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욱 카리나 열애 공개에 카리나가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프라다, 카리나 SNS
이재욱 카리나 열애 공개에 카리나가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프라다, 카리나 SNS
아이돌판엔 유사 연애란 말이 있다. 가수를 연애 대상으로 보고 자신과 연애한다고 망상하는 것을 뜻한다. K팝 걸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열애를 공개한 후 이에 대한 '웃픈' 사과문을 올리는 촌극이 펼쳐졌다.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요"라는 유명 드라마 대사가 떠오른다. 하지만 일부 팬덤에선 "연애를 하더라도 걸리지 말았어야 한다"며 "아이돌이라면 환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많이 놀라게 해드려 죄송하고, 또 많이 놀랐을 마이(에스파 팬덤)이 얼마나 실망했을지, 우리가 같이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속상해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아요."

에스파의 카리나는 지난 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같은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의 이유를 명확하게 명시하진 않았으나, 팬들은 모두 알고 있다. 무대를 펑크내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물의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사과문을 작성한 것이다.

카리나는 4세대 걸그룹 대표인 에스파 중에서도 중심 멤버로 꼽힌다. 지난달 27일 배우 이재욱과의 열애 소식이 전해지자 두 사람의 소속사는 교제 사실을 인정했다. 청춘 남녀의 사랑은 문제 삼을 순 없으나 회사 주가나 판매량에 타격을 주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한다. 실제로 카리나 열애 공개 당일 SM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종가 기준 7만7900원을 기록해 전일 대비 3.5% 하락해 하루 만에 시가 총액 667억원이 증발했다.

뿐만아니라 카리나 소속사 인근엔 팬들이 보낸 트럭 시위가 등장했다. 트럭에는 "팬이 너에게 주는 사랑이 부족하니? 당신은 왜 팬을 배신하기로 선택했습니까. 직접 사과하지 않으면 하락한 앨범 판매량과 텅 빈 콘서트 좌석을 보게 될 거예요"라는 협박성 멘트가 적혀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팬들은 겉으론 연애해도 된다고 하지만 '내가 음반 사재기하며 이렇게 키워줬는데 연애라니, 걸리진 말았어야지'라는 의미"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어 "교제 사실이 알려지면 특히 음반 판매량에 타격을 받고 '큰 손'으로 꼽히는 중국 팬덤에서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귀띔했다. 앞서 논란이 된 트럭 시위도 중국 팬이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국 BBC는 "K팝 스타 카리나가 연애 공개 후 분노한 팬들에게 비굴한 사과문을 발표했다"며 열애로 사과문까지 써야하는 K팝 산업의 현실을 지적하고 나섰다.

BBC는 카리나의 구구절절한 사과문을 소개하며 "한국와 일본 팝스타는 (소속사와 팬들의) 압박으로 악명 높다"며 "10년 전만 해도 K팝 기획사들 사이에선 신인의 데이트나 개인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하는 게 관례였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K팝 스타의 열애설 인정은 팬 입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며 소속사가 그들을 '연애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아이돌로 세일즈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소속사가 앞장서 팬과 개인적인 감정을 교류하는 '유사 연애'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팬이 SM엔터테인먼트 앞에 보낸 시위 트럭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팬이 SM엔터테인먼트 앞에 보낸 시위 트럭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익명을 요구한 가요계 관계자는 "연애한다고 사과문까지 올리고, 팬덤이 단체 행동을 보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보여지는 부분뿐만 아니라 버블 등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와 같은 비즈니스적인 문화가 강해지면서 아이돌의 연애는 성역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카리나도 유료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인 버블을 통해 팬들과 활발하게 메시지를 나눴던 멤버다. 일부 팬들은 카리나의 버블 횟수가 연애를 하면서 줄어들었다고도 분석하고 나섰다. 그의 팬 사랑이 독이 된 것이다. 한 관계자는 "엔터 비즈니스가 아티스트를 연애 대상화하고 친밀감을 판매하면서 유사 연애의 기분을 느끼는 팬이 많아진 것 같다"며 "개인적인 감정이라 어떻게 할 순 없으나 고민해 보아야 할 지점"이라고 부연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의 팬덤 비즈니스가 실제로 유사 연애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공연할 때도 마치 애인에게 던지는 것처럼 플러팅을 하기도 하고 앱을 통해 일대일 만남의 느낌을 주는 형태로 팬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는 지극히 사적인 느낌을 주는데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가 가진 착시현상일 수도 있고, 내가 돈을 냈으니 이 정돈 해줘야겠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련의 사태는 과도한 소비를 촉구하는 팬덤 비즈니스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팬들이 아이돌 팬 미팅에 참여하기 위해 이른바 '앨범 깡'을 하는 일은 일상이다. 유사 연애가 소비로 이어지며 소비자 입장에서 보상심리가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다.

정 평론가는 "팬들이 자신이 돈을 쓴 만큼 아이돌에게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연결돼 있다"면서 "유사연애식의 소비는 비즈니스적 차원에서 소속사에서 자제해야 하고 팬덤 문화도 쿨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구처럼 팬덤 분화가 좀 바뀌어 나가야 한다"며 "사생활을 좀 보장해 주고 아티스트의 사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모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