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와 MOU…아프리카·중동 성폭력 예방·생존자 지원
"한국은 '개발협력 초강대국'…코이카는 '최고 파트너'"
"저출산 해법은 가족친화적 기업문화…워라밸 보장해야"
유엔인구기금 총재 "분쟁취약국 여성 구해준 한국에 감사"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여성이 피해 일 순위가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들의 생명을 구하 는데 힘을 보태준 한국에 감사합니다.

"
6일 경기 성남시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본부에서 만난 나탈리아 카넴 유엔인구기금(UNFPA) 총재는 "지금도 5만여명의 임신부가 가자지구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UNFPA는 지난 1974년부터 우리나라와 가족계획, 인구문제 등과 관련해 협력해온 유엔 개발 기구. 파나마 출신으로 지난 2017년부터 UNFPA를 이끌고 있고 있는 그가 한국을 찾은 것은 2017년, 2019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UNFPA는 이날 코이카와 향후 3년 동안 아프리카, 중동 등 분쟁취약지역에서 성폭력을 예방하고 성폭력 생존자를 돕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업무협약(MOU)를 맺었다.

지난 2007년부터 성·재생산 건강권(SRHR), 젠더기반 폭력(GBV) 부문에서 인도주의적 프로젝트를 공동 진행해온 양 기관이 이를 더욱 확대하기로 약속한 것.
성·생식보건(SRH) 강화 사업은 에이즈를 비롯한 성병을 진단·치료하고 피임법 교육을 통해 계획 임신을 독려하는 한편, 조산사를 보내 분만부터 산후조리까지 임산부와 신생아를 돌보는 것이 주 내용이다.

성폭력 치료 키트 보급, 대응 표준 절차 수립, 관련 의료진 역량 강화, 피해자 쉼터 및 상담센터 설치 등을 담은 GBV 예방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총 3천270만 달러, 425억여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을 통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와 말리, 소말리아, 남수단,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 6개국, 약 70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유엔인구기금 총재 "분쟁취약국 여성 구해준 한국에 감사"
카넴 총재는 이번 업무협약 체결에 대해 "올해 30주년을 맞은 우리 기관에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라고 강조했다.

내전·전쟁으로 인해 극심한 사회불안을 겪으며 아동의 결혼·출산이 급증하는 등 심각한 상황에 처한 이들 지역 여성에게 신체적·심리적 치유 제공이 급선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카넴 총재는 지금까지 코이카와 함께 이뤄낸 대표적인 성과로 코트디부아르에서 실시한 '누관' 치료를 들었다.

할례를 경험한 여성은 난산 시 방광이나 장에 구멍, 즉 누관이 생기면서 대소변이 질로 흘러내리는 '산과적 누공'을 앓게 돼 감염 등 합병증 우려는 물론 악취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는 "완치된 1천명 중 절반은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지원받았고, 이들이 건강하고 활동적인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가정과 사회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카넴 총재는 "이는 한국이 이미 개발 협력 분야 '슈퍼파워'(초강대국)이자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평가했다.

또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한국은 개발도상국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영감을 주는 존재"라며 이러한 도약의 비결로 '교육'과 '성평등'을 꼽았다.

그는 "여성과 소녀에게 더 안전하고 건강하며 공정한 세상을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을 지지해준 여러분께 경의를 표한다"며 한국 국민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타이트한 방한 일정을 쪼개 청년들과 만나는 것 역시 시민들과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고 카넴 총재는 귀띔했다.

매년 코이카가 유엔인구기금 국가사무소에 다자협력전문가(KMCO)를 파견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소개한 카넴 총재는 "지난 35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베스트 파트너'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특히 빈곤국, 개도국에서 사업을 추진하면서 현지인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등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가 돋보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유엔인구기금 총재 "분쟁취약국 여성 구해준 한국에 감사"
한국의 저출산 기조에 대해서는 "칠레가 비슷한 국면에 들어섰다는 기사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한국의 경우 고등교육을 받은 노동력, 높은 생산성, 더 길고 건강해진 기대수명 등 인구 감소를 해결할만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다만, 일과 가정 생활을 병행하며 종종 과도한 기대와 요구에 놓이곤 하는 '워킹맘'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이 문제를 푸는 해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남성의 가사·육아 참여율을 높이는 한편, 부모 모두 '워라밸'을 추구할 수 있도록 업무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카넴 총재는 또 "회사에 수유모 편의를 위한 수유실을 운영하고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을 늘리는 실험을 해봤더니 생산성이 나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며 가족 친화적 기업문화 확산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