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그 뒤에 숨겨진 저주 받은 세 자매
소설, 영화, 드라마, 수많은 매체에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대다. 그 시작에는 38살에 요절한 한 소설가가 쓴 ‘제인 에어’가 있다.

‘제인 에어’는 최초의 여성 성장 소설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쓴 샬럿 브론테는 당시 사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을 피하고자 ‘커러 벨’이라는 중성적인 느낌의 필명으로 ‘제인 에어’를 발표했다. 나중에 이 소설이 여성 작가가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국 문학계에 큰 파장이 일어나기도 했다.

큰 성공을 거뒀던 ‘제인 에어’의 이면에는 두 여동생, 에밀리와 앤이 있었다. 세 자매 모두 시와 소설을 쓴 문학가였다. 이 셋은 공동으로 시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특히 에밀리 브론테가 유일하게 쓴 소설 ‘폭풍의 언덕’은 출판 당시 비윤리적이라고 비난받았지만 후대에 들어 고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작품이 인정받기 전 30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막냇동생 앤 브론테 역시 ‘애그니스 그레이’, '와일드펠 홀의 소유주'를 발표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29살의 나이에 사망했다. 두 어린 동생의 죽음을 지켜봤던 샬럿 브론테 역시 38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9세기 영국의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항해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지만 요절한 세 자매. 뮤지컬 ‘브론테’는 소설만큼이나 극적이었던 그들의 삶을 무대로 가져왔다.

가부장적인 사회를 문학을 통해 살아가려는 자매라는 소재가 매력적이다. 이 이야기를 여성 주연 배우 3명이 풀어내는 점도 신선하고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세 자매를 연기한 강지혜, 이지연, 이아진이 각 인물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는 연기를 펼쳐 생명을 불어넣는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세션 음악도 생동감 있다. 특히 세 자매가 각자 글을 쓰는 장면이 인물의 심리에 맞춘 음악이 인상적이다. 샬럿이 분노에 가득 차 종이를 휘갈기는 장면에서 격정적인 드럼 연주가 강렬한 비트를 내뿜는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 다만 극중 음악 소리에 대사가 가려지는 장면들이 있어 조금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그 뒤에 숨겨진 저주 받은 세 자매
매력적인 인물들의 삶을 더 풍성한 서사로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맏언니 샬럿과 둘째 에밀리 사이의 예술관 놓고 벌어지는 갈등이 작품을 끌고 간다. 미래에서 온 편지라는 소재가 등장하지만 밋밋하게 그려져 극적인 효과가 부족했다. 이밖에 다양한 층위의 고민이나 내적 갈등이 더해진다면 더 입체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

이런 면에서 앤이 두 언니 사이에 갈등을 조절하는 중재자 역할에 국한돼 아쉽다. 앤의 죽음이 별다른 설명이나 연출 없이 무대 뒤로 사라지는 방식으로 그려진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브론테 자매의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운명이 매력적인 작품.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읽고 감상하면 작품을 더욱 절절하게 즐길 수 있다. 공연은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6월2일까지.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