조각 10점으로 구성됐다. 공산품의 복잡한 제조 과정이나 동물의 느릿한 일상 등 특별한 것 없는 소재를 흥미롭게 가공한 숏폼 영상의 장면들을 소재 삼았다. 작가의 실제 작업 과정에서 영상 속 이미지는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다. 디지털 세계는 작가의 신체적 한계와 조응하며 투박한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작가가 스테인리스로 직접 제작한 배드민턴 채 40개를 꽂아 둔 조각이 전시장 한 가운데 배치됐다. 라켓의 제작 과정을 담은 숏폼 영상을 시청한 작가가 그 과정을 따라 해본 결과다. 1분 남짓의 시간 동안 순식간에 완성되는 영상과 달리, 7㎜ 두께 스테인리스에 미세한 구명 70여개를 뚫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실패작을 뜻하는 '나쁜 라켓'(2024)'이란 제목이 붙게 된 이유다.
평면 조각 '칼금형' 시리즈에선 숏폼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도 착안했다. 공장에서 스티커나 종이를 찍어낼 때 쓰는 형틀에 재스모나이트와 아크릴을 부어 굳힌 작품이다. 전체에서 부분을 잘라내고 붙이는 칼금형의 프레임으로 영상의 편집 과정을 형상화했다. 황 작가는 "SNS를 시작하고 난 뒤 한동안 숏폼 콘텐츠에 빠져 살았다"며 "전혀 보려고 의도치 않았는데도 끊임없는 흐름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무엇이든 포맷에 맞게 생산하고 유통하는 매끈한 숏폼과 맞물려서, 실제로 내가 사용해 본 적 있는 값싼 것의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전시는 4월20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